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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영 May 28. 2023

예민하다믄서, 제일 빨리 자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주는 상담소> 19화 '예민한 불면증'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주는 상담소>는 지난 2년간 두 여자, 유영과 캘리의 내밀한 이야기가 담긴 편지를 시간순으로 엮은 공동매거진입니다. <잃시상>은 평범한 직장인 유영이 우연히 심리상담전문가 캘리를 만나 서로의 감정일기를 편지 형식으로 나눈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자신의 감정에 휘둘리던 유영이 캘리의 피드백을 받으면서 감정의 바다에서 유영(游泳)할 수 있게 되는 성장 스토리입니다.


제19화 ‘예민하다믄서, 제일 빨리 자네'는 쉽게 잠들지 못하는 유영의 소소한 불면증 이야기입니다. 유영과 캘리, 두 여자가 감정일기를 교환하면서 풀어가는 이야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주는 상담소>는 격주로 발행됩니다. 다음 이야기는 6월 11일 일요일에 이어집니다.






유영의 감정일기 >>클릭  <잃시상> 17화 빨리빨리! 나보다 빠르면 미친놈 나보다 느리면 바보

캘리의 피드백    >>클릭  <잃시상> 18화 아들러의 열등감으로 풀어요





선생님 안녕하세요. 제가 감정일기를 쓴 지도 벌써 1년이 넘었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는 매일 감정을 기록하고 심리학 관련 책도 꽤나 읽었는데요, 지금은 조금 소원해진 기분입니다. 그만큼 절박했던 심정이 해소되어서겠죠? 지금은 주말에 한 주간을 돌아보며 몰아서 감정일기를 쓰고 있습니다. 공부든, 취미든, 1년 정도 했으니, 실적평가에 들어가야겠죠? '지난 1년간 감정을 잡아보겠다고 노력해서 인생이 크게 달라진 게 있을까?'하고 자문해 보았는데요,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다'라고 자답합니다.


큰 변화가 없다고 제가 그대로 멈춘 건 아니겠죠. 시나브로 변화하는 과정을 느낍니다. 매주 쓰는 감정일기와 선생님의 피드백을 다시 읽다 보면 조금씩 자신을 알아가게 됩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가 줄어들고, 마음이 정화되는 것을 느낍니다. 소소하게 자잘한 것들이 변화했는데요, 이번 주에 출장 가서 그걸 확실히 느꼈습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웬만큼 예민한 사람은 다 겪는다는 불면증 이야기입니다.


지난주 피드백 주신 '빨리빨리 조급증' 만큼이나 예민하고 날카로운 불면증이 저에게 있습니다. 빨리빨리 조급증은 저의 생활 전반에 스며들어 있는 반면에, 예민함은 일부에만 국한되어 있습니다(혹시 일부에만은 아닐 수도 있겠네요. 저의 착각일 수도...) 음식 같은 것에는 무던한데, 소리와 빛에 민감해서 잠을 쉽게 들지 못합니다. 처방을 받을 정도는 아니지만, 한 달에 한두 번 정도는 밤을 새우거나, 한두 시간 잠깐 잠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달달한 숙면을 매일 취하지는 못하지만 몇 가지 저만의 노하우로 불면증을 극복하고 있습니다. 그 노후우는 바로 잠자리에 드는 의식을 치르는 겁니다. 종교의식을 치르듯 정성스럽게 매일 밤, 목욕물을 받아놓고 이부자리를 따뜻하게 만들어서 몸을 이완시킵니다. 몸 전체가 이완되면 이제, 눈을 편안하게 만들기 위해 암막커튼을 칩니다. 암막커튼으로도 차단되지 않은 작은 불빛들은 수면 안대로 방어합니다. 제 잠자리에 한줄기라도 빛이 스미는 건 용서할 수 없으니까요.


눈만 예민하면 섭섭하겠죠. 눈 옆에 달린 귀도 덩달아 두근두근 예민하게 굽니다. 눈만큼이나 예민한 귀를 위해 시계소리가 들리지 않게 하고, 가습기 대신 수건을 깔고, 혹시 모를 소음을 대비해서 귀마개까지 배게 근처에 셑팅해 놓습니다. 이 잠자리 의식이 완벽하게 이루어져도 20분 안에 잠들지 못하면(매일은 마지시 말라는 의사의 말에 따라서, 20분 제한시간을 둡니다) 마지막 비장의 카드를 펼칩니다. 제가 사랑하는 술입니다. 술도 배게 근처, 손을 뻗으면 바로 마실 수 있게 셑팅해 놓습니다.


