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
(무대 앞에 등장해 관객들의 주의를 끈다.) 경이로운 저녁이군. 옷도 차려입고 머리도 단정히 하고 향수도 뿌렸으니 이제 돈 주앙처럼 그녀에게 달려가야지. 그녀는 젊고 아름답고, 게다가 지참금 3만 루블 (당시 노동자의 월급은 평균 15~30루블 정도)이나 가졌고 나를 사랑하고 있어, 마치 고양이처럼 말이지. 내가 가서 운명을 결정짓고 올 거야. 지주 나리가 되든 실패를 하든. 이 모든 게 오늘 밤에 달려 있어. (사라진다.)
「희극의 파편」은 단편, 장편 희곡 중 재미있는 한 장면을 선별해 그 감정적 여운과 미학적 장치를 분석하고 현대적 맥락에서 다시 사유해보는 비평적 에세이 시리즈입니다. 말은 거창하지만 그냥 특정 장면이나 대사를 가지고 이리저리 뜯어보면서 독자와 함께 놀아보는 글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안녕하세요!
오늘 「희극의 파편」 서른일곱 번째 작품은 안톤 체홉의 '가망 없는 일'입니다.
<수요일에는 체홉 작품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체홉작품 모음 1 , 2 , 3 , 4 , 5 , 6 , 7 >
내용은 정말 간단합니다. 한 가난한 젊은 남자가 귀족의 여성에게 사랑 고백을 합니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뒤, 마지막으로 남자는 그럴수록 자신이 가난하다는 사실을 의식하며, 함께 살아가기 위해선 그러한 자신의 처지를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충고합니다. 마치 결혼 직전의 서약 같은 느낌이었죠. 그런데 여성은 그 충고를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인 듯합니다.
부담없이 가볍게 한번 읽어보시고 가세요^^
젊은이
음... 네... (손으로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전 말이죠, 바르바라 페트로브나, 당신과 할 말이 좀 있어요... 말씀드리기 어려워 오자마자 침묵하고 또 침묵하고 하였지만, 이제는 그만하겠습니다! 전 더 이상 말없이 가만히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녀에게 살짝 다가간다.)
바르바나 페트로브나는 고개를 숙이고 떨리는 손으로 꽃잎을 뜯기 시작한다.
젊은이
무엇 때문에 침묵해야 하는 거죠? 침묵을 하든 소심해하든 빠르든 늦든 언젠가는 고통이 생기는 겁니다. 당신께선 아마도 기분이 상하셨겠죠... 저를 이해하지 못하실 거예요... 네?
바르바라 페트로브나
네? 말씀하세요. 무엇이 당신을 괴롭게 하나요?
젊은이
(생각을 모아 적절한 문자으로 표현해내고자 노력하며) 당신은 물론, 벌써 오래전부터 알고 계셨겠죠. 제가 왜 매일 이곳으로 와서 당신 눈앞에 저의 존재를 각인시켰는지를. 어떻게 모르실 수가 있겠습니까? (머뭇거리는 목소리로) 당신은 아마 벌써 오래전에 제 마음 속에 그런 감정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을 거빈다, 그런... 바르바라 페트로브나! (바랴는 더욱 고개를 숙인다. 그녀의 손은 떨리고 있다.) 바르바라 페트로브나!!
바르바나 페트로브나
그런데요?
젊은이
전... 이런 뭐라고 말해야 하나! 이해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당신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뭘 더 말해야 하죠? (가까이 다가간다.) 미칠 정도로 사랑해요! 전 이렇게나 당신을 사랑한단 말입니다... 한마디로 말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소설들을 모아다가 읽어보십시오. 그 안에는 사랑과 저주, 증오에 대한 모든 것들이 들어있죠. 당신이 받으십시오... 제 가슴에... 지금! 바르바라 페트로브나! (애원하듯) 바르바라 페트로브나!!! 왜 말씀이 없으신가요?
바르바라 페트로브나
(쳐다보지 않으며) 무슨 말을요..?
젊은이
(광적으로) 진정... 아닌가요?
바르바라 페트로브나
(고개를 들어 올리며 미소 짓는다. 겨우 들릴 정도로) 왜 아니겠어요?
