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 미팅
북촌의 많은 한옥은 얼핏 보면 죄다 비슷해 보이지만, 가만 들여다보면 전체적인 구조나 벽체(壁體)는 말할 것도 없고, 기와의 질감부터 시작해서 합각의 넓이나 높이, 용마루에 몇 겹으로 기와를 올렸느냐 까지 어느 것 하나 같은 집이 없다. 북촌 4경에 올라 조용히 바라보는 가회동의 아름다운 풍경이야말로 이런 다양함을 즐기기에 제격.
한옥은 이러한 다양함이 주는 아름다움이 큰 건축물이기에 건축 과정 내내 건축주와 건축가는 여러 차례 만남을 가지며 정말 많은 사항에 대한 결정을 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모든 것을 건축가에 맡기고 '알아서 해달라'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건축가는 건축에 대한 전문가일 뿐 '우리 집'에 대한 전문가일 수는 없기에 그런 식의 일방적인 작업으로는 건축주의 필요를 충족시킬 거라 판단하긴 어렵다.
사실상 대수선에 준하는 규모의 공사를 앞둔 우리는 본격적인 디자인 미팅을 시작하기 전 두어 번의 사전 미팅을 통해 집에 대한 일종의 관념적인 내용을 건축가와 공유했다. 전문가가 아니기에 정확한 상(像)을 제시할 수는 없어도 평소 꿈꿔오던 집의 대략적인 인상을 전하는데 의의를 둔 것. 딴은 평소 살아가는 공간에 대한 많은 궁리를 하며 짜낸 생각 이건만, 돌아보자니 그 모호함에 괜스레 민망해진다.
예쁘기는 하지만 지나치게 전시공간 같거나, 차가운 느낌의 집에는 살기 어렵겠다는 생각을 자주 해왔고- 내게는 소위 말하는 '호텔식 인테리어가' 그렇게 느껴진다- 빛과 바람이 잘 드는 필지를 고른 만큼 그로 인한 장점은 최대한 끌어내고 싶었다.
매우 긴 시간 동안, 그것도 두 번이나 미팅을 가져야 할 만큼 주고받을 이야기가 많았고, 모호한 주제였음에도 초인적인 인내심을 바탕으로 단 한 번의 막힘도 없이 각각에 대한 현실적인 답을 내어준 건축사무소에 새삼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