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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니 Nov 22. 2024

22살, 알에서 깨어난 기분이었다.

사소한 거 하나하나가 다 내 선택이고 책임이었다.

 전편에서 언급했듯 아직도 심리적 독립은 진행 중이지만, 어떻게든 독립을 꼭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계기가 있다. 22살에 떠난 교환학생 경험 때문이다.


 대학교 1학년 때 나의 통금 시간은 저녁 9시였다. 나의 뒤늦은 사춘기의 시작이었다. 애교도 부려보고, 울면서 싸워도 보고 했지만 부모님의 생각은 완강했다. 아빠는 "여자는 밤에 돌아다니면 위험해"라는 가부장적 사고방식을 그대로 주입했고, 엄마는 "네가 늦게 들어오면 엄마아빠가 잠을 못 자"라는 말로 나를 달랬다. 여러 번 전쟁을 겪은 끝에 저녁 11시로 늦춰지며 잠시 휴전했지만 말이다. 


 자연스레 부모님 품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교환학생이었다. 떠나기 며칠 전, 엄마는 내게 "드디어 소원을 이뤘으니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봐라"라고 했다. 그리고 난 정말 하고 싶은 대로 살았다. 아직도 기억나는 날이 있다. 학기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됐을 때다. 학교에서 친해진 친구가 어느 금요일 오후에 "오늘 뭐 하고 놀래?"라고 물었다. 그때 나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저녁 11시 이후에 나가보고 싶어!"라고 답했다. 그리고 우린 그날 그 동네에서 가장 핫하다는 펍에 가기로 했다.


 저녁 11시 30분쯤 기숙사 앞에서 친구들을 만났다. 떨리고 설렜다. 부모님 말대로 무섭지도 않았거니와 펍 부근은 말 그대로 인산인해였다. 다들 갓 일어난 듯 활기차고 재밌어 보였다. 그리고 새로운 친구들도 사귀며 정말 재밌게 놀았다. (이때 만난 독일 친구들은 내 교환학생 생활 내내 함께 했고, 그중 가장 친하게 지낸 한 명은 지금도 연락을 주고받는다. 그 친구는 벌써 아이의 엄마가 됐다.)


 사소한 거 하나하나가 다 내 선택이고 책임이었다. 22년 동안 엄마가 끼니 시간마다 챙겨주는 밥을 먹다가 원하는 시간에 먹고 싶은 대로도 먹어봤다. 물론 이렇게 하다 보니 확실히 '엄마 말을 잘 들어야 하는구나'를 깨달은 경우도 있었다. 예를 들면 야식을 평생 먹어본 적 없던 내가 불규칙한 식사에 야식에 술까지 마시니 살이 세 달 만에 10kg이 쪘던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몇 달을 하고 싶은 대로 살아보니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됐다. '밤늦게 나가서 노는 건 재밌어하지만, 새벽 2시가 한계구나.', '나는 술을 취할 때까지 마시는 스타일이 아니구나', '나는 술을 어느 정도 마시면 집으로 가고 싶어 하는구나'와 같은 거 말이다.


 세상에 대처하는 법도 깨달았다. '모르는 사람이 말을 걸면 이렇게 대처하면 되는구나.', '여기는 좀 위험할 수 있으니 앞으로 가지 말아야겠다.'처럼 말이다. 부모님이 대신 가르쳐줄 수 없는, 오롯이 내가 겪어야 깨달을 수 부분이었다.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그래서 엄마아빠 없이 좋았어?"라고 묻는 부모님에게 당당하게 "응"이라고 말했다. "클럽도 가보고 새벽에 들어오고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았는데 알에서 깨어 나온 것 같은 기분이었어."라고도 덧붙였다. 엄마아빠가 틀릴 때도 있다는 걸 증명해내고 싶었는데, 부모님은 "그때 우리가 몰랐어서 망정이지."라며 넘어갔다.


 이런 교환학생 경험이 없었다면 나는 평생 부모 품 안의 자식이었을 거다. 엄마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소위 말하는 '마마걸'로 직장 생활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부모 입장에서는 이게 최선의 사랑이었겠지만, 나는 늘 '혼자여도 괜찮은 어른'으로 인정받고 싶었다. 사랑과 관심을 주면서도 독립적으로 키울 수는 없었던 걸까. 부모도 부모가 처음이라 모든 걸 현명하게 해내기엔 어려웠겠지, 하고 이해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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