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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식목제 Jun 27. 2023

물이 되지 못한 나는,

기껏, 슬픔이 되었다

밤새 빗줄기가 쏟아지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이른 아침부터 갠 하늘과 무더운 공기는 여름이 시작되었음을 알린다. 더운 바람과 함께, 곧 바다를 찾는 이들이 늘어날 것이고, 난 그들이 한껏 향유하는 소비의 시간과 함께 이 여름날을 관통할 것이다. 바닷물로 끈적끈적해진 바닥을 닦으며, 넘쳐나는 음식물 쓰레기를 비우며, 비어 가는 매대를 채우며, 동이 나는 얼음 냉동고를 수습하며, 나는 또, 이 무의미한 삶이 바닷바람과 산바람이 만나는 어느 지점에서 맹렬하게 소용돌이치며 사라져 가는 것을 속절없이 바라볼 것이다. 2023년 6월 27일, 따위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건, 그저 기호에 불과할 뿐. 솔직히, 난, 숱한 기호들에 의미를 부여하며, 꾸역꾸역, 부질없이, 이 생을 부여잡는 존재들을, 기꺼워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언제나, 그 존재들을, 연민하는 심정으로 바라보곤 했다. 늘 말하듯, 살아 있는 것은, 그저 살아 있다는 이유로, 끝내 살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살아 있는 방식으로, 존재하고 싶지 않았던 적 있었다. 죽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다만, 이를테면, 나는, 빗줄기가 되고 싶었고, 빗줄기에 녹아내려, 강으로, 바다로 흘러가고 싶었다. 그리하여, 언제나, 비가 내리면 비를 맞았다. 간밤에는 빗소리에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하며, 빗소리를 놓치고 싶지 않아 창문 곁에 머리를 누인 채 잠을 쫓아내려 했지만, 결국 집 밖으로 나서진 못했다. 언제부터였던가. 언제부터 비가 오면 우산부터 챙겼던가. 언제부터 비가 쏟아져 내리는 밤을 이렇듯 외면했던가. 언제부터, 나는, 빗방울에 녹아내려, 기어이 물이 되고자 하는, 간절한 바람을 잊어버렸던가. 젊은 날, 비 내리는 도시의 거리를 끊임없이 헤매인 적 있다. 빗물에 용해되는 도시를 상상하며, 빗물에 해체되어 넘실넘실 흘러가는 거리를 생각하며, 물이 되어, 물분자가 되어, 무의미가 되어, 차갑게 식어가는 나를 꿈꾼 적 있다. 하지만, 나는 결국 물이 되지 못했다.


물이 되지 못한 나는, 기껏, 슬픔이 되었다. 그리하여, 막 서핑을 즐기고 온 젊은이들이, 허기를 면하러 온 청춘들이, 바닥에 남기고 간 모래알들을 쓸어내며, 까닭 모를, 막대한 슬픔에 잠기기도 하는 것이다. 어쩌면, 내가 슬픔에 잠기는 것이 아니라, 슬픔이 된 내가 나를 가만히 안고 있다가, 슬쩍 놓아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그 곁으로, 그 틈으로 새어 들어온 삶이, 시간이 슬픔을 휘젓고, 나를 요동치게 만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물이 되지 못한 채, 무의미가 되지 못한 채, 슬픔이 된 내게, 슬픔은, 모종의 구체적이고도 분명한 연유로 발현되는 것이 아니었다. 굳이 말하자면, 아마도, 나는 존재하는 것이 슬픈 것인지도 모른다. 슬픔이 된 내가 슬픔에 잠겨 모래알들을 쓸어내다 보면, 모래알들이 마치 부서진 슬픔의 잔해물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쓸어낸 슬픔의 찌꺼기들이, 바닷바람과 산바람이 만나는 어느 지점에서 무참하게 흩어진다. 언젠가, 허공을 부유하던 그것들은, 비구름을 만나, 비가 되어, 다시 쏟아져 내리겠지.


밤새 퍼부을 거센 빗줄기를 예고하던, 축축하고 무거운 저녁, 홀로 밥상을 차리고, 솥에 담긴 육개장을 데워 먹다가, 목이 멨다고, 말하지 못했다. 목이 메어, 그 감칠맛 나고, 얼큰한 육개장을, 육개장과 함께 먹는 하얀 쌀밥을, 겨우, 목구멍 너머 욱여넣었다고 말하지 못했다. 버얼건 국물 아래에, 할머니의, 어머니의, 형의, 뼛가루가 가라앉아 있다고, 휘휘 저으면 슬픔이 넘쳐흐른다고 말하지 못했다. 불현듯, 지나가듯 던진, 누구의 한마디가 떠올라서 목이 멨다고 말하지 못했다. “당신, 외로운 사람이었군요.” 하지만 진실을 알려주진 못했다고, 그래서 더 목이 멨다고 말하지 못했다. “아뇨, 슬픈 사람입니다. 실은, 내가 슬픔입니다. 그러니, 나의 친절과 웃음을 믿지 마세요. 슬픔이 흘러내리는 것일 뿐이니까요.”


오늘 밤에도 비가 오려나? 아마도 오지 않겠지. 비가 오면 좋겠다. 슬픔이 내리면 좋겠다. 창문을 열어두고 자야겠다. 어둡고, 눅눅한, 바람이 분다.

 



버스가 달리는 동안 비는

사선이다

세상에 대한 어긋남을

이토록 경쾌하게 보여주는 유리창


어긋남이 멈추는 순간부터 비는

수직으로 흘러내린다

사선을 삼키면서

굵어지고 무거워지는 빗물

흘러내리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더 이상 흘러갈 곳이 없으면

빗물은 창틀에 고여 출렁거린다

출렁거리는 수평선

가끔은 엎질러지기도 하면서


빗물, 다시 사선이다

어둠이 그걸 받아 삼킨다


순간 사선 위에 깃드는

그 바람, 그 빛, 그 가벼움, 그 망설임


뛰어내리는 것들의 비애가 사선을 만든다


_ <빗방울, 빗방울>, 《어두워진다는 것》, 나희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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