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함께 잠이 들고 나서 다정은 평소와 달리 침대에 한 명이 더 있다는 낯섦에 평소보다 한 시간이나 일찍 깼다. 어제 마신 술 때문에 머리와 속이 너무 아팠지만 승태를 출근 시키기 위해 깨워야만 했다.
“승태야 일어나 봐. 출근 해야지.”
“으음…”
승태는 뒤척이며 시계를 보고는 순간 놀랐다가 자신의 옆에서 눈을 부비적 거리고 있는 다정을 보고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잘 잤어? 그렇게 술 먹은 것 치고는 일찍 일어났네.”
“머리 아파 죽겠어…”
“어제 기억은 나고?”
“몰라, 바보야. 출근 준비나 하러 가.”
승태가 개구쟁이처럼 웃으며 놀리자 다정은 머리를 한 대 쥐어박고는 일어나 물을 마시러 나갔다. 냉장고에 든 시원한 냉수를 한잔 마시니 숙취가 전부 씻겨 내려가는 듯했다. 어제 승태랑 같이 집에 왔었지. 택시에서는 잘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집에 와서 나눴던 대화는 다행히 기억에 남아 있었다. 그렇게 누군가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은 게 얼마만인지. 아마 무의식 중에 승태라면 괜찮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오랜 친구이자 내 연인. 그가 내 옆에 늘 항상 있어주길 바라는 마음을 시원하게 터놓은 것이다.
다정은 자신이 물을 마신 컵에 다시 물을 채우고는 아직 침대에 누워 미적거리는 승태에게 다가가 등짝을 때리고는 일으켜 물을 마시게 했다. 승태는 물을 마시더니 집에 들렀가 가기 귀찮다며 대충 씻고 바로 출근하겠다고 했다. 다정은 그러라고 하고는 칫솔을 챙겨줬다.
“너 아침 먹어?”
“아니, 귀찮아서 잘 안 먹어. 아직 술도 덜 깼어.”
“음… 해장은 하고 가야 할 텐데…”
“가는 길에 음료수 하나 사서 마시면서 가면 돼.”
“근데 너도 참 체력 좋다. 그렇게 기절할 때까지 술을 마시고 어떻게 그렇게 멀쩡해?”
“안 멀쩡해. 술 덜 깼다니까?”
다정은 신기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승태에게 다가가 안기고는 볼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승태도 그런 다정의 입에 가볍게 뽀뽀를 하곤 다정의 눈을 마주보며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뒹굴거리던 다정과 승태는 겨우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승태네 회사까지 거리가 꽤 있었기에 다정은 아직 어지러운 머리를 부여 잡고 평소보다 일찍 준비했다. 좀 더 누워 있다가 천천히 준비하라고 승태는 말했지만 다정은 모처럼인 만큼 승태와 같이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승태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게 준비를 했고 다정도 그에 맞춰 평소보다는 조금 초췌하지만 나름대로 준비를 마치고는 집을 나섰다.
늘 걷는 출근길이었지만 승태와 함께 걷고 있으니 뭔가 낯설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날씨도 적당히 더운 게 여름이 점점 다가오고 있음이 느껴졌다. 술이 덜 깬 덕에 텐션도 아직 올라가 있어 발걸음 마저도 가볍게 했다. 승태도 기분이 좋은 듯 다정의 손을 꼭 잡고 걸었다. 이대로 그냥 출근을 하지 않고 한강에 피크닉이나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승태와 전철역에서 인사하고 난 다음 전철을 타고 회사 근처 역에 내려 아이스티를 사들고 회사로 들어왔다. 어제와 크게 공기는 다르지 않았지만 다정의 기분은 어제와 조금 달라져 있었다. 그래,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자. 어떻게든 되겠지. 그렇게 마음을 먹고 업무를 시작했다.
퇴근을 하고 나서 승태네 집으로 갔다. 특별히 만나서 뭘 할 계획은 없었지만 어제 밤부터 오늘 아침까지 승태와 함께 했던 여운이 남아 승태에게 퇴근하고 집에 가겠다고 했더니 무척 좋아하며 그러라고 했다. 승태는 아직 퇴근을 안 했는지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 불을 켜고 방을 간단하게 정리하고 설거지를 하고 있으니 승태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일찍 왔네. 뭐해?”
“청소 좀 하고 있었어. 좀 깨끗하게 살아 어휴.”
