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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작가 Apr 08. 2024

엄마 밥의 마력

온작가의 글포옹


따뜻한 글로서 세상을 꼬옥 안아주고 싶은 '글포옹' 온작가입니다.


주말에 대구 친정에 다녀왔어요.

어느덧 '6년 차 암 환자'인 아빠는 20차례 넘게 진행했던 항암 치료의 후유증으로 다리가 많이 불편해졌더라고요. 귀한 막내딸의 더 귀한 딸이 백일을 좀 앞뒀을 때, 가족들의 식사 자리를 위해 서울에 올 준비를 하다 췌장암 선고를 받게 됐던 아빠. 당시 꼬물대던 그 생명체가 이제 거의 '날아다님'에 가까울 정도로 재빠르게 뛰어다니고 있는데 그 앞에서 아빠는 아가처럼 아장아장 걸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더 나빠지지는 않도록 해야지'라는 한 마디가 못내 아팠어요. 하지만 '인생에 소나기가 내릴 때 피하면 그뿐이다' 했던 멋진 우리 아빠답게,  매일 치르고 있는 작은 전쟁들 끝에 결국 승기를 거머쥘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아요.


아빠에게 미안하지만 더 짠한 건 엄마였습니다. 원래 아빠는 당신 손으로 밥 한 끼를 차려드실 줄 몰랐던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이제 큰 병까지 얻고 보니 엄마에게 했던 그 '의지'가 거의 '집착' 수준이 될 수밖에요. 엄마도 일상의 중간중간 '쉼'이란 걸 좀 가져야 마땅한 70대 노인인데 여든의 어린아이를 키우고 있으니 그 삶이 오죽하겠나요. 집 밖에 잠시 나가는 것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 얼마나 숨 막히게 답답할까요. 아빠 때문에 차린 밥상으로 '어쩔 수 없이' 매일 건강식을 하다가 어느 날은 일탈(?)이 하고 싶어 전통시장에서 치킨 한 조각을 사 왔다는 엄마. 하지만 혼자 몰래 먹는 그 맛이 어디 상상 속 그것처럼 달콤했을까요? 할머니를 모시는데 청춘을 다 바친 엄마는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외할머니의 가장 가까운 보호자가 돼야 했고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뒤엔 이렇게 여든의 어린아이를 돌볼 수밖에 없게 됐으니, 참 엄마의 인생이 너무 가여워서 마음이 아려오더라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오랜만에 막내딸 가족이 왔다고 있는 반찬 없는 반찬 다 꺼내서 한 상 가득 차려주셨습니다. 늘 그랬듯 '차린 건 없지만...'이라 운을 떼는 엄마. 소싯적부터 유독 좋아했던 엄마의 부추김치, 깻잎무침, 된장찌개는 기본, 그 손 많이 가는 닭개장까지... 저를 위한 밥상을 준비하며 엄마는 어떤 마음이셨을까요. 작가가 되겠다고 스무 살 때부터 홀로 상경해서 지금까지 작가로 살고 있는, 하지만 그때도 지금도 글쓰기 외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딸... '네가 밥이란 걸 해 먹고사는 거 자체가 신기할 따름이다'라는 말을 여러 번 하셨을 만큼 아직도 미덥진 않지만, 그렇기에 더 마음 쓰이는 막내딸을 위해 하나하나 차려내신 음식들. 그건 그저 밥과 반찬이 아니었어요. 그건 너무도 특별한 온기였고, 깊이를 가늠할 수조차 없는 사랑이었습니다.  


입 안 가득, 가슴 가득 채우는 그 온기와 사랑에 문득 '우리 딸에게 엄마 밥은 어떤 의미인 걸까' 생각이 들었지요. 너무 바쁜 일상을 탓하며 밥상 가득 반찬가게 이모님의 손맛을 올려놓고 있는 엄마... 가끔 해주는 거라곤 겨우 달걀볶음밥 정도인데도 엄지를 마구 치켜들며 '너무 맛있는데?' 해줬던 어린 딸... 이제 일주일에 단 하루 정도라도 온기와 사랑을 듬뿍 담은 '엄마 밥'을 먹게 해 줘야겠습니다. 


'엄마 밥'은 정말이지, 엄청난 마력을 가지고 있는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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