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제사를 지내요?

by 홍화

아내와 밥을 먹던 중 친척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던 중이었다.

큰엄마 댁에서 식혜가 먹어도 먹어도 줄지 않았다는 이야기, 그리고 감주와 식혜의 차이점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아내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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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근데 우리는 큰집이 어디야?"


"내가 첫째니까 우리 집이 큰집이지."

"그러면 내가 큰엄마야?"

"응. 남동생이 조카 생기면 이제 여보를 큰엄마라고 부르겠지?"



우리 아버지는 막내이시고, 차례든 제사든 다 큰집에 가서 지내기 때문에 아내는 자신이 큰 집이 된다는 사실을 잠깐 이해하지 못한 채 당황한 모습이었다.


"우리 부모님이 돌아가시게 되면 내가 큰 아들이니까 제사를 지내야 되니까 우리가 큰집이지."

"우리가 어머님 아버님 제사를 지내?"


그 순간 우리 둘의 핀트가 어딘가가 맞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무교이다.

그리고 아내와 결혼할 때도 종교가 '무교'라고 들었고, 나는 그것이 당연히 제사에 대해 암묵적인 합의가 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조상에 대한 예의범절이 물론 예전에 비해 많이 달라지고 점점 바뀌고 있지만

그것은 거추장한 허례허식의 간소화, 각 집안만의 스타일로 조상을 기리는 방식의 변화 혹은 종교의 신념 등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제사를 지내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고는 한 번도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아내와 좀 더 대화를 나누면서, 일단은 부모님이 돌아가신 이후의 상황이라는 점, 또 나 역시 반드시 제사상을 놓고 엄격한 제사를 지내는 것이 아닌 동생네 가족과 간단히 밥을 먹고 성묘를 가는 등 충분한 융통성을 발휘할 의향이 있다는 점 등으로 대화는 일단락 됐다.


아내가 오해한 가장 큰 이유는, 우리 큰집에서 보던 차례상·제사상을 '그대로 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나도 그렇게까지는 하고 싶지 않았다.)


그 대화를 하고 난 뒤, 나는 '우리 또래 친구들도 대부분은 제사를 안 지내겠지'라는 생각은 했지만, '우리 부모님 세대에서도 벌써 제사를 안 지내고 있나?'라는 의문이 들어 직장에서 동료들에게 물어보았다.


"난 지내지 않을까?"라는 말에 돌아온 대답은 이랬다.


"아직도 제사를 지내요?"

"요즘 시대에 큰일 날 사람이네."

"OO 씨. 몰랐는데 엄청 유교보이였네."


순간 나는 외눈박이 마을에 온 두눈박이가 된 심정이었다.

사실은 모두 두눈박이고 내가 외눈박이였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다른 사람들과는 내가 다르게 생각하고 있다는 걸 느끼고 충격을 먹었었다. 며칠이 지나 글을 쓰는 지금도 충격이 가시지 않는다.



돌아가신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기리는 것.

그 추모의 방법 중 하나가 제사라는 것.

제사가 아닌 다른 방식이 더 괜찮고 합리적이면 언제든지 그렇게 할 의향이 있다는 것.


저 세 가지의 생각으로 난 충분히 '깨어있고 보수적이지 않은 사람'이라 생각했다.

내가 아날로그적인 인간인 것과는 조금 다른 문제라고 생각을 했다.

물론 유교 또한 넓게 보면 종교적인 부분이기 때문에 남들에게 강요하는 게 맞지 않다는 것도 안다.

그래도 우리나라의 근간이 유교여서 내가 유교를 믿고 안 믿고를 떠나서 우리나라의 기본적인 절차들이 유교 기반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여겨왔고 그것들이 '당연한 것'이라 생각해 왔다.


명절에 해외여행 가거나, 가족 모임을 아예 하지 않는 경우도 많은데

'놀러 가지 않고 가족끼리 모여서 무언가를 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유교적인 틀을 깨지 못한 사람이라는 사실에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아버렸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사실 크게 생각은 바뀌지는 않았다.

생각보다 내가 유교적인 외눈박이였던 모양이다.


"그래도 뭐, 누군가는 유교를 지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게 왜 하필 나인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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