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답지 못했던 자신을 잊어달라는 엄마
천천히 마음 정리해 볼게. 그렇지만 너무 서운해서. 이게 엄마의 한계인가 보다. 부모답지 못했네. 그냥 오늘을 잊어주면 좋겠는데...
반찬 걱정 하는 톡을 받고 답장을 선뜻 못하고 있었다.그러자 3분 뒤에 다시 온 톡이다. 발가벗은 엄마를 본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부모가 되어본 적은 없지만, 자식 앞에서 부모답지 못했노라고 고백하는 건 쉽지 않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이렇게 솔직하게 말하는 엄마를 처음 본다. 엄마랑은 온 우주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 이야기할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내가 뭐가 서운한지', '내가 뭐가 좋은지' 내밀한 감정을 주고받은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물론 남자친구 이야기는 30년 동안 꽁꽁 숨겼지만 말이다.) 그래서 이런 톡을 보내기까지 엄마도 많은 용기가 필요했을 게 느껴졌다. '엄마의 한계'라는 구절이 가장 마음을 울렸다. 엄마도 끊임없이 노력하는데 잘 안 된다는 걸 단적으로 보여주는 표현 같았다.
존중할게. 찜질 자주 하고.
택시 기사님이 뒷자리에서 숨죽여 우는 나를 봤으면 무슨 일인가 싶었을 거다. 입을 틀어막고 한참을 우는데 또 진동이 울렸다. 나를 존중하겠다는 엄마의 톡이었다. 성인이 된 이후 엄마와의 깊은 유착으로 답답할 때마다 내가 속으로 가장 많이 생각했던 단어 '존중'. 그게 엄마 입에서 먼저 나올 줄은 몰랐다.
엄마의 용기에 보답하고 싶었다. "나도 표현을 잘 못해서 그렇지 내가 제일 사랑하는 건 엄마아빠야. 그건 누굴 만나도 변하지 않을 거야." 나로서는 큰 용기를 낸 거다. 사실 부모님께 '사랑한다'라고 말한 적이 인생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는다. 우리 가족은 표현에 서툴다는 이유로 서로에게 '사랑해'라는 단어를 잘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남자친구에 대해 말할 때는 '너무 좋다'라고 표현하는 게 부모님께는 서운하게 느껴졌을 거라 생각한다. "당장은 어렵겠지만 시간을 갖고 엄마의 서운함을 잘 풀어보자"고도했다.
답장은 오지 않았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화장으로 열심히 눈물 자국을 지웠다. 바로 친구 결혼식에 가야 했기 때문이다. 퉁퉁 부은 눈으로 근육이라도 열심히 움직여가며 친구의 결혼을 축하하고 있을 때즈음, 아빠한테 톡이 왔다. 엄마하고 잘 풀었고, 맛있는 저녁을 먹고 왔다고 했다. 그제야 마음이 좀 놓였다.
택시를 타기 전 아빠한테 이런 이야기를 했다. "나도 지금 엄마가 이해가 잘 안 되지만, 사실 엄마가 제일 안쓰러운 건 맞아. 우리만 바라보고 살았는데 우리가 그런 엄마를 더 위해줘야 하지 않을까?" 누군가는 내가 너무 착한 딸이라고 했다. 가끔은 자식도 부모한테 매정해야 한다고 말이다. 어쩌면 내가 엄마를 놓지 못하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