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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고가 깨운 밤, 몸의 재발견

꼬리표를 떼어낸 초월의 기쁨

by 은후

<빨강>


탱고, 밤을 뒤집다


http://m.kyilbo.com/356334


반복되는 매일의 루틴은 어느 순간 지루하게 느껴진다. 사방으로 퍼진 단조로움에 호기심마저 시들시들해졌다. 무뎌진 감각 위로 찬바람이 척추에 스미듯 감싸면 몸은 점점 더 움츠러들었다.



어둠을 일찍 데려오는 겨울의 문턱에서 밤이 조용히 나를 불러냈다. 운동과 담을 쌓고 지내온 몸이 끌려갔다. 이대로라면 근육이 모두 사라질 것 같은 위기감이 고조되었다. 변화 없는 날들 속에서 변화가 절실한 체력의 추이를 따라 주 2회 월요일과 금요일 밤에 운동을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밤은 나를 주시한 듯 리듬 속에 담갔다.



S 신협이 이전하면서 문화센터를 열었다. 요가와 라인댄스 강좌가 오전과 오후에 개설되었다. 이를 알게 된 친구가 함께하자고 제안했다. 첫날 아침 일찍 등록을 마친 그녀는 여유를 부리던 나에게 서둘러 등록하라고 재촉했다. 자칫 순위에서 밀릴 수도 있음을 알렸다. 창구 직원은 출자금이 최소 삼십만 원은 되어야 한다는 자격 필수조건을 읊었다. 모자란 금액을 채우고 저녁반에 등록할 수 있었다.



라인댄스는 몸 선이 예뻐지는 춤일 거라 오해했는데, 실제로는 줄을 맞춰 춘다는 뜻이었다. 파트너 없이 혼자서도 다양한 춤을 익힐 수 있는 낯설지만 흥미로운 장르였다. 음악과 함께하며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앞줄에서 거울을 보며 춤을 추는 한 사람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저렇게까지 즐거울 수 있을까 싶을 만큼, 환하게 웃으며 움직이는 모습이 다소 오글거리면서도 시선은 뗄 수 없었다.



노래 가사가 울려 퍼지는 신나는 음악과 함께 맘껏 즐기고 싶었지만, 쉽게 몸이 따라주질 않았다. 강사의 동작을 바로 따라잡는 친구가 어설픈 나를 정말 몸치라고 놀렸다. 반박할 수 없는 몸이기에 잠시 울적했다. 마치 춤의 전쟁에서 진 패잔병 같았다. 동시에 그 말이 오기를 자극했다. 유튜브의 세계에서 찾아낸 기본 동작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욕심과 달리 빠르게 달궈지지 않았다. 언제쯤 나는 센터를 자유롭게 누비는 춤의 물고기가 될 수 있을까. 곧잘 동작을 따라가는 회원들이 부러웠다.



몇 달이 지나도 맘보와 룸바 동작을 익히는 속도는 여전히 더뎠다. 어느 날, 아프지 않던 허벅지 부위가 뻐근함을 느꼈다. 그날은 Love's Tango 음악에 맞춰 라인댄스 동작을 배웠다. ‘탱고’라는 명명만으로 기분이 발레리나처럼 가벼워졌다. 리베르 탱고의 심장을 두드리는 강렬한 선율과 Por una cabeza의 우아함 그리고 절도 있는 탱고의 춤 선에 매혹당했다.



몸치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던 내가 어느새 강사의 풀 카운트 설명을 따라 정확히 움직이고 있는 모습을 거울로 확인할 수 있었다. 더 놀라운 건, 그토록 동작을 빨리 습득하던 회원들보다 먼저 복잡한 탱고를 익혔다는 점이다. 몸이 조금씩 음악에 녹아들며 멈춤과 흐름의 자유로움을 감각했다. 마치 한계를 넘어선 뻐근한 기쁨처럼 다가왔다.



패배란 무엇일까. 단지 속도가 조금 느렸을 뿐이다. 흐름 속에서 우리는 여러 길을 모색할 수가 있다. 라인댄스의 매력은 여기에 있었다. 완벽한 춤을 추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느린 왈츠로 때로는 빠른 디스코의 템포에 몸을 맡기며 점차 나아지는 자신을 발견하는 데 있었다. 어색하고 미숙했던 첫걸음이라도 음악에 몸이 자연스럽게 묻어가는 무아의 순간이 찾아온다.



탱고가 가미된 라인댄스를 익히면서 깨달았다. 영원한 패자는 없다. 모든 움직임은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발판일 뿐이다. 춤이라는 예술은 완벽을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의 서툰 모습까지도 포용하며 음악의 파도가 그것을 자연스럽게 덮어준다. 탱고의 박자를 따라가며 알게 되었다. 패자부활전은 재기의 기회를 노리는 것이 아닌 자기를 초월하는 여정의 시작이라는 걸.



반복된 연습 속에서 나의 라인댄스는 점점 더 탱고의 숨결에 스며들었다. 몸치라는 구속도, 어설픈 동작도, 리듬이 허물어뜨렸다. 거울을 보며 라인댄스를 즐기는 회원처럼 나 역시 몰랐던 웨이브를 타며 그녀의 표정을 닮아가는 걸 느꼈다. 심장을 홀리는 음악에 회원들의 표정도 땀으로 빛을 발했다.



음악은 밤에 우리를 기다리고, 그 품속에서 체력을 길렀다. 탱고는 남몰래 연습한 기본의 숨은 힘을 보여준 매력적인 춤이다. 좋아하는 음악이 몸치의 춤에 반란을 일으킬 수 있었다. 땀을 즐기는 날에 찾아온 것은 희열이었다. 흐르는 음악에 몸을 적시는 시간이 늘어나는 한 춤은 더 높이 날아오를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림_AI


#탱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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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치탈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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