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배추 숨이 죽지 않아 버무리지 못하고 밤이 지났다.
성격이 급해 소금을 많이 넣고 단시간에 절여 소태였던 지난번 김치를 겨우겨우 볶아먹고 국, 찌개 해 먹고 물에 담가 짠기를 조금 뺀 후에 멸치, 된장 넣고 자박자박 끓여 먹어 마침내 다 먹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딸이 소금을 조금 넣어도 그러려니 오래 절여야지 싶었는데 숨 죽을 기미가 없다.
여전히 빳빳하게 ’내가 고개를 숙이나 봐라.‘ 하는 것 같은 배추에게 겸손을 가르치기 위해 소금을 더 뿌려보았다.
생각보다 강인한 배추의 자존심에 내가 먼저 무릎을 꿇고 깨끗이 씻어 물기를 빼고 양념을 좀 더 짜게 한다고 했는데 이번엔 어찌 싱거운 것 같다.
-딸 방 옷장을 열었는데 갑자기 문이 떨어져서 순간 당황했다.
무거워서 혼났다.
다행히 남편이 아직 집에 있어 급히 불렀다.
집이 오래돼서 힌지 나사가 다 떨어지고 너덜너덜하다.
내가 열어서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하고 한쪽 구석에 문을 세워뒀다.
보기가 불편하다.
그 옷장 한 칸에 이것저것 잡동사니가 있었는데 아이가 그곳에도 옷을 걸 수 있게 해달라고 해서 아들방과 딸방 옷장을 다 열어 물건과 옷을 다 꺼내고 닦고 정리하고 허리가 나가는 줄 알았다.
그래도 하고 나니 개운하다.
딸은 요구사항이 많아서 때때로 피곤하다.
남편이 언제 문을 달아줄지 몰라 캉가로 옷장을 살짝 가려보았는데 핀이 또 들어가지 않아 아들을 몇 번 부르고 핀잔을 듣고, 여하튼 오늘 별 생쇼를 다 했다.
어제 분명히 오늘은 제대로 쉬어보기로 했던 것 같은데 평소보다 더 많은 일을 한 것 같다.
다행히 김치 담그는 것 외에는 요리를 거의 하지 않았다.
내가 아이고 힘들어, 아이고 허리야, 노래를 부르니 아이들이 밥 해달라는 소리도 안 하고 알아서들 챙겨 먹는다.
-깊숙이 넣어뒀던 옷들을 꺼내 여행 가방을 미리 쌌다.
마음이 한결 가볍다.
-남편과 딸이 외식하자고 하여 저녁 준비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남편이 차가 엄청 막힌다며 평소보다 늦게 집에 왔고 지도를 보니 길이 온통 빨갛다.
그냥 집에서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남편이 애들도 쉬는 날이었는데 그냥 나가자고 하고 내일 모처럼 게임도 없어서 가벼운 마음으로 나갔다.
자주 가는 한식당은 앉을자리가 없을 정도로 가득 찼고 늦은 시간까지 손님이 계속 왔다.
지인의 식당이 꽉 찬 모습을 보니 내가 다 흐뭇했다.
손님들 중에는 특히 커플들이 많았는데 이 정도로 밸런타인데이를 챙길 줄은 몰랐다.
남편은 케냐에 공휴일은 있어도 우리나라처럼 명절 같은 게 없어서 특별하게 더 챙기는 게 아닌가 싶다고 한다.
어쨌거나 다들, 사랑하며 살고 있구나.
-기도, 프렌치토스트, 컵떡볶이, 밥&김&갈치속젓&양배추&마늘, 삼겹살, 된장찌개, 짬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