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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마누 Apr 25. 2024

첫만남은 너무 어려워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게 있거나 혹은 없거나

나이가 들면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게 점점 힘들어졌다. 누군가를 만나 구구절절 살아온 이야기를 하고, 이해를 구하고, 난 어떤 사람이야를 어필하고, 어쩌다 마음에 드는 사람이 생기고, 적당한 거리를 두며 만나다가 다시 멀어진다. 상대의 말과 눈빛, 카톡의 숫자가 신경 쓰인다. 결혼하자마자 전업주부가 된 나의 인간관계는 여러 가지 이유로 좁아졌다. 어릴 때 친구, 대학동기, 한때 같이 일했던 동료이자 친구 몇이 전부였다. 


그러다 큰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면서 엄마들 모임이 생겼다. 처음에는 새로운 모임이 생겼다는 기대에 부풀어 신났다. 하지만, 아이들과 얽힌 사이는 아이들 때문에 틀어지기 일쑤였고, 교육관과 가치관이 맞는 않는 사람들의 일방적인 이야기를 듣는 게 힘들었다. 생각 없이 풍선을 불면 펑 터지듯 참고 참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을 때부터 엄마들 모임에 나가지 않았다.


가끔 맘카페에서 친구가 없어 외롭다는 글이 게시판에 올라온다. 그런 글을 읽으면 생각한다. 나는 친구가 몇 명일까? 친구의 정의는 뭘까? 지금 당장 전화해서 힘든 일을 얘기하면 어떡하니. 너무 힘들겠다. 공감해 주는 사람? 당장 없으면 큰 일어난다고 하면서 돈 꿔달라고 하면 선뜻 내주는 사람? 내 마음을 헤아려주는 사람? 


다섯 손가락만 있어도 될 것 같다. 그것도 잘 모르겠다. 매일 통화하는 사람도, 자주 만나는 사람도 없다. 내 주변의 친구들은 모두 나와 같아서 생사여부만 간간히 전한다. 그래도 친구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다가도 만나면 어제 만났다 헤어진 사람처럼 어색하지 않고 반갑기 때문이다.


좁은 인간관계가 딱히 불편하진 않다. 혼자서도 할 일이 많았다. 나이 많은 내게 친절한 사람은 대개 목적이 있다. 영업사원이거나 종교적인 이유에서 다가오는 사람을 신중하게 걸러내야 한다. 너무 적극적인 사람이 있으면 의심먼저 하게 된다. 나한테 왜 이러지?


2022년 2월 블로그를 시작하고 일일 1 포스팅을 꾸준히 했다. 시작할 때는 뭐든 최선을 다한다. 너무 열심히 해서 끝까지 갈 힘을 초반에 다 써버린다는 문제가 있지만, 할 때는 행복하다. 사진을 찍고, 글을 쓰는 게 재미있었다. 댓글이 한두 개씩 달리고, 공감해 주는 이웃들이 생겼다. 매일 하트수와 댓글을 확인했다.


그러던 어느 날 비밀댓글이 달렸다. 평소 내가 좋아하는 도서 인플루언서가 보낸 거였다. 설렘 반 놀램 반으로 댓글을 보는데, 얼굴이 빨개졌다. 그동안 열심히 올린 포스팅 속 내용 중에 사진이 하나도 안 보인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 싶어 노트북을 열어 확인했는데, 아뿔싸. 정말 사진이 한 장도 보이지 않았다. 포스팅을 할 때는 분명 보였는데 이게 무슨 일인지 싶었다. 버버벅 거리고 있는데, 인플루언서님이 통화가능하냐는 쪽지를 보냈다. 얼른 전화번호를 보냈다. (전화번호를 모르는 사람에게 이렇게 빨리 알려준 건 처음이었다)


바로 전화가 왔다. 핸드폰이냐? 노트북이냐?부터 시작해서 사진을 어떻게 올리고 있느냐까지 꼬치고치 물어보며 원인을 찾았다. 지극히 아날로그식 인간이었던 나는 말도 제대로 못 하면서 이렇게 저렇게 해 보라는 말도 못 알아들으면서 꾸역꾸역 뭔가를 했고, 그다음부터는 블로그 포스팅에 사진이 누락되는 불상사는 사라졌다. 


인플루언서와 통화 이후 매일 올리는 포스팅에 또 매일 찾아와서 좋아요와 댓글을 달아줬다. 그 사람의 블로그를 동네맛집 탐방하듯 설레는 마음으로 들락거렸다. 그가 쓴 글은 깔끔했고, 실천력은 뛰어났으며, 무엇보다 성실한 사람이라는 게 보였다. 나에게 하나도 없는 것들을 모두 갖춘 사람이었다.


그렇게 한 달 정도 온라인상에서 인연을 이어가던 우리는 한번 만날까요?라는 말을 누군가 던졌고, 상대방이 얼른 좋아요로 답하면서 만남이 이어졌다. 온라인의 이웃을 오프라인에서 만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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