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통장에 고이 쌓아두기만 했던 돈이기에 "열심히" 모았다고 하기는 어렵겠지만, 아무튼 장장 십 년 동안 차곡차곡 쌓아두기만 하던 돈을 누군가에게 왕창 내어줘야 한다고 생각하니 왠지 모를 허전함이 있다. 집을 사기 위해 돈을 모은 것도 아니고, 그냥 쓰는데 취미가 없어서 쌓여있었을 뿐인 돈이기에 누가 털어간다 해도 아쉽지 않을 줄 알았건만.
이전에는 거래를 하기로 약속 한 날과 실제 서류 작성일까지의 시간 동안 계약이 엎어질까 봐 불안했다면, 이번에는 약속과는 다르게 여전히 집에 남아있는 세입자 때문에 불안하다. 워낙은 분명 중도금 날까지 모든 세입자를 내보내기로 약속했었는데……. 물론 세입자를 내보내는 거야 내 몫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뭉게뭉게 피어나는 오만가지 생각, 그걸 막을 방법은 당최 없다.
조건이 지켜지지 않았기에 중도금 날짜를 미룰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이미 전셋집에서도 이사를 나와버린 터라 거래 자체가 엎어지는 것에 대한 우려가 상당했기에 결국은 아무 말도 안한채 웃는 얼굴로 그 중도금이라는 걸 그냥 내 버렸다. 부디 좋은 선택이었기를.
계약서를 쓰던 날 속상한 마음에 며칠 동안 막걸리만 양껏 자셨다던 집주인 어르신. 중도금 때도 그러실까 내심 걱정했었는데, 다행히 이 날 얼굴은 나름 밝으시다. 아마 네 달이라는 시간이 자기 역할을 좀 했던 거겠지. 이번에는 부디 마음이 너무 힘들지 않으시기를.
이래저래 꽤나 삐걱대면서도 여전히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