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나는 단순하게 돈이 많으면 풍요로운 삶이라고 생각했다. 돈과 행복은 N극과 S극 같은 사이라고 믿었다. 신축 아파트에 살고 비싼 옷과 좋은 차를 타고 다니면 부족함 없는 인생처럼 보였다. 큰 굴곡 없는 30년을 살아왔기에 앞으로 인생 목표는 저런 것들을 향해가면 된다고 믿었다.
그런데 1년 전, 예상치 못한 전세 사기를 당하고 내 생각은 달라졌다. 구축 아파트는커녕, 고작 6평 남짓한 원룸 전세 보증금을 날리게 생겼으니 말이다. 비록 돈은 잃었지만 지금까지 쌓아온 자아와 건강한 신체는 남아있다는 사실이 그나마 나를 안도시켰다. 그리고 생각했다. 돈 없이도 내 몸과 마음을 풍요롭게 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건강한 정신을 깃들게 하기 위해선 몸을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집 근처에 산책로가 있거나 달릴 수 있는 공간이 조성되어 있다면 삶이 풍요로워질 수 있다. 달리는 순간 땀이 배출되고 복잡했던 머릿속 잡념들이 사라지기 시작한다. 집 근처 양재천은 더할 나위 없이 달리기 좋은 환경이다. 이 환경을 누릴 수 있음에 진심으로 감사한다. 돈은 한 푼도 들지 않고 멀쩡한 두 다리와 운동화만 있으면 되니까.
집에서 에어컨을 틀고 치킨에 맥주 마시는 순간이 더 행복하다고? 하지만 그 행복감은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오히려 더부룩해진 위장을 느끼고 후회한다. 하지만 달리기는 달릴 때도, 달리고 나서도 행복감이 오랫동안 지속된다. 지속 가능한 행복은 큰돈이 필요하지 않고 단순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작년 가을, 호주 여행을 다녀오고부터 시작된 나의 달리기 열정은 지금까지도 쭉 이어지는 중이다.
새로운 책을 고를 때마다 말이 잘 통하는 새 친구 찾는 기분이 든다. 음식은 아무거나 잘 먹으면서 책은 편식을 한다. 흥미로운 분야나 한번 꽂힌 작가의 여러 작품들을 읽어 본다. 그렇게 읽다 보면 내 머릿속 흩어져있던 생각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될 때가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키울 수 있었다.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남들 눈에 오답처럼 보일지라도 나만의 확신을 가지고 정답처럼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나만의 생각들이 쌓이고, 쌓인 확신들은 나를 더욱 단단한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
개인적으로 집 근처 도서관보다는 회사 근처 도서관을 좋아한다. 잠깐이라도 회사를 벗어나 도서관에서 보내는 점심시간은 짜릿하기 때문이다. 대출증만 발급받으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빌린 책들은 대여기간 내 읽어야 하기 때문에 책 읽는 습관도 강제로 기를 수 있다.
내 브런치 첫 글 <전세사기를 당하며 좋은 점>에서 알 수 있듯이, 불안한 미래를 기록하고 극복해 나가는 글쓰기를 다짐했다. 브런치에 생각과 감정을 기록하다 보니 신기하게도 지금 당장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일이 구분되기 시작했다. 즉, 나에게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됐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일기 쓰기를 시작했다. 최근 <당신의 기록은 꽤나 대단합니다>라는 책을 읽었다. 꾸준히 일기를 쓰다 보니 긍정적으로 변화된 삶에 대한 내용이었다. 어떤 의도로 말하는지 이해가 됐다. 이런 기록의 힘을 깨달았기 때문에 이제는 브런치를 그만둘 수 없다.
다음은 추억을 기록하는 것이다. 5년 전, 필름 카메라를 처음 접하면서 사진을 찍기 위해 일부러 경치 좋은 곳에 가보기도 하고 그 순간을 기록하려 했다. 찍다 보니 애착 가는 사진들을 인스타그램에 올리게 됐다. 간단한 코멘트와 함께 올렸던 사진들은 볼 때마다 그때 감정이 생생하게 느껴지면서도 감회가 새롭다.
최근에는 숏폼을 만들기 시작했다. 여행지에서 찍었던 사진과 영상들을 조합하여 1분 이내의 짧은 영상으로 뽑아낸다. 어울리는 배경음악에 딱 맞아떨어지는 사진 및 영상 전환에 쾌감을 느낀다. 아직 영상 편집툴이 익숙지 않아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든다. 하지만 고생은 그때 잠시뿐이다. 앞으로 언제든지 영상을 보며 작년 가을, 뉴질랜드에 있었던 그 순간으로 돌아갈 수 있고 올봄에 떠났던 도쿄에도 갈 수 있으니 말이다. 한정된 추억을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것도, 찰나의 순간처럼 잊어버리는 것도 내 선택임을 알게 됐다.
지난달 발행했던 <비싸지만 결국 사게 되는 것들>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다. 내가 쓴 게시물 중 조회수 2위를 차지할 만큼 말이다. 폭발적인 관심에 따른 대가를 치르듯 악플(?)도 달렸다. 누군가에겐 공감되지 않고 그저 자랑처럼 보였나 보다. 역시 비싸지만 결국 사게 되는 이유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플은 싫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글을 쓰기까지 부단히 달리고, 책을 읽고, 기록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