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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서울 Jan 11. 2023

수수와 일곱 마리의 동물들 - 1

1.


밤은 무서웠다. 수수는 눈을 질끈 감은 채 가만히 누워있었다. 이불을 턱 밑까지 덮고 팔은 그 속으로 넣어 눈과 코만 겨우 삐져나와있었다. 자기 직전에 상상한 것들은 꿈에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배우고 난 뒤, 수수는 매일 밤 꽤 오랫동안 침대에 누워 상상을 했다.


‘천장에 거꾸로 매달린 귀신이랑 눈을 마주칠지도 몰라. 아니면 내 팔만큼 꼬리가 긴 쥐가 내 목을 그 꼬리로 감싸는 거지. 아니면 벌레. 엄청 큰, 내 몸보다 큰 벌레가 털북숭이 다리로 나를 쓰다듬는 거야. 으으! 아니면, 아니면 빨간색 지네가 백 개 넘는 발들로 내 배를 올라탄다던가! 지금 눈을 뜨면 귀신은 없어도 칼을 들고 있는 사람이 침대 옆에 서서 나를 쳐다볼 수도 있어. 저번에 꿨던 꿈처럼 코에 스펀지 같이 구멍이 가득 생겨서 숨을 못 쉴 수도 있고…….’


너무 무서워진 수수는 왼쪽 눈만 힐끔 떴다. 눈동자를 돌려 방 안을 구석구석 살피고, 팔을 이리저리 휘적여 침대 위에 아무것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콧구멍으로 숨을 세 번 힘차게 마시고 내쉬고 나서야 다시 눈을 감았다. 그새 무엇을 상상하고 있었나 까먹었는지, 수수는 다시 처음부터 상상을 시작했다.


‘천장에 매달린 귀신이랑 긴 꼬리 쥐. 그리고-’ 


삐-삐-삐-삐.


두 눈이 번쩍 뜨였다.


‘괴물.’


수수가 그때까지 상상했던 모든 무서운 것들이 머릿속에서 달아났다. 현관문이 열렸다. 수수는 자신의 요령대로 아주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두 발을 침대에서 내렸다. 차가운 정적이 수수를 휘감아 온몸에 닭살이 삐죽삐죽 돋았다.


쿵. 구두 하나가 벗겨졌다. 쿵. 두 번째 구두가 벗겨졌다. 수수는 계속 기다렸다.


‘…….’


드디어 현관문이 요란하게 끼익거리며 닫히기 시작했다. 


‘지금.’


수수는 재빨리 몸을 일으키다가,

“어!”


수수는 놀라서 두 손으로 허겁지겁 입을 틀어막았다. 오른쪽 발 옆에 널브러져있던 책에 걸려 넘어질 뻔한 탓에 수수가 입으로 소리를 내고만 것이다.


현관문의 끼익 소리가 멈췄다. 또 다시 정적이 흘렀다.


그때, 무엇인가가 수수의 오른쪽 엄지발가락을 쿡 찔렀다. 아래를 힐끗 보니, 방금 전에 수수를 거의 넘어뜨렸던 책의 모서리가 발가락 사이에 끼어있었다. 책의 표지에는 나무늘보 한 마리가 엎드려있었다. 나무늘보는 두 손을 포개 턱을 괴고 수수를 쳐다보고 있었다. 수수는 입을 막고 있던 손을 떼지 않고 그것을 향해 속삭였다.


“너 때문이야.”


나무늘보는 개의치 않고 똑같은 자세와 표정으로 수수를 쳐다보았다. 그 동물이 띠는 약간의 미소는, 괴물의 발소리가 수수의 방문 앞까지 다가오는 그 짧은 시간 동안에 수수에게 어떠한 확신을 주었다.


수수는 손을 내려놓고 다시 한 번 속삭였다.


“도와줘.”


괴물이 방문을 열었을 때, 수수는 사라지고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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