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을 위한 GEN-Z Guidebook
안녕하세요!
곽수현 사비나입니다.
2024년 마지막 일요일입니다.
오늘이요!
매주 일요일 글을 써 올려
연말이 되면
상당한 양의 글을 모아두리라!
다짐했는데-
시간은 가버리고
이 글은 그 기간의
막 글이 되었습니다.
12월 초 한국엔
모두의 상상을 초월한 일이 일어났지요.
제가 중학교 1학년때
이라크 전쟁 발발의 충격
그 이상의 충격으로
제가 많이 어수선했습니다.
그땐 어린 맘에
이 세계에 전쟁이 없는 줄 알았는데
그것도 미국이라는 나라가
무기를 사용하는 장면이
TV에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것을 보며
놀라웠거든요.
그때의 제게
전쟁이란
1-2차 세계대전, 625 한국 전쟁 등
다 '과거'의 일이고
'그들'이
'야만'적으로
결정하고 행한 것이며
'내'가 살고 있는
이 시대 현재 우리의 일
이라고 여기지 못했거든요.
123!
그날의 사건에 대해서는
제 개인 의견과
법적인/도의적
시시비비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습니다.
지난 몇 주간을 돌아 보면서
역시나 앞으로도
난, 너희의 편이 되겠다는
제 개인 다짐이기도 합니다.
은평에서 청소년-청년과 활동할 때
역할과 책임, 법률을 따지기 전
가장 밑단의
단순하고 단단한 제 입장이었습니다.
내가 네 편이다.
요즘 청소년 청년들은 자기편이 없습니다.
없다고?
왜?
왜 없다고 사비나는
저렇게 단호하게 말을 하지?
부모형제친척 등 가족이 있고
친구인 학급 동료와 학원 친구
그리고 여러 동아리 지인들이 있고
그 세대의 특징인 또래문화,
끼리문화가 있는
청소년-청년인데
당연히 무리 지어 다니고 그룹 지어 다니는
그들의
'편'이 있으려니... 하시죠.
편, 없습니다.
'편' 이란건 뭘까요.
영어로는 'on my side' 그러니까
'내 쪽이다.'라는 건데요.
'내 편들어달라',
'내가 니 편이야'라는 구문은
어찌 보면
비현대적이고 예스러운
세련되지 못하고
합리적이지 않으며
질척거리고 치덕거리고
부담스럽고 후진 감정이며
또한
너무 이기적인 것 같고
논리적이지 않게 느껴집니다.
뭔가
음침하며 끼리끼리로
배타성을 전제로 하는
이 시대에 맞지 않는 듯해 보입니다.
음,
이익집단의 행위 같고
조건적인 그 무엇인가... 같습니다.
그래요. 그런 듯해 보입니다.
허나,
내 편은 필요합니다.
내 편이 누구인가 아는 것은 필요합니다.
그리고
내 편은 많을수록 좋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아직 (그렇게) 성인이 아니며
독립적이고 독자적으로 강하지 못하니
힘이 되는 내 편이 반드시 필요하지요.
'힘이 되는' 내 편이라면
우선 어른이 대부분이겠구요.
부모가 내 편일까요?
교사가 내 편일까요?
이 친구들은
아주 가까운 분들에게조차도
'조건'에 맞아야
'사랑'을 받을 수 있다고 여깁니다.
Gen-Z 들은
선진국인 대한민국에서 태어났고
잘 자라고 잘 배우는 것을 지나쳐서
주변의 과도한 관심과 애정으로 인해
'조건'으로 길들여진 세대입니다.
내 자식에게 하는 교육도
'투자'라고 표현을 하고
호응을 얻는 이 마당에
다른 어른들은 오죽할까요.
Gen-Z, 당사자들이 더 잘 알겠지요.
본인들이
사랑받기 위한 조건이 무엇인지.
부모를 탓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친구들은
스펙에 완벽해야만
사랑을 받을 수 있다고 여겨졌기에
그렇게 섬세하고
또 약하고
또 초조해하고 불안해한다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슨 이슈가 생기면
사라집니다.
