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친구한테는 다 얘기하면서 엄마가 걔보다 못하니?"
퇴근한 어느 날 저녁, 심심해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이가 이렇게 어색해지기 전엔 종종 하던 행동이었다. "응.. 잘 사는구나." 내 전화를 받은 엄마의 첫마디였다. 엄마답지 않은 말투에다가 힘도 없어 보였다. 무슨 일인고 물어보니, 내가 잘 사는지 걱정되고 궁금해서 며칠 밤잠을 설쳤다는 거다. 일정이 좀 고된 지방 출장을 다녀온 즈음이었는데 워낙 걱정주머니를 달고 사는 엄마라 대수롭지 않게 "엄마가 먼저 연락하지. 정신없었어." 하고 넘겼다.
이후에도 이런 일이 수차례 반복됐다. 일할 때는 예민하고 정신없는 걸 아니, 엄마아빠 나름대로 참는다고 참았단다. 그런데 엄마가 또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 "너 남자친구한테는 어디 가면 간다, 왔으면 왔다, 밥 먹었으면 먹었다, 이런 거 다 얘기하잖아. 엄마가 걔보다 못해?"라는 거다. 완전히 삐진 말투였다.
할 말을 잃었다. 웃으면서 "에이 엄마도 참. 비교할 걸 비교해야지!"라고 넘겼지만, 별다른 반박이 나오지 않는 나 자신도 답답했다. 더 생각하기 싫어서 그냥 단기적 처방을 내렸다. "알겠어, 엄마아빠가 원하는 게 내 위치 보고면 그렇게 할게." 그다음부터 우리 가족 단톡방에는 "집", "밥", 이런 일방적이고 의무적인 나의 단답 카톡이 쌓이기 시작했다. 물론 나의 반항심을 풀풀 풍기는 용도였다. 가끔은 회식 자리에서도 "집"을 의무적으로 보냈기 때문이다. "회식 자리야"라고 하면, "집에 가서 카톡 남겨놔. 안 그럼 엄마 못 자"라는 대답이 올 게 뻔하기에. 업무 보고 대상이 한 명 더 늘은 셈이었다.
하루는 엄마한테 물어봤다. "대체 뭐가 그렇게 걱정돼서 잠까지 못 잘 정도야?" 엄마도 스스로를 답답해했다. 나 역시 걱정거리가 있으면 잠을 설치는 엄마의 이 예민한 기질을 똑 닮은 터라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떨어져 사는 딸의 안위를 걱정하며 여생을 보낼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나. "엄마도 엄마가 답답해. 근데 너도 자식 낳아봐! 그게 그렇게 속 편하게 넘겨지나. 네가 평범하게 회사 다니는 것도 아니잖니."
부모님 딴에는 매일 불규칙한 일정과 장소로 출근하는 딸이 걱정될 수 있다. 그래서 부모님께 말을 안 하고 출장을 가거나 일을 할 때도 종종 있었다. 차라리 모르는 게 속 편할 거라 생각해서 말이다. "그냥 내가 엄마한테 말을 아예 안 하는 게 나을 것 같아. 나도 괴로워. 말하면 하는 대로 걱정하고, 안 하면 안 하는 대로 서운해하고 나중에 더 걱정하고. 대체 나보고 어떻게 하라는 거야?"
결국 궁금한 사람이 먼저 연락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나도 신경을 쓰는 대신, 엄마아빠도 기다리면서 서운한 감정을 쌓지 말고 그때그때 톡방에 이야기를 해달라고 협상하면 서다. 요즘은 "눈 많이 오던데 옷 따습게 입었지?"와 같은 평범한 안부 인사로 가족 톡방이 활기를 되찾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