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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숨 Mar 17. 2022

그녀의 임신이 슬픈 이유

축하하지 못하는 고통

  나 임신했어 아직 9주라 조심스럽긴 한데..


  회사 동기에게 온 카톡. 순간 이명이 온 것처럼 주위 소리가 아득히 멀어졌다. 가슴은 쿵쾅거리고 끊었던 담배가 생각났다. 결국 걱정하던 일이 벌어진 것이다.


  사실 눈치는 채고 있었다. 그녀는 며칠 사이 표정이 부쩍 밝아졌고 카톡 프로필 사진도 기도하는 손 모양으로 바꿨다. 하지만 나는 그동안 잔인하게도, 그게 사실이 아니길 바라고 있었다. 그래서 일부러 그녀에게 '임신한 거야?'라고 묻지 않았다. 이미 실연을 예감하면서도 연인의 입에서 '헤어지자'는 말이 나올 수 없게 괜히 날씨 얘기를 꺼내는 사람처럼, 맹수를 만나면 머리를 땅에 파묻어 버리는 타조처럼, 결말을 알고 있으면서도 회피했다. 


타조 "내가 안 보이니까 남도 내가 안 보이겠지?"


  생각이 거듭되는 사이 나는 점점 정답에서 멀어져 가고 있었다. 누군가 임신했다고 했을 때의 모범답안은 5초 이내로 "오!!!!"라고 '1보'를 날린 뒤, "대박!!!!!"이라고 한 번 더 쓴 뒤, 그다음엔 진심을 담은 축하의 말을 건네야 한다. 나는 이미 30초가량을 허비하고 있었다.


  사실 그녀는 난임 동지였다. 우리 부부만큼이나 힘든 시간을 거쳤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난임 전투에서 동지의 존재는 소중하다(앞선 글 '그 병원에선 누구도 웃지 않는다' 참조). 그래서 누구보다도 격한 축하를 해줘야 마땅하다. 예를 들면 이런 말들이다.


  "너무너무 잘됐다!!! 역시 기적이 찾아왔네!!!"

  "그동안 정말 고생 많았잖아!! 진짜 기쁘다!!!"

  "우리한테도 기운 좀 나눠줘 ㅎㅎ 축하한다 정말!!!"

  "그나저나 임산부가 얼른 안 들어가고 뭐해~~!!!"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았다. 아내의 슬픈 얼굴이 겹쳐졌기 때문이다.


임신을 축하해줘야 하는데.. 아무 말도 쓸 수가 없다


  전우애는 전장에서만 유효하다. "애는?" "딩크야?" 같은 아무 생각 없는 질문들을, 우리 난임부부들의 속을 후벼 파는, 총알 같은 시선들을 함께 견뎌내며 서로의 든든한 힘이 된다. 하지만 난임 동지 가운데 한 명만 생환에 성공할 경우, 전장에 남아있는 전우에게 해줄 수 있는 건 불행히도 없다. 


  그녀도 그걸 누구보다 잘 알기에 회사 사람 중 내게 가장 마지막으로 얘기한 것일 게다. 아마도 말하기 직전까지 많이 망설였을 것이다. 난 그녀가 임밍아웃을 한 지 무려 1분이 지난 후에야, 그것도 느낌표를 딱 한 개만 찍어 답을 보냈다. 그녀에게 너무 미안했다. 하지만 나로서는 이게 최선이었다.


"우와 축하해 역시 내 느낌이 맞았구나!"



질투와는 차원이 다르다


  불과 3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친한 친구가 아이를 낳으면 카톡을 보내지 않았다. 곧바로 전화를 했다. 얼마나 고생이 많았냐며, 아빠가 된 심정이 어떻냐며 진심으로 축하를 건넸다.(오지랖이지만, 제수씨를 바꿔달라고 해서 통화한 적도 여럿이다.) 그 정도로 친구의 출산을 내 일처럼 기뻐했다. 그런데 2020년 난임 전투가 벌어진 뒤로는 오히려 고통이 됐다. 축하를 해야 하는데 축하를 못 하는 답답함, 내가 한없이 속 좁은 사람이 되는 것 같다는 죄책감, 그리고 비참함.


  이건 질투와는 다른 문제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것, 이게 질투다. 사촌이 산 땅이 대한민국에 남아있는 마지막 땅이 아니라면, 그까짓 땅 나도 열심히 돈 벌어서 사면 그만이다. 친구가 좋은 성적을 받아서 샘이 나면 나도 열심히 공부해서 100점 맞으면 된다. 


  그러나 난임이라는 건, 그냥 뭘 열심히 한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다. 자칫 삶의 궤적 자체가 달라질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의 몸에 하루에도 몇 번씩 날카로운 주삿바늘이 꽂히는 일이다.


질투는 적어도 슬프지는 않다


  에잇 나 빼고 다 임신이야


  아내는 가끔 내게 동료들의 임신 소식을 전하며 푸념한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만큼, 아니 나보다 훨씬 가슴이 주저앉을 것임을 잘 안다. 그래서 나는 주변 사람들의 임신 사실을 아내에게 절대 말하지 않는다. 가슴을 후벼 파는 그 고통으로부터 조금이나마 아내를 지키고 싶어서다.



나도 어른이 되고 싶다


  차에서 라디오를 듣는데 '해피버스 K'라는 저출산 캠페인 광고가 흘러나왔다. 아이를 낳으면 이런저런 부분이 좋다는 내용이었다. 혼자 있는 차 안에서 나도 모르게 콧방귀가 나왔다. 우리는 아이를 낳고 싶어 죽겠는데, 제발 아이 좀 낳으라는 광고를 듣고 있으니 기가 막혔다. 그리고는 얼마 전 걸려온 친한 형의 전화가 떠올랐다.


"애는 몇이라고 했지?" 

"아 아직 없어요 형"

"결혼한다고 다 어른이 아니야. 애를 낳고 키워야 그제야 어른이 되는 거야 하하"

"아 그럼 저는 아직 어른이 아닌 거네요 하하"


우리 부부가 꿈꾸는 '어른'의 삶


  이처럼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출산'이란 그저 '선택'의 문제일 뿐이다. 누군가에게는 가능과 불가능의 영역일 수도 있다는 것을 대다수는 떠올리지 못한다. 그걸 안다면 "애는?"이라는 질문을 그렇게 시도 때도 없이 던지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당연히 남의 임신 소식에 벌벌 떠는 이 심정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오늘도 우리 부부는 소중한 사람들의 임신을 축하하지 못하는 잔인한 고통에 시달린다. 자발적 딩크라는, 슬픈 오해를 받으면서 말이다.




<오늘도 아내를 바늘로 찔렀다(부제: 난임부부 생존기)첫 화부터 보기 https://brunch.co.kr/@a1f9702194b543e/1

새 연재 <일상의 인상> 보기 https://brunch.co.kr/@a1f9702194b543e/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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