“요즘 바빠서 못한 거야. 놔뒀으면 내가 했을 텐데.”
“아니야. 일찍 온 김에 그냥 대충 한 거야.”
“고마워. 배고프지? 뭐 먹을래?”
“음… 뭔가 뜨끈한 게 먹고 싶어.”
“아직 술 덜 깼구나?”
“아니거든! 갈비탕 먹자 갈비탕!”
다정이 승태에게 달라붙으며 말하자 승태는 자연스럽게 다정을 한쪽 팔로 감싸고 다른 손으로 배달 어플을 켜 갈비탕을 주문했다. 도착까지 40분이 걸린다는 메시지를 보자마자 다정은 승태의 팔을 놓고 쇼파에 기대 앉았다. 승태는 다정이 집을 정리해주던 것을 이어받아 하나씩 천천히 치워나갔다. 쓰레기를 한데 모으고 청소기를 돌리고 설거지를 했다. 어차피 밥 먹을 건데 설거지는 이따 해도 되지 않냐고 다정이 말했지만 승태는 쌓아둔 거라도 미리 해두는 게 좋겠다 싶어 그냥 하겠다고 했다. 다정은 승태가 열심히 집안일을 하는 걸 쇼파에 기대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뭔가 저렇게 진지하게 집안일을 하는 걸 보고 있으니 확실히 승태도 어른스러운 모습들이 종종 있긴 하다는 생각이 든 다정이었다.
갈비탕은 예상보다 10분이나 일찍 도착했다. 승태가 문 앞에서 음식을 가져 올 동안 다정은 수저를 식탁에 세팅했다. 뚜껑을 열자 김이 모락모락 나며 구수한 갈비탕 냄새가 승태와 다정의 코에 와 닿았다. 다정은 국물을 한 숟갈 떠먹더니 간이 딱 잘됐다며 감탄하더니 이런 국물에는 술을 한잔 해야 하는 거 아니냐며 승태의 눈치를 봤다. 승태는 그렇게 먹고도 또 술 생각이 나냐는 눈빛을 보냈지만 다정의 초롱초롱한 눈을 이기지 못하고 냉장고에서 소주 한 병과 잔 두 개를 꺼내 왔다. 그렇게 승태와 다정의 저녁 식사 겸 반주가 이어졌다.
“그러고 보니 너 서연이한테 연락해 봤어?”
“아, 맞다. 서연이.”
다정은 얼른 스마트폰을 들어 서연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연결음이 몇번 이어지기도 전에 서연은 빠르게 전화를 받았다.
“오 살아있네 다정이?”
“그럼그럼. 나 지금 승태네 집에서 갈비탕에 소주도 먹고 있어!”
“잘한다. 그렇게 먹고도 술이 넘어 가냐 지지배야.”
“너도 승태랑 똑같은 얘기하네.”
“어휴. 뭐 별일 없으면 됐어.”
“응, 별일 없어. 고마워.”
“어제 먹은 거 정산해줄게.”
서연은 짧고 단호하게 말하고는 그렇게 전화를 끊었다. 다정과 서연의 대화를 듣던 승태는 서연이도 사회 생활 하더니 성격이 좀 변했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일부러 다정에게 얘기하진 않았다. 다정 역시 별로 개의치 않는지 전화를 끊자마자 다시 갈비탕과 소주에 집중했다.
다정은 만족스럽게 불러오는 배를 만지며 쇼파로 다시 돌아가 앉았다. 승태는 남은 음식을 한 데 모아 음식물 쓰레기 처리기에 버리고 다시 한번 설거지를 한 뒤 다정의 옆으로 와 앉았다. 딱 반 병 정도의 알딸딸함이 다정의 온몸에 퍼져나갔다. 맛있는 저녁밥, 따뜻한 집, 그리고 승태와 함께 하는 이 시간이 다정은 너무 행복했다. 이 시간이 계속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승태야.”
“응?”
“우리 같이 살까?”
“으응?”
승태는 너무 놀라 하마터면 스마트폰을 놓칠 뻔했다. 같이 살자고? 이렇게 갑자기?
“싫어?”
“아니 싫은 건 아닌데 너무 놀라서…”
“사실 나도 아직까지 그렇게 깊이 고민한 건 아닌데 그냥 음… 그냥 같이 살면 좋을 것 같아서!”
다정의 눈은 뭔가를 결심한 듯 반짝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