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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과 내게 함께 흐른 세월

영화의 위로 16 . 홀랜드 오퍼스(1995)

by 최영훈 Jan 12. 2022

기념일 챙기는 데 서툰 사람이라 5월도 무신경하다. 그러다 요 근래 딸이 줌 수업 하는 걸 보다보니 초등학교 선생님이 요샛말로 극한직업임을 실감하며 스승의 날의 의미를 새삼 생각하게 됐다. 그렇게 모니터 너머, 고단한 선생님을 보다보니 한 선생님과 이 영화가 떠올랐다.      


평생을 기억하고 산 칭찬

이봉우 선생님은 내 중학시절 영어 선생님이다. 그때는 중학교에 들어가서야 알파벳을 배웠던 시절이니 그 선생님의 가르침은 말 그대로 신세계로 인도하는 가이드였다. 선생님은 작은 키에 렌즈가 두꺼운 안경을 꼈고, 한쪽 다리가 구두의 굽만큼 짧았다. 농구도 잘 하고 유머감각이 뛰어났던 선생님은 내가 2학년이 되던 해에 결혼 하셨다. 옛날 말로, 바바리가 잘 어울렸던 우리 반 담임선생님이 영어 선생님이 수시로 교무실에서 예물 시계를 자랑한다고 투덜대던 기억이 있다. 이렇게 이봉우 선생님에 대해 세세히 기억하고 있는 건 내가 받은 가장 큰 칭찬이자 첫 번째 칭찬을 해준 선생님이기 때문이다.      


2학년 학기 초였다. 미화 부장이 시를 하나 써 달라고 했다. 교실 뒤 게시판을 꾸며야 하는 데 거기 붙일 시가 필요했기에 부탁한 것이었다. 1학년 때부터 문학소년 흉내를 내고 다녔는데, 그 소문이 학년이 바뀌어도 따라왔었던 탓이다. 대략 원고지 대 여섯 장 분량의 시를 써 줬고, 그 친구는 그걸 뒤에 붙였다.      


어느 영어 시간, 필기를 할 동안 교실을 조용히 배회하던 선생님이 게시판 앞에 한참을 머무셨다. 그때만 해도 큰 키여서 교실 뒤쪽에 앉았던 터라 선생님의 동태에 신경이 갔다. 잠시 후 선생님은 “최영훈이 누구냐?”하고 물으셨다. 쭈뼛대며 손을 들으니 대뜸 “너 장래 희망이 뭐냐?”하고 물으셨다. 당시엔 조용한 시골 초등학교 선생으로 평생 살고 싶었던 지라 “전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고 싶습니다.”했더니, “그 코흘리개들이 네 세계를 이해하겠냐? 공부 열심히 해서 영문과 나와서 교수해라.”하고 말하셨다.      


그 후 그 말씀이 드라마 <도깨비>의 그 보이지 않는 장검처럼 평생 마음에 박혀 있다. 강사로 대학에서 처음 강의 할 때도 제일 먼저 선생님이 생각났다. 강사 시절 연은 맺은 제자들과 학교 밖에서 마주할 때도, 스승의 날 특선 영화로 해주 곤 하는 <홀랜드 오퍼스>를 우연히 볼 때도 생각났다. 


잠도 덜 깬 어린 것들을 화면 안에 붙잡아 놓고 어떻게든 한 자라도 가르쳐 보려 애쓰는 탓에, 하루치 진을 다 쏟아 놓을 것이 분명한 딸아이 담임선생님의 온라인 수업 소리를 서재 문틈으로 듣곤 했던 작년엔, 부쩍 더 이봉우 선생님의 그 칭찬이 , 그 선생님을 닮은 이 영화의 스승이 더 자주 생각났다.       

   


음악가에서 스승으로

1964년, 성공을 꿈꾸는 음악가 홀랜드가 있다. 언젠간 자신이 작곡한 교향곡을 지휘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지만 예나 지금이나 예술가의 현실은 녹록치 않고 아내는 임신을 했다. 꿈만 쫓기엔 가장의 책임이 크다보니 결국 밥벌이를 찾아 나선다. 그렇게 들어선 음악교사의 길. 예전 대학 다닐 때 음대 다니던 친구들 대부분이 교직 이수를 했는데 이 음악가도 그리 대비해 놨던 것이다. 그의 말대로 보험을 들어 놓았던 것. 출근한 학교는 존 F. 케네디 고등학교. 음악 수업은 쉽지 않고 교내 교향악단의 연습은 삐걱거린다.      


