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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적인 위선자

부담을 조금씩 덜어내보려 한다

by 사적인 유디 Feb 15. 2025


어릴 때부터 착한 아이라는 말을 많이 들어왔다. ‘착하다‘, ’배려심이 많다‘ 라는 칭찬을 주위 사람들에게 줄곧 들어 왔었고, 주위 사람에게 실망을 주기 싫어 더더욱 상대방을 위해 맞춰왔다. 우습게도 나와 제일 가까운 가족들한테만 ‘착한 딸‘, ’착한 동생’이 되지 못한 채, 착한 친구, 착한 학생, 착한 동료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가족들 앞에서는 한없이 못된 딸이 되기도 하고, 어쩔 때는 악귀에 씐 것 마냥 바락바락 화내고 짜증내기도 한다. 하지만, 집 밖만 나가면 사람이 달라졌다.


남에게 착한 사람으로 인식받기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그저 상대방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면 착하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고, 그들이 정한 착한 아이 행동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으면 됐다.


예민한 성격 탓인지 상대가 무엇을 싫어하는지 쉽게 파악할 수 있었고, 눈치를 보며 행동할 수 있었다.


꽤 오랜 시간 이런 점에 대해 불편함은 없었다. 가끔 ‘왜 나만 이렇게 배려를 해야 하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내 성격이 그런 것이니… 내가 배려했다고 해서 남들도 나한테 배려해야 한다는 ‘기대감’을 버렸다.


오직 내가 하는 행동은 나를 위한 행동이라 생각했다. 남에게 무언가를 바라고 하는 행동이 아닌, 오직 나를 위한 행동이라며 착각 속에 살았다. 남에게 착한 사람으로 인식되는 것에 집착하며 말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주위 시선에 대한 부담이 점점 커져갔고, 내가 원하는 모습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위선자 노릇을 해왔다. 나를 잃고, 남을 위해 사는 삶이 지속된 것이다.


누군가가 ‘나에게 실망을 하면 어쩌지?’라는 생각을 하며, 내 삶을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 내 삶의 결정을 남에게 의지하기도 하며, 남이 하는 말에 쉽게 휘둘리기도 했다.


그러면서 나를 원치 않는 방향으로 몰아세울 때는, ‘왜 이렇게 나를 잘 몰라줄까’ 하며 마음 아파하기도 했다.

나의 생각을 제대로 표현하지도 않으면서 남이 나를 몰라 준다며 슬퍼했다.


남이 나에게 기대하는 모습은 내가 원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그들이 정해준 틀과 다른 선택을 했을 때 받았던 주위의 실망한 눈빛이 아직도 선명하지만, 이제는 이 부담감에 대해 내려놓으려 한다.


그 누가 억지로 압박하는 것이 아닌, 오직 나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삶을 살아가려 한다. 남에게 실망을 주기 싫어서 착한 체하는 위선자가 아닌, 내가 온전히 친절할 수 있고,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착한 사람,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한다.


남에 의해, 남을 위해 결정되지 않는 나의 삶을 살아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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