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디자인 미팅
본격적으로 설계 작업이 시작되면서 주변 사람들과 집 얘기를 부쩍 많이 하게 되었는데, 실측도를 보여주면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가 "저 가운데 뻥 뚫린 건 뭐야?"이다. 해당 공간은 비단 한옥에서만 특징적으로 보이는 구조는 아니고, 여러 지역의 다양한 문화권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중정(中庭, courtyard), 그러니까 건물의 벽으로 둘러싸인 실외 공간이다.
한국이나 일본집의 중정이 다른 나라의 중정과 다른 점이 있다면, 실내 공간과 실외 공간 사이에 실내인지 실외인지 모를 애매한 구조(툇마루, 쪽마루 등)를 배치한다는 점. 나쁘게 보자면 이런 공간은 실내 공간이 좁아지는 효과를 내기도 하지만, 좋게 보자면 실내와 실외 공간 사이에 일종의 완충(buffer) 공간으로 역할을 하여 실외 공간인 중정의 활용도를 극대화할 수 있게 해 준다. 개인적으로는 매사에 있어(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도) 완충 공간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믿는 편이라 이런 구조가 더없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평면 구성이야 혼자서도 열심히 해왔고, 사전 미팅에서도 측량도를 보며 이에 대한 이야기를 충분히 나누었기 때문에, 어떤 차이가 있기에 '첫 번째'라는 말이 붙는지 언뜻 알 수 없지만, 여하튼 드디어 시작된 첫 번째 디자인 미팅. 갑작스레 내 눈앞에 나타난 건 무려 3D 조감도였다. 막연하게 평면도를 보며 상상해 보던 미래의 우리 집이 그럴싸한 모습으로 그려져 있는 모습은 참 감동적이라 목이 메어 잠시 동안 말을 하기 어려웠을 정도.
기쁨도 기쁨이었지만 제한점 역시 현실적으로 다가오기 시작한다. 나름 넓은 축에 속하는 필지임에도 막상 이것저것 욕심을 내다보니 집이 전혀 넓다고 생각되지 않는점, 아파트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데리고 사는 큼지막한 냉장고의 상당한 존재감, 그리고 무엇보다 별도로 떨어져 있는 사랑채라는 공간의 모호함.
이 날의 만남은 저녁식사를 시작으로 무려 밤 11시까지 이어졌는데, 건축주 입장에서 소소하게 아이디어를 내고, 취향을 밝히며, 뭔가 꾸준히 징징대기는 했어도 분명 건축가의 역할이 압도적이었던 시간. 그 긴 시간 온갖 얘기를 다 들어주고, 답 없이 멍청한 질문에도 명쾌한 답을 내며,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쏟아내는 건축가의 모습은, 방향성을 띄어 가기 시작하는 우리 집의 모습과는 별개로 참 신비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