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뜨거움을 식히고 겨울의 차가움이 밀려드는 틈새,
자신의 존재를 그저 투명하게, 맑게, 파랗게, 높게
그러나 결코 가볍지 않은 풍성함으로 드러내는 이 하늘에 요즘 넋을 자주 빼앗긴다.
고개를 뒤로 젖히다가 눈길을 멀리 두다가 걸음을 멈추다가...
하늘은 자주 나를 멈춰 세운다.
지금 저 하늘자리를 뒤덮은 구름은 휘장이라기보다
저어~기 먼 곳의 누군가가
구름을 식탁삼아 소박한 소찬을 차리고 나를 초대하는 것같다.
이제서야 알게 된 '그것'을 축하하자는 초대...
본성대로 잘 살아가는지,
제대로 이해하고 따를 마음은 있는지 어떤 심사나 시험도 치르지 않고
덥석 나를 받아준 자연과 함께 한 지난 1년,
작년 겨울 쌓인 눈속의 큰 발자국을 호랑이라 우기고
주방 건너편 나무사이의 큰 멧돼지에게 같이 놀자 말걸고
가을내내 다람쥐가 먹다 남은 밤을 만질 때마다 몰래 숨어 다람쥐를 기다리고
남들은 놀라 도망치는 뱀만 봐도 난 좋다고 쫒아가고
여름 내내 여기저기서 출몰하는 개구리들따라 폴짝폴짝 뛰어 보는...
이렇게 커다란 수혜를 인지하지 못하고 뭐가 되니 안되니 부럽게 하늘을 바라보는 나를 깨달은 순간,
자책은 아니지만 혼은 내버렸다. 보은하지 않는 것만큼 배은하고 망덕한 짓은 없으니 말이다.
그러면서도, 하늘이 볼 때 작은 변두리에 불과한,
여기 서 있는 나는
이상한 질투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나는 펜과 학문을 배운 눈과 예민한 귀를 가지고 있음에도 나의 고용인들(나무를 자르는 사람과 쟁기질하는 사람, 요리사등)앞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들은 어느 의미에서 자급자족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나의 도움이 없이도 온종일 그리고 일년 내내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그들에게 기대고 있지 않은가(주).
나도 그렇다.
그래선지, 그런데도 불구하고인지 여하튼 난 가장 많은 보호와 관심과 배려와 선물을 이 곳에서 받으며 산다. 할머니들은 시도 때도 없이 온갖 작물들을 넘쳐나게 주신다. 이들에게 나는 그냥 아무것도 모르고 집에 쳐박혀 책상앞에만 앉아 있는 철없는 '도시에서 온 녀석'일 뿐이다. 이 마을에서 도움을 줘야 할, 어쩌면 유일한 사람이 나일 것이다.
나는 박사에 교수에 작가이지만
농사지을 땅이 없으니 자급자족은 커녕 장터에 가지 못해 먹을 것을 공수하지 못하면 제 아무리 돈이 있어도 굶을 수밖에 없다. 여긴 편의점도 마트도 없으니까. (작은 마트가 있지만 공산품과 양념 정도뿐이다.) 이들은 전부 자급자족이다. 땔깜까지 모두.
보일러가 고장나도, 수도가 얼어도, 멧돼지가 내려와도, 추수가 조금 흉작이어도.
창고에서 도구 하나 꺼내어 뭐든 뚝딱뚝딱 다 고쳐낸다.
땅에서 올라오는 것들 가운데 먹을 것과 먹지 않아야 할 것,
땅위에 남겨야 할 것과 거둬 치워야 할 것,
땅이 알아서 거저 주는 것과 노동을 들여 거둬 들여야 할 것,
단 한 순간도 나의 일을 농사보다 우월하다고 여긴 적이 없지만 인식이란 게 나도 모르게 주입된 편견 수천겹으로 눌려진터라 분명 내 속에도 나의 우월은 있었을 것이다. 학벌이 어떻고 직업이 무엇이고 어떤 차를 타고 어떤 브랜드를 입는지가 사회적 기준이었으니.
내가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소리를 마치 삶의 능력이라 여기고
게다가 믿고, 살았다는 사실을!
여기서는 자기가 충분히, 넘치도록, 나누도록 먹거리를 키워내면 부자다.
건강하게 새벽에 눈떠 밭을 돌보면 건강한 것이고
따뜻하고 편한 옷에 장화신고 여기저기 자유롭게 다니면 최고의 명품이다.
철마다 집주변으론 먹을 것이 넘쳐나고
누구든 '가져가라'며 나눌 수 있고
외모나 학벌, 소유물로 그 어떤 누구도 구분짓지 않는다.
그래서 이 곳에서 바라본 가을하늘은 날 자꾸 멈춰 세우나보다.
분명 도시에서도 하늘은 저랬다.
그런데
같은 하늘, 같은 날들이지만
이제 다른 내가 여기 서있다.
귀하고 소중한 게 뭔지 난 이제 이 나이에야 알아버린 것이다.
그 주글주글한, 영양크림이라곤 발라본 적도 없는 할머니들의 주름에서,
매일 허리굽혀 밭을 돌보는 저 작은 발끝, 손끝에서,
뭐든 가져가라며 내미는 저 마음에서
군더더기없는, 요령이나 생색으로 치장되지 않은
인품, 인격을
이제서야 나는 배운다.
산다는 것에 군더더기가 뭔지도 알았고
내 머리 속 우굴대는 세균이 무엇인지도 알았고
이제 그것들을 어찌 없애야 하는지도 어린아이가 한글 배우듯
나는 배운다.
그래서 나는 요즘 아이처럼 자주 질투한다.
하늘아래 이 곳의 농민들의 삶이 마냥 부럽고 닯고 싶다.
저 순수하고 맑아서 내꺼니꺼없이 마구 내놓는
부의 마인드와 삶의 격을
나는 이제서야 알파벳 배우듯 배운다....
질투할수록 나는 성장하리라.
그래서 책상앞에 앉았다가 틈만 나면 자꾸 아랫집 할머니1,2,3 께서 계시는 곳으로 내 발길은 수시로 옮겨진다. 어떻게든 부비며 옆에 있고 어떻게든 비비며 일손을 거들며 어떻게든 한마디라도 더 들으려 말을 붙인다.
이렇게 내가 계속 어린아이가 될 수 있다면...
이렇게 내가 계속 배울 수 있게 이들이 건강하다면...
이렇게 내가 계속 머물 수 있게 자연이 허락한다면...
주> 랄프왈도에머슨, 자기신뢰철학, 동서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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