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내 이름은 수수야.”
수수는 제자리에 서서 두 다리를 배배 꼬았다. 괴물의 발소리는 이제 들리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상황이 엄청 나아진 것 같지도 않았다. 바로 앞에 있는 이 동물이 착한지 어떤지는 아직 모르는 일이었다. 게다가 나무늘보는 이제 조금 무서울 정도로 미동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수수의 손가락은 점점 떨리기 시작했다.
‘도와달라 그래서 도와줬으니깐 착한 동물일 거야. 그런데 왜 아무 말도 안 하지? 내가 너무 작게 말해서 못 들었나? 다시 한 번 말해볼까? 내가 목소리가 조금 작긴 해. 그래도 들렸을 텐데. 아직도 뭐라고 말할지 생각하고 있나? 살아있는 건 맞겠지? 살아있는데 저렇게까지 안 움직일 수가 있나?’
수수가 이 모든 질문들을 생각하는 동안에도 나무늘보의 미소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더 이상 질문이 떠오르지도 않아서 수수는 그냥 고개를 푹 숙여 손깍지를 꼈다. 하도 떨었더니 손가락에 핏기가 창백했다. 만약 그때 수수가 조금이라도 고개를 다시 올렸다면, 완벽히 고정되어 있었던 나무늘보의 입꼬리가 아주 미세하게 내려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수수는 계속 자신의 허연 손가락만 멀뚱히 응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무늘보의 목소리가 들리자 화들짝 놀라 뒷걸음질 쳤다.
“안녕, 수수야.”
한 음절씩 느리게 또박또박 말을 하는 나무늘보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책 표지에서 나무늘보의 미소를 보았을 때처럼 수수는 다시금 희한한 안도감을 느꼈다. 그 목소리는 나쁜 동물이 낼 수 없는 목소리였다.
“난 나무늘보야. 우리는 널 도와주러 왔어.”
“나를?”
“응. 너를. 우리는 너를 도와주고 싶어.”
“‘우리’가 누구야?”
나무늘보는 다시 천천히 입꼬리를 올려 미소를 지었다.
“이 책에 있는 일곱 마리의 동물들. 우리끼리 비밀회의를 열었어.”
수수는 손깍지를 풀고 곰곰이 생각했다. 이 책에 있는 동물들에 대해.
3.
수수는 동물들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사람들이 자주 서로에게 ‘넌 동물을 좋아해?’ 혹은 ‘강아지 좋아하니?’와 같은 질문을 하는 것이 그 이유였다. 동물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각자 나름대로의 성격을 가지고 있을 텐데, 왜 제멋대로 그들을 몽땅 좋아하거나 싫어하는지 수수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책에 있는 동물들은 달랐다. 책에는 글이 없고 그림만 있었다. 그래서 그 동물들이 각각 어떠한 동물인지 알 수 있는 길은 없었다. 그럼에도 수수는 그들을 좋아했다. 동물들 모두 분명히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사실은 많이 슬퍼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눈빛이 그렇게 수수에게 말해주고 있었다.
‘착한 사람은 나쁜 사람보다 더 많이 울어서 눈이 반짝거려. 동물도 같을 거야.’
그러면서도 수수는 사과를 잊지 않았다.
‘서로 잘 모르는데 이렇게 함부로 생각해서 미안! 그래도 난 너희를 좋아할 거야.’
수수는 밤중에 조용히 눈물을 흘리다가도, 머리맡에 놓인 책을 보면서 옆에 누군가가 자신처럼 슬퍼하고 있다는 생각에 우는 것을 그치곤 했다. 그만큼 수수는 그 책에 있는 동물들을 좋아했다.
‘역시나 내가 맞았어. 너희 착한 동물들이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