그러나 이듬해 아들이 태어나고 성공한 음악가로 가는 여정에 잠시 머물 도피처로 여겼던 음악교사의 일은 서서히 천직이 된다. 음악에 흥미가 없는 학생들을 로큰롤과 클래식을 비교하며 음악의 세계로 인도하고, 클라리넷에 자신 없어 하던 학생에겐 마음으로 음악을 맞이하는 법을 가르친다. 음악의 음자도 모르는 미식축구 선수에겐 손뼉과 발 박자를 함께 하며 큰 북을 가르쳐 팀에서 활동하게 돕는다. 그 와중에 모자란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방학 때마다 학생들의 운전교습을 도맡아 한다.      


가르치는 보람 사이에 여러 아픔도 찾아온다. 좋아하는 뮤지션인 존 콜트레인에서 이름을 따온 아들 콜이 청각 장애를 갖고 있다는 걸 알고 좌절한다. 또 큰 북을 가르쳤던 학생 루 러스가 베트남 전에서 전사했다는 비보를 접하기도 한다. 그렇게 4년만 하기로 마음먹고 시작한 교사 일은 30년을 이어가 1995년까지 이어진다. 그동안 음악은 비틀즈와 스티비 원더를 거쳐 힙합으로 바뀌어 갔고 교습하는 자동차와 학생들의 패션도 변해 갔다. 그 자신 또한 흰 머리의 베테랑 교사가 됐고, 소통하기 힘들던 아들은 어느덧 아버지를 존경하는 훌륭한 청년이 됐다.      


시대가 바뀌고 예산이 준 탓에 예체능 과목은 폐지되고 30년간 음악교사를 한 그도 은퇴를 하게 된다. 마지막 장면, 아들과 아내 손에 이끌려 간 강당엔 그의 은퇴식이 준비되어 있고, 무대의 막 뒤엔 그가 30년 간 가르친 제자들이 힘을 모아 꾸린 교향악단이 자리하고 있다. 이들이 마지막으로 연주한 곳은 홀랜드의 교향곡 <American Symphony>, 지휘는 당연히 작곡가이자 스승인 홀랜드다. 


이 영화의 원제 <Mr. Holland's Opus>를 직역하면 <홀랜드 선생님의 작품>이다. 이 제목이 영화의 주제다.  이 주제는 클라리넷으로 자신감을 찾은 여학생 -그 30년 후 오리건 주의 주지사가 된- 거트루드 랭이 연주를 앞두고 한 연설로 함축된다. “선생님은 자신의 곡으로 유명해지고 싶으셨죠. 그러나 그 꿈이 이뤄지지 않아 자책하고 후회하셨죠. 하지만 선생님, 주위를 둘러보세요. 우리 모두가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았고 훌륭하게 성장했습니다. 우리가 바로 선생님의 교향곡이고, 멜로디고, 음표이고, 인생의 음악입니다.”     



찾아주는 제자쓸모 있는 어른

인연을 이어가는 제자 중 동종 업계에 들어 온 녀석에겐 그냥 선배라 부르라 한다. 학교 밖 강사에게 교수님이라는 호칭은 여간 무거운 게 아니니 말이다. 그런 제자들이 만나자 하면 만난다. 질문과 고민을 갖고 마주 앉으면 먼저 묻는 안부는 늘 같다. “건강하냐? 운동은 하냐? 책도 읽고 공부도 하냐? 청춘가는 데 연애는 하고 사냐?” 자주 만나는 놈들은 이런 질문에 당황치 않고 대강 답한 뒤 자기 보따리를 풀어 놓는다.      


그 보따리에서 쏟아진 질문과 고민의 답은 쉰에 접어든 내게도 없다. 그러나 정답을 주겠다는 욕심 없이 그냥 들어준다. 용한 점쟁이 찾아오는 심정으로 온 것이 아니라 대부분 그저 들어 줄 어른이 나 밖에 떠오르지 않아 온 것이라 짐작되기 때문이다. 내 짐작이 맞는지, 오래 들어주면 대부분 밝은 얼굴로 돌아간다. 가끔은 유튜브를 같이 해보자, 팟캐스트를 같이 해보자는 제안도 해줘서 즐겁게 새로운 경험도 해 봤다. 젊은 제자이자 후배에게 아직 쓸모 있는 어른이니 감사할 뿐이다.     


