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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얏나무 꽃이 질 무렵

이름 없는 자들의 노래

by 나바드 Feb 25.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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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깊었다. 숲은 어둠에 잠기고, 바람이 나뭇잎을 스치며 지나갔다. 오얏꽃이 한 잎, 두 잎, 나무에서 떨어져 발밑에 쌓였다. 거북선 깃발 아래, 의병들이 모였다. 그러나 오늘은 그들 중 누구도 유명한 이름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장혁이 둘러보았다. 김명규도, 박차정도, 후세 다쓰지도 아니었다. 그들이 아닌,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자들이었다. 이름 없는 자들. 역사의 한 줄에도 기록되지 않았을 자들. 그러나 그들의 심장 속에는 조국을 향한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너는 누구냐?” 장혁이 조용히 물었다.


한 사내가 앞으로 나섰다. 그는 검게 그을린 손을 내밀며 말했다.


“저는 이름이 없습니다. 그저, 저를 불러준다면 ‘쇠돌이’라 하십시오. 대장간에서 쇠를 두드리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일본군이 내 형제들을 데려가고, 나를 징용하라 했을 때, 나는 쇠를 내려놓고 칼을 들었습니다.”


쇠돌이의 말이 끝나자, 또 다른 이가 앞으로 나섰다.


“저는 강가에서 나룻배를 몰던 자입니다. 나룻배를 몰며 많은 사람을 건넜지요. 하지만 이제는 사람 대신 총과 탄약을 나릅니다. 내 이름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겠지만, 이 강은 기억할 것입니다.”


한 명, 두 명, 그들은 하나둘 앞으로 나와 자신을 이야기했다. 논에서 벼를 베던 농부, 시장에서 옷을 팔던 상인, 밤이면 달빛 아래에서 책을 읽던 서생, 남의 집을 전전하며 밥 한 끼로 하루를 버티던 떠돌이.


그들은 모두 조국이 불렀을 때, 주저 없이 대답한 자들이었다.


“우리는, 이름 없는 의병이다.”


누군가 말했다. 그리고 그 말은 불꽃처럼 번졌다.


“우리는 기록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싸운 이 땅은 기억할 것이다.”


거북선 깃발이 바람에 펄럭였다. 밤하늘에는 수많은 별이 빛났다. 그날 밤, 역사는 기록하지 못한 이름들이 노래처럼 울려 퍼지고 있었다.




역사적 사실 및 인물 각주


1. **이름 없는 독립군** - 역사에는 크게 기록되지 않았지만, 수많은 농민, 상인, 학자, 기술자, 징용을 피해 탈출한 사람들이 의병으로 합류하여 싸웠다.

2. **독립운동 속의 민초들** - 독립군의 상당수는 군사 훈련을 받은 정규군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스스로 무기를 들고 싸웠고, 기록되지 못한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3. **숨어 있던 독립군 네트워크** - 조선 곳곳에는 작은 마을과 산 속에서 일본군의 눈을 피해 독립군을 돕는 이들이 많았다. 이들은 식량을 제공하고 정보를 전달하며, 최전선에서 싸우지 않아도 독립운동의 중요한 축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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