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莪, 재쑥, Descurainia Sophia
지난 4월 30일 오후에 나는 홀로 밤섬이 보이는 마포 강변을 산책하면서, ‘금춘간우과今春看又過’를 떠올리고 가는 봄을 아쉬워하며 꽃을 감상했다. 홍가시나무는 꽃망울이 맺혔고, 팔리빈라일락 꽃은 만개하여 향기가 그윽했다. 이팝나무 꽃도 한창이었고 팽나무는 이미 동글동글한 열매를 맺고 있었다. 명자나무 꽃은 지고 있었고, 버드나무와 수양버들은 솜털이 보송보송 달린 열매, 버들개지 ‘유서柳絮’가 익어가고 있었다. 풀밭에는 살갈퀴 자주색 꽃과 흰젖제비꽃, 꽃마리의 하늘빛 꽃, 뱀딸기, 애기똥풀, 노랑선씀바귀 노란 꽃이 어우러졌다. 한 시간 가량 청량한 봄날씨를 즐기며 강변 산책을 마무리할 즈음 풀밭에서 자잘한 노란색 꽃을 달고 있는, 깃털모양으로 갈리진 잎을 가진 작은 봄꽃을 만났다. 정상부의 노란 꽃 아래에는 가느다란 선형 열매가 맺혀 있었는데, 보자마자 나는 혹시 이게 ‘재쑥’이 아닐까 생각하며 사진을 찍었다.
도감을 확인해보니 정말 재쑥이었다. 내가 오랫동안 만나고 싶었던 재쑥을 마포 강변에서 우연히 만난 것이라 기뻤다. 재쑥을 보니 <시경>의 시 한편과 더불어 쇠약해지신 어머니 모습이 떠올랐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던 2020년 여름에 나는 어머니의 건강을 염원하며 <시경>의 시 ‘륙아蓼莪’에 나오는 식물이 무엇인지 찾아본 적이 있었다.* “부혜생아父兮生我하시고 모혜국아母兮鞠我하시니 애애부모哀哀父母여 생아구로生我劬勞삿다 욕보심은欲報深恩인대 호천망극昊天罔極이로다”가 들어있는 시이고, 부모를 잘 봉양하지 못한 자식의 안타까움을 노래한 시이다.
‘륙아蓼莪’에는 아莪(재쑥, Descurainia Sophia), 호蒿(개사철쑥, Artemisia apiacea), 위蔚(제비쑥, Artemisia japonica) 등 3종의 식물이 나온다. 그 중에 “커다랗게 자란 저게 아莪인가? 蓼蓼者莪”라고 부모 봉양을 위해 효자가 찾는 쑥이 바로 ‘재쑥’이다. 당시 나는 제비쑥과 개사철쑥은 봤으나 재쑥은 보지 못해서 꼭 만나고 싶었다. 식물도감에서는 재쑥의 국내 분포지가 전국의 길가, 농경지, 하천가, 습지라고 해서 쉽사리 만날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수차례의 식물 답사에서도 만나지 못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재쑥을 보고픈 열망도 거의 사그라질 무렵, 우연히 마포 강변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십자화과에 속하는 재쑥은 어린 줄기와 잎을 생으로 혹은 쪄서 먹을 수 있는데 맛이 좋다고 한다. 아마도 ‘륙아蓼莪’에서는 제비쑥이나 개사철쑥보다 맛이 더 좋은 재쑥으로 부모를 봉양하고 싶은 마음을 노래한 듯하다. ‘륙아蓼莪’의 몇 구절을 읊어본다.
蓼蓼者莪 커다랗게 자란 저게 재쑥인가
匪莪伊蒿 재쑥이 아니라 개사철쑥이네.
哀哀父母 슬프고 슬프구나 부모님께서
生我劬勞 나를 낳아 기르시느라 고생하셨네.
…
父兮生我 아버님 날 낳으시고
母兮鞠我 어머님 날 기르시니
撫我畜我 쓰다듬으며 길러 주시고
長我育我 키워 주시고 감싸 주셨네
顧我復我 돌아보시고 되돌아보시며
出入腹我 드나들 적마다 품어주셨으니,
欲報之德 그 은혜 갚으려 해도
昊天罔極 하늘이 무정하셔라.
재쑥 사진을 한참 보면서 다시 어머니 건강을 염원한다. 코로나가 발병한 해로부터 또 5년이 흘러 구순이 가까워지신 어머니는 더 쇠약해 지셨지만, 아직은 지팡이에 의지하여 혼자서도 가까운 곳은 걸어다닐 수 있음이 고맙기만 하다. 지난주에는 어버이날이 있어서 식구들과 함께 뵈었지만, 앞으로는 무슨 날이 아니어도 자주자주 찾아 뵈어야겠다.
<끝-2025.5.14>
*브런치 글, “한 없이 큰 부모님 은혜와 재쑥, 사철쑥, 제비쑥 - 아莪, 호蒿, 위蔚” 2021.8.6 (https://brunch.co.kr/@783b51b7172c4fe/8)
+표지사진 - 재쑥 잎 (2025.4.30 마포 강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