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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으로 점점 난쟁이가 되어간다.

믿어주는 것과 믿어야 하는 것

by 여토 Mar 13. 2025

큰 아이가 유치원 때 우유갑으로 만들기를 한 날 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친구 작품을 자기 것이라 우긴다고 한다.

단순한 착각이었을까?


초등 1학년이 되었다.

아이 친구엄마에게서 연락이 왔다.

자기 아이의 소중하고 특이한 볼펜을 엄마의 큰 아이가 가져갔다고 한다.

모르고 그랬을까?


1학년 짝꿍엄마가 잠깐 보자고 한다.

수업 시간에 짝인 자기 아이의 뺨을 때렸단다. 선생님도 알고 계신단다.

진실여부를 확인한 후 맞다면 정중히 사과드려야 할 문제라 다음날 상담을 잡아 선생님께 여쭤보았다. 전혀 모르는 일이라 하셨다.

어떤 행동이 오해를 샀을까?


초등2학년 때의 일이다.

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기가 센 친구들  그룹에 어울리고 싶은데 안 껴주니 다툼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잖아도 몰래 문자를 보니 집에 없는 고양이를 키운다는 둥 온갖 관심 있을 법한 거짓을 늘어놓아 환심을 사려고 했는 정황이 보여 불안했던 엄마였다.


어느 날 큰아이가 울면서 속상해한다.

남자아이가 괴롭힌단다.

여학생 전체를 괴롭히는데 같은 반 여자애 엄마들이 거의 다 항의전화했는데 엄마만 안 했단다.


반전체가 모두 키즈폰 없는데 자기만 없단다.

친구들 모두 바퀴 달린 힐리스를 사서 신고 다니는데 자기만 없어 따돌림당한단다.

친구들끼리 단톡 만들고 하는데 자기만 없어 안껴준단다.


늘 귀가 후 불평불만에 하소연에 사달라는 조름과 친구들이 자신에게만 불리하게 하거나 안 친하게 한다는 말을 쏟아낸다.


초등3학년이다.

순하디 순한(그렇게 보였던) 같은 반 엄마가 전화를 받자마자 소리를 지른다.

교장교감에게도 자신의 아이 A랑 같은 반 안되게 해달라고 했는데 왜 같은 반 됐냐며 따지고 오는 길이란다. 당신 아이 욕하고 괴롭히는 거 아느냐, 당장 이사가던지 자식 교육 똑바로 시키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아이들과 외식하러 나왔다가 날벼락이다.

음식이 나와도 눈앞은 캄캄하다.

이게 무슨 일인가.


며칠 전 엄마가 직접 눈으로 본 일들이 떠오른다.

주민센터에서 요리수업을 하고 영어수업을 한 후 시간이 늦어 데리러 갔었다.

첫 달이라 같이 수업하는 새 친구들에 대해 종알종알 얘기할게 뻔하니 둘이 집으로 오는 길에 두런두런 얘기 나눌 생각에 마중 나갔던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친했던 A가 어느 날부터 자신을 따돌린다고 속상해했던 그 A와 같은 영어 수업이었던 것이다.

아이들 친구문제를 어른이 섣불리 끼어들기 그래서 조용히 따라 걷고 있었다.

계속 A는 친구들과 귓속말을 하며 엄마 큰아이를 힐끔 보며 웃기를 반복하였다.

분명 엄마가 느꼈던 A의 이미지는 착한 아이였는데 직접 자신의 아이를 따돌리는 상황을 목격하니 가슴이 아팠다.


그런 A에게 서운해도 참았는데 되려 저쪽에서 분노한다.

엄마가 모르는 학교에서의 큰 아이모습이 어떤 걸까 혼란스럽다.


늘 아이가 불만이었다.

왜 엄마는 학교에 전화를 안 하냐며 자신이 친구 때문에 힘든데 선생님께 도움요청을 안 하고 늘 자신에게 참거나 이해하라고 하냐며 서운해했다.

이런저런 일로 전화하는 게 민폐 같고 더욱이 친구문제는 사소한 사적인 문제로 크게 다치거나 심각한 따돌림이 아닌 이상 전화하는 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한 엄마다.


초등4학년이다.

선생님께 전화가 온다.

조금 어눌한 손주가 걱정된 할머니가 반아이들에게 당신의 손주를 잘 부탁한다며 햄버거를 돌렸다.

그 남학생에게 엄마의 큰아이가 실수로 머리를 때렸단다. 학폭을 열겠다는 걸 선생님이 실수이니 이해해 달라고 설득하여 무마했다고 한다.

약자를 괴롭힌 거라 엄마는 너무 괴롭다.

떤 양육방식이 이런 행동을 키운 건지 돌아보게 된다.


여학생을 자주 괴롭히던 문제의 남학생이 옷에 달린 지퍼로 큰아이의 머리를 찢어놨음에도 속상하기보다는 누굴 괴롭힌 대상이 아닌 피해자가 된 것에 오히려 안심하는 엄마다.


유치원 시절 사이가 안 좋은 여자아이가 엄마의 큰아이 손가락을 서랍에 낀 채 닫아버려 크게 다친 적이 있을 때도 가해자가 아님에 더 마음을 놓은 엄마는 큰아이 편에 서서 이해해 주고 아이 입장을 헤아려주기보다는 낯부끄러워 동네를 못 다니는 처지가 더 원망스럽다.


중1이다.

아직은 책이 좋은 큰아이가 높은 경쟁률과 면접도 통과해 3년 사서활동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우연히 시작하게 된 발레로 입시준비를 시작해 자주 조퇴를 한다.

같은 조를 이룬 동료들은 불만이 생기게 된다.

며칠 만에 사서활동을 한 어느날 특목고를 바라보는 B가 큰아이 머리를 쥐어박으며 비난하는 말을 했단다.

큰아이는 당장 담임선생님에게 불쾌한 감정을 전했다.

B의 담임도 오신다.

B의 담임은 잘못을 했음에도 적극적으로 B의 입장을 대변하나 큰아이 담임은 반아이가 당했음에도 무마하고자 하는 눈치다.


한 해도 빠지지 않고 사건과 사고로 학교에서 연락을 받은 엄마는 진위여부와 상관없이 지치고 피곤하다.

누구에게 피해 준 적도 없는 평화로웠던 엄마 인생에  이토록 불편하고 힘든 감정은 처음이다.


그저 어릴 적 책만 읽어주고 책만 좋아하는 아이면 다 해결될 줄 알았던 엄마다.

덕분에 작은 아이는 책을 무진장 읽어낸다.

큰아이는 언젠가 책 좋아하는 아이로 크게 해 줘서 고맙다고도 했다.

그런 아이였다.

그런 아이에게 1순위는 친구이고 매개체는 휴대폰이다.

관심사가 온통 친구이고 관계를 맺기 위해 욕으로 강하게 보이려 하고 거짓말로 환심을 사려하는 모습에 엄마는 길을 잃게 된다.


염색을 하고 싶단다.

고집을 부려 결국 큰아이는 탈색한다.

미용실에서도 만류했던 색깔을 기어코 한 후 지금은 염색 자체를 싫어한다.

뭐든 직접 해봐야 아나보다.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봐야 알까?

나쁜 짓 혹은 부모가 하지 말라는 건 단 한 번도 한적 없는 엄마에게 큰아이는 버겁고 이해할 수도 없으며 쳐들어오는 적군처럼 점점 싸울 상대가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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