젊은이는 그녀의 손을 강렬하게 붙잡고서 키스를 쏟아부으며, 다른 손도 광적으로 꼭 쥐어잡는다... 생략.
젊은이
(기쁨에 차 벌떡 일어나 벤치에서 멀어진다. 다른쪽을 향해!) 이 얼마나 행복한가! 훌륭한 아내에, 많은 돈에, 좋은 직업까지! 생활에 어려움이 없을 거라고! 자, 그럼 이제 내 원칙들을 과시해볼까. (그녀에게 다가가 엄숙한 톤으로) 바르바라 페트로브나! 무엇보다 당신을 아내로 맞이하는 것은 저에게 가장 신성한 의무입니다. 그래서 커다란 오해가 발생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당신에게 몇 마디만 하겠습니다. 짧게 이야기해드리죠.
그녀는 고개를 들어 그를 경이로운 눈빛으로 바라본다.
젊은이
네, 전 솔직한 사람입니다. 전 일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전... 전 당당합니다! 그뿐 아니라... 제겐 미래가 있습니다만... 하지만 지금 전 가난하고 아무것도 가진 게 없습니다.
바르바라 페트로브나
(벤치에서 일어나 그의 손을 잡으며) 전 알고 싶지 않아요. 돈에서 행복이 나오는 건 아니니.
젊은이
(경멸하며) 네... 누가 정말 돈에 관해 이야기하나요? 전... (뒷걸음질하며) 저의 가난이 자랑스러워요. 설령 제가 집필 작업으로 고작 몇 코페이카밖에 못 벌지만 그건... 그건... 그 몇 천과도 바꿀 수 없습니다.
바르바라 페트로브나
(환희에 차) 이해해요. 그러나... (설명을 들을 준비를 하며 다시 벤치에 앉는다.)
젊은이
전 가난에 익숙합니다. 제게 가난이란 아무것도 아니죠. 전 일주일 내내 점심도 못 먹는 처지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당신은! 진정 당신은 마부를 부르지 않고서는 한 걸음도 가지 못하죠. 그리고 매일 새로운 옷을 입어야 하고, 원하면 언제라도 가난에 대해서는 모르는 채 돈을 낭비하시죠. 당신에게 싱싱하지 않은 꽃은 이미 커다란 불행이죠. 그럼에도 진정 당신은 저를 위해 지상의 부를 떠나보내실 건가요?
바르바라 페트로브나
(상냥하게 그를 위로하며) 제가 돈이 있잖아요. 전 지참금이 있답니다!
젊은이
(그녀에게서 떨어지며) 공허하군요! 10년을 사는데 몇 천이 들어가니 아마 몇 년 사는데는 충분하겠죠? 그럼 그 이후는요? 가난? 눈물? 사랑하는 당신, 저의 경험을 믿으세요! 안다고요! 뭐라 말해야 하는지 알아요. 가난과 싸우기 위해서는 강력한 의지를 가져야 하고 인간적이지 못한 성격도 필요해요! (다른 쪽을 향하여) 뭔 쓸데없는 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다시 그녀에게 격앙되게) 생각해보세요, 바르바라 페트로브나! 어떤 방향으로 결정을 내릴지 생각해보세요! 되돌릴 수 없는 걸음이라고요...(생략)
아, 그래도 제가 당신을 가난하게 만드는 것이 죽게 내버려두는 것보다는 나을까요... 잘 생각해보세요, 아직 늦지 않았으니! (벌떡 일어나서) 잘 생각해보세요!
바르바라 페트로브나
(놀라며) 전 지참금이 있다고요!
젊은이
하하! 얼마요? 2만 3만 3천! 하하! 백만? 아 그 다음엔, 이것 외에도, 전 무언가를 횡령하고 싶어지겠죠. 안 되죠! 절대로! 전 당당해요! (그림같이 멋있는 포즈를 취한다.)
바르바라가 생각에 잠긴다.
바르바라 페트로브나
(고개를 숙이며 손을 내밀며)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눈물을 참으며) 정말 잘하셨어요, 저에게 이렇게 솔직히 말해주시다니... 저는 나약한 사람이라... 전 할 수 없어요... 전 당신의 짝이 될 수 없을 거예요... (통곡한다.)