저는 40도 이상의 술을 좋아합니다. 목을 타고 위로 들어가는 찌릿한 느낌이 내 몸을 내 몸 같지 않게 만들어 주거든요. 마치 조이스틱을 아무리 움직여도 말을 안 듣게 된 게임기처럼, 제 몸을 내 팽개쳐 버립니다. 그렇게 침대에 던져진 저의 눈꺼풀은 누군가에 의해 강제로 닫히고, 귀는 귀마개 없이도 막힙니다.  


참 슬픈 날이 있습니다. 술을 마셔도 잠이 오지 않는 날입니다. 온갖 잡소리가 가슴에서 울리는 날입니다. 그러면 방법이 없어요. 밤을 새우게 됩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들으면서 밤을 하얗게 보냅니다.


이렇게 예민한 제가 이번주에 전국단위의 출장을 가게 되어서, 서울인근의 합숙소에서 묵게 되었습니다. 출장지에서 잠자리 의식을 치를 수 없으니, 처음부터 작정을 하고 잠을 설치겠다는 각오를 했습니다. 드디어 어둠이 깔리고 잠자리에 들 시간이 되었습니다. 같은 방을 쓰게 된 사람들과 가볍게 인사하고, 짐을 정리하면서 고해성사하듯 각자의 잠버릇을 말하게 되었습니다. 한분은 코를 고시고, 한분은 이를 간다고 하시길래 저는 예민하다고 선언했습니다.


다들 조심하겠다고, 예민해서 힘들겠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부자리를 깔고 바로 잠들기 민망했던 우리들은 서로의 관심사를 비롯한 근황토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관심종자 esfj인 제가 이런 이야기에서 빠질 수 없겠죠. 이에 질세라 두 분 사이를 삐집고 떠들었습니다. 그러고 있자니 슬슬 졸리고 노곤함이 저에게 찾아왔습니다. 갑자기 따뜻한 목욕물 없이도 몸이 이완되었고, 수면안대 없이도 눈꺼풀이 덮였고, 귀마개 없이도 귀가 막혀 자연스럽게 잠들게 되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잘 잔 덕분인지 일찍 일어나 제일 먼저 씻고, 가볍게 산책을 하러 나갔습니다. 산책에서 돌아왔더니 다들 웃으면서 저에게 한마디 하셨습니다.

"예민하다믄서, 제일 먼저 잠들던데.."

출장이 끝나고 집에 돌아와서도 잠을 잘 자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저는 원래 잠을 잘 자던 사람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잠에 잘 드는 저를 제 안의 두려움이 누르고 있었던 건 아닐까요. 이제는 감정일기가 저를 지켜주고, 응원해 주고 있는 건 아닐까요.  아니면, 이제는 잘 잠드는, 그래도 좋을 나이가 된 걸까요.  


의식을 치르지 않아도, 술을 마시지 않아도, 예민하다믄서 제일 먼저 잠드는 밤이 계속되었으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주는 상담소>는 격주에 한 번 일요일에 발행됩니다.

 6월 11일 일요일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주는 상담소> 제21화로 이어집니다.


본 감정일기를 읽은 후 (아래 링크) 심리상담전문가 캘리의 피드백을 읽으시면 화나고 우울한 감정에서 빠르게 벗어날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심리상담전문가 캘리의 피드백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주는 상담소>

https://brunch.co.kr/@ksh3266/74






캘리와 유영의 감정일기 1,2화

https://brunch.co.kr/@youyeons/40


캘리와 유영의 감정일기 3,4화

https://brunch.co.kr/@youyeons/43


캘리와 유영의 감정일기 5,6화

https://brunch.co.kr/@youyeons/45


 캘리와 유영의 감정일기 7,8화

https://brunch.co.kr/@youyeons/47


  캘리와 유영의 감정일기 9,10화

https://brunch.co.kr/@youyeons/52


캘리와 유영의 감정일기 11,12화

https://brunch.co.kr/@youyeons/53


캘리와 유영의 감정일기 13,14화

https://brunch.co.kr/@youyeons/56


캘리와 유영의 감정일기 15,16화

https://brunch.co.kr/@youyeons/58


캘리와 유영의 감정일기 17,18화

https://brunch.co.kr/@youyeons/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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