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촌 누나가 건내준 선물
"입금액… 10억 원?"
[입금 알림]
From the Future 님이 10억 원을 입금하셨습니다.
...
김유진은 화면을 터치했다.
� [첨부 파일 내용]
이 메시지를 연 사람에게 경고한다.
타임캡슐은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다.
이 시스템은 이미 조작당했다.
그리고… 강시후, 넌 이미 위험하다.
강시후는 숨을 삼켰다.
‘이건 단순한 시스템 오류가 아니다. 누군가, 캡슐을 의도적으로 조작했다. 그럼… 이걸 조작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지?’
STAR그룹의 타임캡슐 시스템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은 단 세 명.
나, 상무, 그리고 회장님.
회장님은 해외 안식년 중이라 계정 접근이 중지되어 있다.
그럼… 나 말고 이 시스템을 조작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
이태석 상무.
그 순간, 등 뒤에서 가볍게 누군가의 손이 어깨 위에 얹혔다.
강시후는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정하윤이 커피 한 잔을 들고 능청스럽게 서 있었다.
"야, 너 표정이 왜 그래? 귀신이라도 본 거야?"
강시후는 반사적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의 손끝이 떨리고 있었다.
지난 회식 자리에서 정하윤이 한 말이 그의 뇌리를 스치듯 지나쳤다.
강시후는 탁자 위에 놓인 소주잔을 기울이며 피곤한 얼굴을 했다.
1년 동안 준비해온 타임캡슐 이벤트가 성공적으로 런칭되는 날이었다.
옆에서는 동기들이 술잔을 부딪치며 떠들고 있었다.
"야, 강시후! 이번 이벤트 진짜 대박이다!"
"우리 회사에서 이렇게 큰 프로젝트를 맡은 게 몇 명이나 된다고?"
"그러니까! 앞으로 잘 나가는 거 아냐?"
강시후는 피곤한 와중에도 웃으며 잔을 들었다.
"그래, 다들 고생했어. 이번 이벤트 잘 끝내고 나면… 좀 쉬자."
그때, 옆자리에 앉아 있던 정하윤이 피식 웃으며 술을 한 모금 마셨다.
"근데 너희는 이 이벤트가 정말 그냥 재미로 하는 거라고 생각해?"
"뭐?"
동기들이 술잔을 들던 손을 멈추고 정하윤을 쳐다봤다.
"하윤아, 또 뭔 소리 하려는 거야?"
정하윤은 일부러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너희, 타임캡슐 괴담 들어본 적 없어?"
"뭔데, 그게?"
강시후는 잔을 내려놓고 정하윤을 바라봤다.
정하윤은 잔을 기울이며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 회사에서… 10년 전에 진행했던 타임캡슐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그때 캡슐을 보낸 사람 중에서 몇 명이 사라졌대."
"…뭐?"
"진짜야. 공식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발표됐지만, 내부 문서에서는 몇 명의 타임캡슐이 ‘예정된 시간’보다 일찍 돌아왔다고 하더라고."
"그게… 무슨 뜻이야?"
강시후는 알코올이 확 깨어나는 느낌이 들었다.
정하윤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타임캡슐이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었을 수도 있다는 거지."
그리고… 강시후는 술자리에서 정하윤이 너무 태평한 태도를 보이는 게 이상하다고 느꼈다.
그는 언제나 출근에 크게 스트레스 받지 않는 듯 보였고, 늘 ‘일을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사람’처럼 보였다.
동기들이 부러워하며 말했다.
"야, 정하윤. 너 솔직히 이 회사에서 굳이 일 안 해도 되는 거잖아?"
"아빠가 사업가라며?"
정하윤은 피식 웃으며,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뭐, 출근이 중요한 사람이 있고, 안 중요한 사람이 있잖아?"
강시후는 순간 멈칫했다.
그때는 그냥 농담으로 넘겼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정하윤, 너 대체 뭐 하는 놈이야?’
"너… 왜 이렇게 놀란 얼굴이야?"
정하윤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그의 어깨를 툭툭 쳤다.
"야, 너무 실내에만 있었더니 답답하지 않냐? 바람 좀 쐬고 오자."
강시후는 망설였지만, 정하윤이 그의 팔을 가볍게 잡아끌었다.
"마침 커피 한 잔 마시고 싶던 참이었는데, 같이 가자."
옥상에는 싸늘한 저녁 바람이 불고 있었다.
강시후는 손에 따뜻한 캔 커피를 쥔 채, 한숨을 내쉬었다.
"좀 낫냐?"
정하윤이 옆에서 캔 커피를 흔들며 말했다.
강시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무슨 일인데 그렇게 놀란 얼굴을 하고 있었어?"
강시후는 입술을 다물었다가, 결국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가 말한 이번 이벤트 첫 번째 당첨자, 김유진 고객 기억나지?"
"문래동 사는 고객? 최단 시간에 당첨된?"