젊은이
(당황하며) 어? 울지 마세요, 울지 마세요. 전... 전 참을 수 있어요.
바르바라 페트로브나
(슬픔을 억누르며) 당신이 옳아요! 제가 당신에게 시집가면 그건 당신을 속이는 일이에요. 전 당신의 아내가 될 수 없어요. 전 부자고 연약하고 마차를 타고 다니며 도요새를 먹고 값비싼 만두를 먹어요. 전 단 한 번도 점심으로 수프나 야채국을 먹은 적이 없어요... 그래도 전 이런 거 없이 못 살아요! 전 걸어다닐 수도 없다고요! 피곤할 거예요... 그리고 옷도... 이 모든 옷들도 당신 돈으로 재봉해야 될 거니까... 안 돼요! 안녕히 계세요! 전 당신에게 부족한 여자겠죠! 안녕히! (몸을 돌려 무대에서 나간다.)
젊은이
(얼마 동안 움직임 없이 그녀의 뒤를 바라본다.) 돌아오세요! 돌아오라고요! (객석을 향해) 젠장, 어떻게 일을 바로잡지? 그만 어리석은 말을 해버렸군. (자신의 뒤통수를 때린다.) 3만 3천! 도무지 이해를 못하겠군. 일을 망쳤어. 얼마나 어리석게 일을 망친 거야!
끝.
어떤가요? 너무 오버한 것이 문제였을까요? 말짱 도루묵이 되었습니다.ㅎㅎ
「희극의 파편」은 독자가 가볍게 마주할 수 있도록, 그저 장면을 꺼내어 놓기만 합니다.
적용 질문입니다.
1. 타인을 설득하기 위해선 많은 말이 필요하나요?
2. 자기기만과 자신감의 경계를 알고 있나요?
3. 나를 방어하기 위해 말을 하나요?
4. 말하는 것을 제외했을 때 그 사람을 무엇으로 평가하나요?
5. 화법과 외모를 제외했을 때 그 사람을 무엇으로 평가하나요? 그것은 가능한 일인가요?
「희극의 파편」은 ‘이상하게 오래 남는 순간들’을 의도적으로 골라내고, 붙잡고, 말로 돌려줍니다.
언젠가 나는 아미엘(스위스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 또 읽으려고 애쓰면서, 그 덕망 높은 편집자가 아미엘의 일기에서 무미건조한 도덕적 고찰만을 보존하기 위해, 일상적인 세부사항이나 호숫가의 날씨를 삭제한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데 대해서는 정말로 화가 났다. 낡지 않을 것은 아미엘의 철학이 아닌, 바로 그 날씨일 텐데.
-롤랑 바르트
오늘의 노래입니다.
Non Je Ne Regrette Rien Non, Rien De Rien,
아니요, 아무 것도 아니에요, 아니요, 나는 후회하지 않아요.
Ni Le Bien Qu'on M'a Fait, Ni Le Mal Tout Ca M'est Bien Egal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나한테는 다 똑같아요.
Non Je Ne Regrette Rien Non, Rien De Rien,
아니요, 아무 것도 아니에요, 아니요, 나는 후회하지 않아요.
C'est Paye, Balaye, Oublie, Je Me Fous Du Passe
대가는 치렀고, 시간은 이미 지나갔고, 잊었어요. 과거는 이제 없어요.
Avec Mes Souvenirs J'ai Allume Le Feu
내 추억으로 나는 불을 질렀어요.
Mes Shagrins, Mes Plaisirs, Je N'ai Plus Besoin D'eux
내 기쁨과 고통 모두 더 이상은 필요하지 않아요.
Balaye Les Amours Avec Leurs Tremolos
사랑도 씻어버렸어요. 사랑에 얽힌 것들도
Balaye Pour Toujours Je Reparas A Zero
영원히 씻어냈어요. 다시 제로부터 시작합니다.
젊은이 : 공허하군요! 10년을 사는데 몇 천이 들어가니 아마 몇 년 사는데는 충분하겠죠? 그럼 그 이후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