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우타령
번쩍이는 칼바람 속에서
비늘 잎 둘러쓰고 오들오들
꽃 한 송이 피우기 위해
동장군과 싸웠는데.
꽃잎 한 장이라도 구겨질까봐
꽃술 한 개라도 꺾일까봐
긴긴 겨울 굽히지 않고
끝까지 버텼기에.
부드러운 손길로
쓰다듬어주는 줄 알았는데
뭐가 새암이 나서
이렇게 옥죄는 걸까?
너무 내밀었나?
너무 내발리었나?
비늘옷까지 벗고 고개 숙였으니
숨통만은 터주세요.
눈밭에서 썰매 타고 눈 싸움하며, 얼음판에서 얼음 지치고 팽이 치며, 동산에 올라가 연을 날리고...겨울 한 철 제 세상 만난 듯, 이렇게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 씩씩하고 신나게 놀아보지 못 했다. 오히려 갈퀴 손을 호호 불고, 얼어 가려운 발 콩 자루 속에 묻으며, 이불을 둘러쓰고 오들오들 추위를 견디었다. 콧물 마를 새 없이, 찬 바람만 불면 콜록콜록....사람 구실이나 제대로 하겠느냐는 핀잔을 받기도 했다. 三寒四溫(삼한사온)이라고 했지만, 나에게는 지긋지긋하게 긴 겨울이었다. 柔弱(유약)한 체질과 劣惡(열악)한 환경에서 자란 나는, 유난히 겨울을 타 겨울잠을 잔 개구리가 몹시 부러웠다.
봄 春(춘)자만 보아도 마음이 설레고, 대문에 立春大吉(입춘대길) 揮毫(휘호)를 써 붙인 집이 대궐처럼 보였다. 그러나 꽃 한 송이 핀 나무가 있나, 陽地(양지) 바른 곳에 새싹이 있나...春來不似春(춘래불사춘)이라고 더디 온 봄이 원망스러웠다. 春分(춘분)이 지나서야 꽃눈 잎눈이 가슴츠레 눈을 뜨면, 내 마음 속에서는 벌써 꽃봉오리가 망울졌다. 一花獨放不是春(일화독방불시춘) 百花齊放春滿園(백화제방춘만원) 온갖 꽃이 만발해야 봄이 왔다 할 수 있지, 한 송이 꽃이 피었다고 봄이 왔다 할 수 있으랴만, 나에게는 봄이 온 것이다.
시나브로 남쪽에서 花信風(화신풍)이 불어오고, 마른 나무 가지에 한 송이 두 송이 꽃이 피기 시작했다. 그런데 동장군의 칼바람이 번쩍인다. 꽃샘추위(花妬娟)라고 했다. 화들짝 놀란 꽃들이 숨죽이며 바들바들 매달려 있다. ‘二月 바람에 김칫독 깨진다’ ‘이월 바람에 검은 쇠뿔 오그라진다’ ‘꽃샘에 설늙은이 얼어 죽는다’는 속담처럼 放心(방심)했기에 더욱 바람이 매섭다.
뭐가 새암이 나서일까? 하나님도 嫉妬(질투)하는 하나님(출20:5)이라 했으니, 찬 바람을 미워한 죄일까? 한 송이 꽃을 피우기 위해 모진 추위를 견디며 봄을 기다린 게 죄일까? 봄볕을 쬐려고 비늘잎을 벗으며 막 기지개를 켜는데, 질투의 여신 헤라는 꽃샘바람으로 나를 쳤다. 법관의 꿈이 꽃봉오리였고 정의의 구현이 꽃동산이었기에, 꽃잎 한 장이라도 구겨질새라 꽃술 한 개라도 꺾일까봐 발버둥쳤다. 그러나 꽃샘바람 꽃샘추위에 오히려 얼어버렸다. 예비고사에 합격한 게 웃자란 것인가? 1차고사마다 합격하여 내발리었나? ‘내민 돌 정 맞는다’고 너무 내밀었나? 꽃을 피우기 위해서 필요한 연단이었다고 추스르면서, 헤라와 동장군에게 숨통만은 터달라고 애원했다. 이 모습 이대로 살겠노라고 다짐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