"응. 그런데… 그 고객한테 10년 후에 도착해야 할 캡슐이 10분 만에 도착했어."
정하윤의 눈빛이 흔들렸다.
"뭐?"
"게다가, 캡슐 안에 내 이름이 적혀 있었고… 첨부 파일에는 ‘From the Future’라는 이름으로 10억 원이 입금됐어."
정하윤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문득, 옅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거… 어디서 본 패턴인데."
강시후가 눈썹을 찌푸렸다.
"뭐?"
정하윤은 멀리 보이는 도심의 야경을 바라보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강시후, 너 혹시… 4년 전에도 타임캡슐과 관련된 사건이 있었다는 거, 알아?"
"……"
"나는 알아. 그걸 아주 가까이에서 본 사람이거든."
강시후는 숨을 삼켰다.
"그게… 무슨 말이야?"
정하윤은 한참을 침묵하더니, 캔 커피를 바닥에 내려놓으며 중얼거렸다.
"4년 전, 내 사촌 누나가 실종됐어."
"……뭐?"
"그리고 그 직전, STAR그룹에서 타임캡슐 연구를 하고 있었지."
강시후는 정하윤을 똑바로 바라봤다.
정하윤의 표정은 평소처럼 장난스럽지 않았다.
그는 오직 복잡한 감정을 머금은 채, 바람이 부는 옥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부터였어. 내가 이 타임캡슐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게."
따뜻한 조명 아래, 정하윤은 커다란 소파에 앉아 작은 손으로 초콜릿을 까먹고 있었다. 온 가족이 북적이는 명절날이었다. 친척들이 모여 이야기하는 소리, TV에서 흘러나오는 예능 프로그램의 웃음소리. 하지만 그중에서도 정하윤이 가장 기다리는 사람은 따로 있었다.
"하윤아."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하윤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문 앞에는 한 여성이 서 있었다. 정지윤. 그의 사촌 누나였다.
"누나!"
정하윤은 밝게 웃으며 그녀에게 달려갔다. 지윤은 피곤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언제나처럼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정하윤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었다.
"또 초콜릿 먹고 있었네. 저녁 못 먹는다?"
"한 개만 먹었어."
지윤은 웃으며 옆에 앉았다. 그리고 작은 종이봉투를 내밀었다.
"이거, 네 선물."
"뭔데?"
정하윤이 봉투를 열어보자, 안에는 작은 노트와 펜이 들어 있었다.
"이거 뭐야?"
"넌 머리가 좋으니까, 네가 생각하는 걸 글로 정리해 보면 좋을 것 같아서."
정하윤은 고개를 갸웃하며 노트를 펼쳤다. 첫 장에는 지윤의 필체로 짧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하윤아, 네가 어떤 사람이 될지는 네가 결정하는 거야."
정하윤은 그 순간을 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 때부터 학업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학업과 대학입시 그리고 군대까지 다녀오니 15년이 훌쩍 흘러갔다. 그리고 그 일이 터진 것이다. 누나의 실종 사건.
그때는 몰랐다.
이것이 사촌 누나가 자신에게 남긴 마지막 말이 될 줄은.
'정하윤의 사촌 누나가 실종되었다고?'
'그리고 그게 타임캡슐과 연관이 있을 수도 있다고?'
그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여보세요, 지은씨?"
"네, 선임님. 김유진 고객님 건 때문에 전화 주셨나요?"
"그래. 고객이 아직 불안해하는 것 같은데, 오늘 저녁까지 계속 고객 계정을 모니터링해줘. 혹시 이상한 기록이나 추가 송금 내역이 생기면 바로 보고하고."
"알겠습니다. 그런데… 선임님, 저도 한 가지 이상한 걸 발견했어요."
"뭐?"
"김유진 고객님이 보낸 캡슐 메시지 있잖아요. 원래 보관 기간 동안 삭제되지 않아야 하는데… 아예 로그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요."
강시후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역시… 뭔가 조작됐다.'
"혹시 삭제 요청이 들어온 기록은 있어?"
"그게… 삭제 요청 자체가 없어요.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데이터가 통째로 사라졌어요."
강시후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알았어. 계속 상황 주시하고, 뭐든 발견하면 즉시 보고해."
"네, 알겠습니다."
통화를 끊고 난 뒤, 강시후는 핸드폰을 내려놓으며 정하윤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타임캡슐이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었을 수도 있다는 거지."
지금까지 단순한 해프닝이라고 생각했던 이 사건이, 뭔가 더 깊은 진실을 감추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정하윤, 상무의 얼굴이 스치듯 떠올랐다 지나갔다.
강시후는 정하윤이 단순한 장난이 아니라, 실제로 타임캡슐의 진실을 알고 있었을 가능성을 더 강하게 의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타임캡슐을 둘러싼 ‘진짜 조작’이 드러나기 시작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