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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왔어요?

서울 아니면 모두 시골

by 어린왕자


지방도 아니고 시골이랍니다


적어도 저는

사투리 티를 내지 않으려 무던히

애를 씁니다

먼저 시간을 두었다가

머릿속을 굴린 대로 가볍게 툭

"기시님" 내던지면

기사님은 눈치채지 못하리라 여깁니다

흘깃 백미러로 쳐다보시는데

티 났나? 벌써?

그래도 차분히 촌티 내지 않으려고

'있잖아요' 같은 건 빼고

"남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리나요?"

아주 낮고 부드러운 톤으로 다가갑니다

"시골에서 왔군요."

아~ 지방도 아니고 시골이라니요

갑자기 더 촌스럽게 보셨나 싶어

많이 서운해지더라고요

"기사님, 시골이라는 말 너무 오랜만에 들어요."

"서울 아니고는 다 시골입니다."


그래도 그렇지

광역시도 많고 이름난 도시도 많은데

굳이 시골이라니요

지방도 아니고 시골이라니요

기사님, 너무 낮추신 거 아닌가요

그러다 보면

사투리 안 쓰려 무던히 애쓰던 것이

스르르 무너지고 맙니다

자연스럽게 억양이 높아지고 낮아지고

시소를 타다 이내

우아한 모습을 보이려 정신을 차립니다

서울의 야경을 보는 데는

사투리가 작렬합니다


기사님은 껄껄 웃으시다 재밌다 하시다

연신 고개를 돌리고 백미러를 쳐다보십니다

서울 사투리가 제겐 너무 어렵습니다


ㅡㅡ늘 다짐하는 게 있습니다. 강의를 하면서 좀 더 억양을 낮게 최대한 부드럽게 다가가려 노력합니다. 제 발음이 너무 억세서 제가 듣기에도 참 난감합니다. 또록또록한 발음인데 톤만 살짝 낮으면 얼마나 듣기 좋을까요. 그래서 살짝 서울 표준말로 바꿔 말하면 아이들은 기겁을 합니다. 아~ 이상하고 어색해요. 샘 억양이 최고예요. 억양이 뭐가 중요해요 잘 가르치면 되지요, 합니다. 그래도 저는 부드럽게 바꾸고 싶은데 말입니다.


한 번은 최대한 나름대로 사투리를 쓰지 않으려 억양을 낮춰 제 목소리를 녹음한 적 있어요. 어떻게 들리나 객관적으로 들어보니 웬걸, 괜찮더라고요. 사실 누구의 목소리인지 영 딴판이긴 했지만요. 어색하고 민망하고 부끄러워서 다시는 녹음 같은 건 안 한다 했습니다.



어제 크리스마스날 서울을 갔다가 남산에 올랐습니다. 전시회나 공연을 보기 위해 가끔 서울을 가면서도 계획에 넣지 않았던 남산을 이번엔 꼭 가보리라 했거든요. 기차 시간은 아직 남았고 하여 버스보다 돈을 더 줘도 편하게 가려고 택시를 탔던 겁니다. 야, 우리 티 내지 말자, 입 딱 닫고 할 말만 해라. 하지만 시골에서 온 사람들임을 이미 택시 문을 열고 탈 때부터 기사님은 눈치채셨을 겁니다.


"안녕하세요!~~~" 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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