회피하는 거지요.
이해는 갑니다만 저까지 그냥 둘 수는 없어요.
함께 활동을 하다가,
무슨 일이 생겨서 제가 책임지고
해결하려고 당사자들에게
전후좌우 얘기를 들어보려고 하면
이 친구들이 얼굴이 하애 가지고
자신을 자학에 가까울 정도로 깎아내리고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도
그렇게 자신을 남 앞에서 내려 깔고
그렇게까지 초조하고 불안해할 정도는 아닌데도
그리 떨고 있으면
처음엔 당황이 되고 황당하며
이렇게 나약해서 어쩌냐
하고 처음 편들어주려던 마음은 사라지고
비난의 마음이 불쑥 올라옵니다.
그런데 지금의 전
마음이 아픕니다.
아니, 차분해집니다.
그리고
물어요.
내가 누구 편인 것 같아?
깜짝 놀랍니다.
바로 답을 못합니다.
여러 다양한 답을 합니다.
이 나라의 편
학교의 편
어른의 편
다른 학생의 편
뭐 등등
여하튼,
제가 자기편이라고
주저 없이 말을 한 친구를
(지금까지)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네요.
제가 자기편이 아니라
판단하고 벌을 내리고 잣대질하는
남의 편으로 알고 있더라고요.
흠.. 하고
'내 얘기를 해도 될까?'
하고 허락을 구하고
세세하고 차분하게 말을 합니다.
내가 이 일을 물어보는 것은
내가 책임을 지기 위해 알아야 하는
정보를 얻는 과정이다.
당사자인 너를 패싱하고 뛰어넘어
다른 어른이나
다른 청소년 청년에게 물어볼 일이냐?
혹여
내가 책임질 일 아니라면
네가 책임을 질 동안
네 옆에서 함께 있어주려고 하는 것이라
내가 알아야 한단다.
내가 니편이 아니면 뭘 묻겠니
귀찮게...
그런데 내가 니편이니까 물어보는 건데...
하면
너무 깜짝 놀라 안도의 한숨을 쉽니다.
그리고 힘을 내어
자신의 삶을 살아 내는 연습을 합니다.
사실을 말하고
의견을 말하고
감정을 말합니다.
세련되게 말을 하지 못하니까
그리고 그렇게 훈련이 아직 안되어 있으니까
제가 조목조목 잘게 잘라 물어봅니다.
때로는 O냐 X냐 말하라.
혹은 아래 3가지 중에서 골라라. 등등
다양하게 접근을 합니다.
저만 그들의 편이 될 수 있는가?
아닙니다.
우리는 분명히 그들을
가족 일원으로,
사회의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만납니다.
이름을 알 수도 있고
그들의 부모를 형제를 알 수도 있습니다.
그들 덕에 돈을 벌 수도 있고요
아니면 하다못해
지나가다가라도 만납니다.
우리, 같이, 그들을 판단하지 말고
지적질도 하지 말고
사랑하기에 이런다는 말도 하지 말고
우선, 편이 되어 줍시다.
내 나이가 많으니
무턱대고 나를 믿으라
혹은
너희가 이 땅의 미래이다.
뭐 그런
웅장하고 거대한 구국의 영웅식이 아니라
세련된 어른으로서,
합리적이고 깔끔하며
적당히 츤데레스럽게 편이 됩시다.
그들이 조언을 청하면
조언을 청하는 한도 내에서
그들이 무엇인가 잘못을 했으면
그 책임과 판단을 하는 분들을 연결해 주고
그 옆에서,
함께 해주면 됩니다.
그게, 편이 하는 일입니다.
윤건의 '내편'이라는 노래 링크 걸며 마칩니다.
https://youtu.be/9Oa8sDnPOew?si=N61VpQBvu2wz7vwo
청소년과 청년을 좋아하는 사비나가 붓 가는 대로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