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도호도 Oct 11. 2022

제주도에서 떠나보낸 사춘기

제주살이 50일차 2022년 9월 19일

내일 아침 비행기로 제주도를 떠난다. 사실상 제주도의 마지막 날은 오늘인 셈이다. 떠나기 전에 그간 신세를 진 게하 사장님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드리고 싶었다. 버스를 타고 다시 월정리로 향했다. 내가 도착하자마자 사장님 한 분께서 "여기가 어디라고(너무 멀어서) 다시 와?!"라고 호통을 치셨다. 나는 실실 웃으며 뇌물로 준비한 막창순대를 꺼냈다.


순대를 앞에 두고 이야기 꽃이 펼쳐졌다. 나는 일주일 간 혼자 여행하면서 쌓아 둔 에피소드를 풀었다.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으론 해소가 안 되어서(그렇게 길게 쓰는데도...?!) 사장님들 앞에서 쉴 새 없이 떠들었다. 이것 참, 사람이 말이 너무 많으면 질리는데 말이다.


다시 제주시내로 돌아가는 나를 사장님들은 흔쾌히 바래다주셨다. 그리곤 언제 준비했는지도 모를 소포를 건네주셨다. 가맥집 한편에 책방도 운영하시는 사장님들에게 시집과 엽서를 선물로 받았다.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까지 이리 잘해주시다니... 센스와 감성이 뭔지 아시는 참 좋으신 분들이었다.



제주도에서 50일 간 있으면서 나름 하고 싶은 걸 다 했다. 게하 스텝 생활하기, 가족들에게 속 마음 이야기하기, 목 놓아 울기(?), 요가 배우기, 도서관 투어 하기, 브런치에 글 쓰기, 서핑 하기, 배낚시 하기, 스쿠터 타기 등등. 이 중에 가장 많이 한 건 바로 '울기'. 운 날이 안 운 날보다 많은 이상한 여행이었다. 너무 울어서 멘탈이 남아나는 날이 없었지만... 그래도 후회는 없었다. 제주도에 오지 않았으면 평생 그 눈물을 참느라 속이 썩어 문드러졌을 것이다. 나는 20대 후반에 뒤늦게 찾아온 나의 사춘기를 눈물 한 방울, 한 방울에 가득 담아 흘려보냈다.



사장님들께 받은 <여름 빛 아래> 시집과 월정리 바다와 수상한 사칠이의 풍경이 담긴 엽서. 앞으로는 현실도피하고 싶을 때마다 도망가지 말고 얌전히 책을 읽어야지.
차귀도에서 만난 댕댕이.


이전 20화 50cc 스쿠터가 주는 해방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