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은근슬쩍 찾아온다. 아직 더운 여름 애매미가 츠쿠츠쿠보-시 하고 울 때 슬그머니 얼굴을 내밀다가 해가지고 귀뚤귀뚤하는 귀뚜라미 울음소리와 함께 불쑥 고개를 든다. 비가 온다 싶으면 열대야가 어디로 쏙 들어가 버리는데, 이때쯤 되면 드디어 늘 켜 두었던 에어컨을 끈다. 아침에 괜히 반팔 티셔츠 사이로 나온 팔뚝을 쓰다듬게 되는 것도 이 무렵이다.
그렇다고 가을이 '나 가을이오' 하고 가슴을 탕탕 두드리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낮에는 한 여름처럼 더울 때도 있고, 버티다 못해 다시 에어컨을 틀기도 한다.
바람이 시원하다 싶다가 바닥에 뒹구는 노란 은행을 볼 때면, 그 때야 진짜 가을이구나 싶다. 코를 부여잡고 싶어지는 냄새가 징 하고 공기 중에 섞일 때. 윽 하고 얼굴을 찡그리지만 가을이네 싶은 마음에 반갑기도 하다.
제일 반가운 것은 달콤새큼한 향을 솔솔 풍기는 금목화(金木犀 : 킨모쿠세이)이다. 작고 주황빛이 나는 꽃을 새파란 잎사이에 조롱조롱 달고 폴폴 가을향을 뿌리는 것을 볼 때면 보물이라도 찾은 것 같다. 절로 발은 걸음을 늦추고 코는 제멋대로 킁킁거린다. 늘 콧 속에 넣던 향기를 오늘은 사진에 담아보았다. 차가 다니는 길목 한가운데를 씩씩하게 걷는 아이들을 보느라 흔들려버렸지만 보기만 해도 상큼하구나.
지금은 절찬. 가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