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詩한 일기 9
내 아버지는 후두 암으로 돌아가셨지요. 살아계실 때는 알코올중독으로 가족을 참 힘들게 했어요. 가끔 멀쩡할 때도 있긴 했어요. 그럴 땐 언제 그랬냐는 듯이 호인이었어요. 어느 여름날, 얼큰하게 취한 아버지가 대문 밖에서 소리치며 집으로 들어오셨지요. 아버지가 술에 취했다 싶으면 자는 척하는 것이 최선이었어요. 괜히 눈앞에 얼쩡거리다가 트집이라도 잡히면 주먹질 당할 게 뻔했으니까요. 그런 아버지는 암을 진단받고 많이 당황해했어요. 지금이야 치료가 어느 정도 가능한 질병이지만, 그 당시는 암이다 싶으면 무조건 실의에 빠질 수밖에 없었죠. 돈 잡아먹는 병이라고 치료를 포기하던 때였어요. 그런데 아버지는 수술 당일이 되자 병원에 가지 않겠다는 거예요. 나는 마음에 없는 말로 '그래도 가셔야지요' 했죠. 한사코 거부하더군요. 결국 병원에 가질 않았어요. 그리고 몇 달 후 돌아가셨지요. 슬픔보다는 '이제 가족들이 힘들지 않아도 되겠구나'라는 안도감이 먼저 들었어요. 그런데 아버지가 병원 가지 않은 이유를 나중에 알게 됐어요. 그나마 집 한 칸 있는 것 병원비로 다 날려먹으면 안 되겠다 싶은 거였어요. 나이가 들어 당시 아버지 나이가 되고 보니 그 마음이 이해가 되더군요. 내가 참 몹쓸 짓을 했구나 싶었지만, 어쩌겠어요. 이미 지난 일인데요. 부모 마음이라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됐어요. 수술받는 것을 한사코 싫다 하시더라도 업고라도 가야 했어요. 내 가슴에 못으로 남아 녹슬고 있어요.
복숭아
달이 몰락한 골목에서 떨어진 유년을 줍는다
술 취한 사내가 더위에 끌려가는 언덕배기
복숭아를 담은 봉지가 비틀거린다
보름달을 따왔노라고 소리치며 귀가한 아버지
물컹한 복숭아를 잠든 내 입에 물리곤
까칠한 턱수염을 볼에 비볐다
얼큰하게 술이 오른 얼굴만큼 불그레한 복숭아
복숭아 과육이 배여 나온 진득한 기억은
머릿속에 포스트잇처럼 붙었다가
여름이면 밤하늘을 물끄러미 보게 했다
그 해 별은 왜 그리 반짝이던지,
별이란 별은 죄다 당신별이라 했다
별을 유난히 좋아해서 복숭 씨 같은 별을 삼키고
울대에서 키우길 서너 달,
아버지는 북쪽 하늘에 점지해 둔 별자리로 갔다
복숭아 밭뙈기 몇 마지기 살 돈을
왜 병원에 주느냐고 버틴 건 순전히 나 때문
늦은 귀가도 별을 사랑한 것도 다 자식을 위해서였다
학명에도 없는 복숭아 별자리가 내 기억 속에 들어서고
아버지와 나만 아는 밤하늘에
복숭아나무가 자라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