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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연 Jan 02. 2025

고구마와 김장김치의 찐 맛

소소한 오늘의 밥상


김장 김치가 무르익어 맛있어지는 때는 1월이다.

김치 냉장고가 나오기 전에는 마당 한편에 항아리를 묻고 매일 한 포기씩 꺼내어 먹었다.

하얀 눈이 흐드러지게 피는 섣달 그믐밤에 고구마 한 바구니를 찌고 엄마는 김치를 가져오라고 하셨다.


언니들과 가위바위보를 하고 가위를 낸 나는 졌다. 고무장갑을 끼고 현관문을 활짝 열었다. 눈꽃이 집안으로 펄럭이며  들어선다. 소리를 지르는 언니를 뒤로 하고 현관문을 꽝 닫는다.


종종거리며 마당 한편에 선다. 하얗게 덮은 눈을 싹싹 쓸고 뚜껑을 연다. 꽁꽁 싸 메진 비닐을 살살 돌려서 풀어헤치면 살포시 곧게 빚은 김장포기의 맛있는 냄새가 훅 들어온다. 한 포기를 들어 올리면 양념이 트리처럼 반짝반짝 거린다.

그중에 예쁜 포기를 그릇에 담는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김장포기를 살살 어루만지고 비닐을 빙빙 돌려 휘감는다. 그리고 돌을 올리고 항아리 뚜껑을 덮는다. 종종걸음으로 지나치며 보는 창고에 연탄에도 눈꽃이 피어있다.


외풍으로 창문은 달그락 거리고 옹기종기 머리를 맞대고 후후 불면서 먹었던 고구마의 찐 맛. 살얼음 동동 뛰운 동치미와 시원한 김장김치맛은 정말 죽여주었다.


에어프라이에서 고구마를 꺼내어 엄마가 담가준 김장김치를 획 감아서 입에 넣는다.

'음, 올해 김장김치는 젓갈이 많이 들어갔어. 짜다 짜'


그래도 괜찮다. 눈을 감고 외풍으로 달그락 거리던  추억의 맛을 떠올리면 먹는 해남고구마는  여전히 죽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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