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식
“사랑이 뭐라고 생각해요?”
막걸리와 육전을 앞에 두고 잠시 어딘가로 데리고 간 질문이었다.
"사랑.. 음 사랑.. 사.. 라앙.. 음.. "
'뭐라도 떠올라야 골라 보기라도 할 텐데 이렇게 아무것도 없다니..' 나는 결국 현란한 뜸 들임으로 기대를 잔뜩 올려놓고는 이렇게 대답했다.
“ 모르겠어요..”
바이킹이 제일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커다란 바람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앞으로 알게 되면 좋겠어요. 나만의 사랑의 정의를요.”
Character : 소설이나 연극 따위에 등장하는 인물. 또는 작품 내용 속에서 드러나는 인물의 개성과 이미지.
배우는 캐스팅이 된 순간부터 촬영이나 공연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 캐릭터와 동거를 한다. 가끔은 나 자신보다도 더 많이 아는 것 같이 느껴질 때도 있지만 그렇더라도 불안의 그림자가 따라다녀서 촬영이 끝나는 날까지 질문과 고민은 절대 마르지 않는다. 우리는 선택을 받아야만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기에 어떤 인물을 맡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밉상 캐릭터를 맡게 되면 그 인간이 싫어도 비호감을 잘 표현해야 하며 비상식적인 캐릭터를 맡으면 세상에 저런 인간이 어디 있나 싶어도 '여기 있네'를 연기로 보여 주어야만 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연기를 할 때 즈음이 되면 어느새 캐릭터를 이해하고 있고 유일한 편이 되어 옆에 서 있는 것을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작년에 촬영한 독립영화에서 내가 맡았던 캐릭터는 불임여성으로 아이를 갖기 위해 거래를 하는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을 하는 캐릭터였다. 첫인상에서 다가가야 할 거리가 멀수록 작업은 고단해지며 난항을 겪게 되는데 이 캐릭터 역시 마음을 알기까지 꽤 오랜 시간을 투자해야 했다. 배우들마다 자신만의 방법이 있겠지만 나는 결핍이 삶의 동력을 강하게 만들어 주었기에 캐릭터의 결핍을 많이 사용하는 편이다. 그리고 절대 잃고 싶지 않은 것을 찾는다. ‘그녀의 어린 시절에는 아빠가 없었고 가난이 있었다.’라는 감독님의 설정을 빛 삼아 평생을 따라다닌 결핍을 보상해 줄 만큼의 결혼이라면 이 행동이 가능할 수 있지 않을까? 라며 길을 더듬더듬 나아갔다. 그녀에게 결혼은 목숨을 지키는 일과 동일했다. 내가 보기에 어떻든 그녀의 남편은 그녀의 결핍을 채우기에 훌륭하다. 그렇다면 그녀는 아이를 원하는 남편에게 반드시 아이를 주어야만 하며 자신의 결혼을 지키기 위해서, 아이를 사는 일이 마음에는 걸리지만 죽음만큼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 된다, 매우 절박하게, 미치도록 간절하게. 이렇게 납득을 하고 나면 더 이상 캐릭터의 비상식적인 행동은 내 앞을 가로막지 못한다. 그 빈자리에는 반드시 이루고자 하는 의지가 자리를 잡고 어떻게 하면 이룰 수 있을까 하는 열망이 기지개를 켠다. 공감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 세상에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은 없다. 이해를 하지 않는 나 자신만이 존재할 뿐'이란 관념은 바로 여기에서 만들어졌다. 캐릭터를 이해하는 시도가 겹겹이 쌓여져 내 삶으로까지 전염된 자유를 입은 선물이다.
얼마 전 실존인물로 캐릭터 구축을 해보는 워크숍에 참가한 적이 있었다. 캐릭터연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중 자신이 맡은 인물을 사랑할 수 있는지에 대한 주제가 나왔다. 살인자일지라도 그 캐릭터를 사랑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말에 사랑의 정의를 어떻게 두느냐에 따라 가능하다는 점에 모두가 동의를 했다. 이때, 한 배우님이 깊이 이해하는 것이 사랑인 것 같다고 했다. 나와 인물과의 거리를 좁혀가는 노력, 이해를 해보려는 시도가 사랑일 수 있겠다고 말했다. 이 말은 잔잔한 여운으로 남아 집으로까지 동행했다. 이해는 사랑 뒤에 따라오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반대로 깊은 이해를 하려는 시도에서 사랑이란 감정이 생겨날 수도 있었다. 나는 그녀를 사랑했다. 말도 안 되는 일을 행하는 그녀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시간 속에서 사랑이 피어났다. 현장에서 그녀를 대변하는 나를 보고는 한 동료가 무섭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런 말을 들어도 아무렇지 않았다. 이 세상에서 그녀를 이해하는 사람은 나뿐이면 됐으니까. 그리고 그녀가 행복 해지길 바랐다. 영화는 그 장면으로 끝이 났지만 이후의 삶이 지난 시절의 아픔을 치유할 만큼 기쁨으로 가득 차기를 바랐다. 이게 사랑이 아니면 무엇이라 할 수 있을까.
‘캐릭터’라는 단어는 등장인물 외에도 특징, 성질, 성격, 괴짜 등 여러 가지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실제로 ‘너 캐릭터 있다.’ ‘캐릭터 연기 그만해.’ ‘너네 둘이 캐릭터 겹치네.’ 등으로 때로는 부정적으로 쓰이기도 하며 개성과 독창성이 있는 표현으로 쓰이기도 한다. 누군가 나에게 ‘너 캐릭터 있다’라고 했을 때 ‘너 괴짜 기질이 있네’가 될 수도 있고 ‘너 특징 있네’가 될 수도 있듯, 사랑 역시 모두가 지닌 모양이 다르다. 나는 이 전까지 사랑을 몰랐다. 내가 어떻게 사랑을 하는지 어떨 때 사랑을 받는다고 느끼는지 대답할 수 없었다. 그런데 내가 캐릭터를 사랑하게 된 모양을 찾고 나니 거리감을 좁히기 위해 기꺼이 노력을 하는 대상, 이해를 해보기 위해 마음과 시간을 쓰는 대상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사랑을 하거나 받는 법을 모른다고 스스로 낙인을 찍어왔는데 아니었다. 보편적인 빨간 사랑과 달랐을 뿐, 나만의 사랑에 고유한 색과 형태가 있었을 뿐 나는 사랑을 하고 있었다. 나의 사랑은 내가 알아봐 주길 기다리면서도 묵묵하게 고유의 사랑법으로 주고받기를 하고 있었다.
당신은 어떨때 사랑을 느끼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