체감 된 세월의 무게

나 또한 찾아뵈고 싶은 스승이 있으나 미뤄온 세월이 길다. 자리 잡으면, 스승께서 자랑스러워할만 하면, 명함이 내밀만 하면 인사드리겠다는 다짐을 반복하며 보낸 세월이다. 그 세월의 무게를 최근 실감했다. 작년 봄, 삼십 대 초반 강사 시절에 만난 제자에게 아주 오랜만에 전화가 왔다. 반갑기도 하고 뜻밖이기도 해서 그 이유를 물었더니 일 때문에 상의 드릴 일이 있다고 했다.   

   

주말에 약속을 잡고 집 앞 카페에서 마주했다. 웬 아저씨가 앞에 앉아 있었다. 전형적인 광고 대행사의 부장급 AE 형색이었다. 살이 적당히 붙은 풍채엔 여유와 관록이 가득했다. 어느 방송국 로비에서 우연히 만난 후 십 여 년은 못 봤으니, 그동안의 안부를 간단히 묻고 본론에 들어갔다. 큰 건축 프로젝트가 있는데 그 백서를 내게 맡겼으면 했다. 그 일의 규모와 금액이 제법 커서 놀랐고, 이런 프로젝트를 단독으로 추진할 만큼 회사 신임을 받는 중역이 내 제자라는 것이 뿌듯했다. 명함을 꼼꼼히 다시 보니 이사였다.  

    

그렇게 일 얘기를 마무리하고 헤어지는데 카페 한 귀퉁이에서 제자의 아내와 이제 막 어린이집에 들어갔을 법한 어린 딸이 나와 인사했다. 주말이라 예쁘다 소문난 카페에 동행한 것이다. 교수님이라는 소개에 민망히 맞절을 하고 서둘러 나왔다. 세월은 제자와 스승 모두에게 공평하게 흐른다는 걸 그 때 알았다. 내가 나이 드는 동안 제자 또한 나이 들었다. 내가 나이 드는 동안 스승 또한 늙으셨다. 그 자명한 사실이 죽비처럼 내리쳤다. 이제 내 나이 쉰이니 스승의 연세는 몇이실지, 가늠할 수 없다.      


다시 다짐하며 살아간다.

프로젝트를 맡긴 제자에게 전화가 오면 꼭 김이사라 불렀다. 그 회사에서 회의 할 때는 항상 경어를 썼고, 둘이 있을 때도 함부로 낮춰 말하지 않았다. 험한 광고 바닥에서 십 몇 년 버텨낸 이에게, 한 집의 가장으로 잘 살아온 사내에게 보내는 내 나름의 경의였다. 제자가 기특하고 감사했다. 그 마음 끝에 스승에 대한 죄송함이 고개를 들었다. 연락하지 못한 죄송함, 스승의 기대에 못 미쳤다는 자책이 커졌다.      


그런 내게 영화는 위로를 보낸다. 인생은 어떤 목적을 이룸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살아낸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것. 삶의 순간들이 모아져서 인생이라는 한곡의 교향곡이 완성 된다고. 영화 중에 나온 존 레논의 <Beautiful Boy>의 가사 한 줄도 같은 위로를 보탠다. 그 가사 한 줄, 이렇다. ‘Life is what happens to you, While you're busy making other plans’, 직역하면 ‘인생이란 네가 뭔가 계획을 짜느라 바쁠 동안 너에게 일어나는 일들이다.’라 할 수 있다. 


인생이라는 교향곡은 어떤 목표의 성공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모든 순간, 모든 결정, 모든 아픔과 기쁨, 그리고 인연 맺은 모든 사람들이 어우러져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이 한 줄의 가사는 위로한다. 홀랜드가 아들을 위해 수화로 불러줄 첫 노래로 이 곡을 선택한 이유다.        


스승은 5월마다 기다리실 지도 모르겠다. 자기 몫의 밥벌이를 하면서 가정을 꾸리고 자식을 키우고 삶을 버텨낸 중년의 제자가 언젠간 찾아오기를. 그 기다림을 예감하면서도 참, 마음먹기 힘들다. 건강하고 오래 살아주시길 바랄 뿐이다. 조금이라도 이름이 나, 스승의 말년에 작은 자랑거리가 됐으면 하는 헛된 욕심을 아직 버리지 못한 제자를 용서해 주시길 바랄 뿐이다.          

           


*대문 사진은 울산 태화강 국가정원의 가을 풍경이다. 태화루에서 야외공연장쪽으로 건너다보면 외롭게 서 있는 한 그루의 나무와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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