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삼킨 듯 풍성해진 눈발이
영원한 마침표의 위세를 증언하려
내리고 내리고 내리고 내렸다
무수한 웃음 노랗게 뛰놀던
그곳의 그 들판 위에는
수북이 쌓인 눈의 서늘함 반짝여
멀리서도 살갗을 아리게 하였다
하루 전에도 존재하지 않던 백색이
백 년은 존재해 온 것처럼
천 년은 더 존재할 것처럼
고요한 폭정을 휘두르는 겨울
하얗게 까마득한 풍광은
시간의 춤사위 보지 못하도록
어지러이 두 눈을 괴롭히니
아 녹지 않는다 이 눈은, 하고
체념 어린 시선을 책장 위에 얹어
허무한 사상의 흔적을 매만진다
그렇게 하루 또 하루 또 하루 또 하루
시든 세상의 한구석에
나의 자그마한 온기 하나 남았을까
쓸쓸해진 숨으로 굳은 목을 돌리는데
창밖으로 보이는 신비의 흙빛과
차디찬 순결을 더럽히는 얼룩과
스륵 죽어가는 죽음의 정령들과
그친 적 없는 시간의 젖은 몸짓
어느새 녹고 있던 얼음 대지와
능선 위 흐릿한 봄의 조우(遭遇)가
내일의 형상을 조심스레 빚는다
하나둘 사그라드는 순백의 쉼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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