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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사 Mar 22. 2023

물리적 거리감이 주는 안도

각자의 고통을 전염시키지 않기

최근 업무량이 폭발하면서 자꾸만 실수가 나오고(마치 신입 같은) 그로 인해 자존감이 무척 떨어진 상태다. 나답지 않게 보고하면서 말을 얼버무리게 되고 갑자기 손을 떨기도 한다. 조사 하나하나 신경 쓰는 리더를 만나니 한껏 긴장돼 죽을 맛이다. 요즈음은 주말에도 일하고 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주어진 시간 내에 일을 끝내지 못하는 것인데 야근, 주말 출근이 현실이 되다니. 사실 지금 이 순간도 일이 밀려있는데 너무 피곤해서 그냥 잠시 쉬기로 했다. 저녁에 대학원에도 가야 하는데 도대체 어떻게들 회사 다니시면서 학교를 다니고 자격증을 따고 하시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이렇게 바쁠 때는 지쳐서 마음에 여유가 별로 없다. 누가 건드리면 말이 곱게 안 나갈 듯하고 계속 곤두선 신경이 피로감을 극도로 만든다. 만약 이 상태로 집에 가서 가족 누군가와 또 다른 사회생활(아주 작은 집단이겠지만)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울고 싶다. 혼자서 충분히 충전하는 것이 나에게는 최선의 스트레스 저감법이다. 그래서 난 혼자 사는 이 시간이 너무 좋다. 남편과는 주말에 편할 때 좋은 시간만 보내고 헤어지니 중간에 나쁜 기억이 끼어들 자리가 없다. 물론 돈이 엄청 많아서 스트레스받는 일 없이 아주 넓은 집에서라면 같이 살 수도 있겠지만, 불가능한 꿈이니 접어두자. 


짜증, 화, 무기력, 피로 같은 감정은 쉽게 옮는다. 부부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라 서로를 제일 소중의 여겨야 하지만 '감정의 쓰레기통'이 돼 버리는 경우도 왕왕 있다. 나도 연애할 때는 남편과 꽤 자주 만났는데 3일 이상 연속으로 만나다 보면 티격태격하곤 했다. 주로 체력이 떨어진 내가 말꼬리를 붙잡아 말싸움이 시작되는 식이다. 같이 붙어있는 것의 장점도 많지만 이렇게 단점도 있다. 너무 가까운 사람에게는 조금 무례해지기 쉽고 내 감정을 쏟아내기도 쉬워지니까. 


여전히 주말부부라고 말하면 놀라는 분들이 많다. 결혼 후 내내 주말부부(한 때는 격주말부부) 생활을 하면서 혼자 있음의 중요성과 편리성을 너무나 알아버렸다. 싸움은 보통 둘 중 한 명의 여유가 부족할 때 일어나니까. 남편과 오랜만에 통화했다. 최근 일이 힘들다는 걸 아는지 목소리가 유독 다정하다. 주말에는 맛있는 것을 해주겠다고 달래준다. 나는 이렇게 조금 거리감 있는 위로가 편안하다. 이런 나에게 물리적 가까움과 심리적 애착은 다른 얘기다.


그래도 3주나 보지 못한 남편이 꽤 보고 싶기는 하다. 이번 주말은 남편집에서 요양해야지. 물론 내 방에 혼자 한참이나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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