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들어가서 ‘백치미’ 있다는 말을 심심찮게 듣고 나서야 다른 친구들과 내가 조금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십 대, 주중엔 학교를 주말엔 교회만 다녔던 나는 사회생활에 대해 아는 것이 전무했다. 보고 들은 것이 있어야 아는 것들이 있을 텐데, 아빠는 부재했고, 엄마는 다리가 불편하시어 일을 못 하시는 형편에, 일찍 주무시는 엄마 덕에 TV는 가요프로그램 정도였고, 컴퓨터는 다룰 줄도 몰랐고, 음악을 전공했으니 연습하고, 곡 쓰고, 기껏 놀아도 어렸을 적 동네 친구들 두, 세 명과 친 구 집에서 노는 게 전부였다.
개그 프로그램도, 뉴스도 본 일이 없었던 나는 농담을 이해하는 것도, 사회 전반적 분위기나 사람들이 관심 있어하는 것 등을 알아채는데도 항상 조금씩 느렸다.
사실, 많은 사건이 일어나는 고등학교 때도 친구들이 이야기하는 것들을 주워듣곤 했는데 대부분 그들이 말하는 사건이나 흥미 위주의 이야기들은 나와는 연관도, 흥미도 없는 것들이었고 친한 친구들도 사건을 일으키거나 어떤 이야기에 동조하는 이들이 아닌 나와 비슷한 성향의 친구들이었다. 그야말로 끼리끼리랄까.
20살이 되어서야 대학교 하늘 위로 비행기를 넋 놓고 바라보는 나를 이상하게 보고 있는 선배에게 “비행기를 처음 보았어요. ”라고 말해 놀라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면,, 믿어질까.
너무 모르면 세상이 한 번에 무너지기도 하는 걸까?
순진하게도 수능을 보고 대학까지 나에게 맞춰 입학한 첫 남자 친구와의 처참한 끝은 스스로 화살을 나에게로 돌려 자기혐오로 이어졌으며 나를 망가트렸다. 담배, 술, 게임 등 하지 말라고 그렇게 싸우던 것들을 직접 해보며 지금껏 만나온 사람들과 바깥의 세상은 너무도 달라 내가 몰라서 일어나는 일들이라 여겼다.
그렇게 나의 가치관과 믿음이 수렁에 빠지며 한동안 자기 연민에 허우적거렸다. 그러다가 나의 어리석고 지혜롭지 못함을 경험의 부재라 여겼고 많은 경험을 해 봐야겠다고 나 자신을 채찍질했다.
언제나 돈이 문제였다.
경험하려면 돈이 필요한데 돈이 없으니, 시급이 높은 곳을 찾았다. 그곳이 대학 앞 이탈리안 레스토랑이었고, 다른 곳에 비해 시급은 높고 저녁으로 먹어본 적 없는 이탈리안 음식을 먹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았겠는가. 그러나 두 달 만에 해고당했다.
그 경험으로 깨달았다.
이탈리안 음식점의 가격과 일하는 사람들의 매너, 식사를 하러 온 사람들의 애티튜드,,
‘이렇게 나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아르바이트를 찾아 돈을 받으면서 배우면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