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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에게 감정의 찌꺼기를 버리다

사랑의 굳은살

by 김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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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내가 싫고 세상이 허무하며

우울로 가슴이 답답한 날이었어요.


남편의 속을 알 리 없는 아내가

무슨 말 끝에

"오빠가 그게 되겠어?" 해요.

"그래 나는 안 되겠지?"

실없는 말임을 알았지만 퉁명스레 답 한 후

입과 마음을 닫아요.


"갑자기 왜 그래?"

장난인가 하던 아내가

길어지는 남편의 침묵에

죄 없이 무안해져요.


새벽, 잠든 아내의 등을 보며

아내에게 감정의 찌꺼기를 버린 내가

참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미안해.'

'무시가 아닌 걸 알면서도

그렇게 들려서 짜증이 났어.'

'내가 심했던 것 같아.'

'의미 없는 말에 내가 왜 그랬을까.

나도 늙나 보다.'


'응.'


두서없는 메시지에 용서하지 말고

더 괴롭혀도 되지만

아내는 너그럽게 속을 풀어요.

그리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밥을 짓고 출근 준비를 하는 아내를 보며

사랑만 하기에도 짧은 인생

더 이상 쓸데없는

상처를 주지 않기로 다짐해요.


서로를 위해 기꺼이 맨 짐은

앞날을 헤쳐갈 동력이 되지만,

못난 언행의 무용한 짐은

무릎과 허리를 꺾어 갈 길을 갈라놓을 뿐이니까요.

차라리

마음이 상하는 날이 또 오면

솔직하게 슬픔을 드러낼 거예요.

아내의 한계를 정해

아픔을 혼자 해결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려고요.

어둠을 쌓아 내 입과 혀에

독을 묵히지 않으려고요.

부부는 슬픔도 공유하는 관계니까요.

부부는 쓸데없는 자존심과 천성을 핑계로

괴롭히는 관계가 아니니까요.


힘든 인생이지만 그래서

어깨가 눌리는 날도 많았지만

우리는 20년 세월을 함께 버텨왔어요.


괴로운 날도 많았으나 아직은 웃을 수 있어요.

뼈와 살은 약해지지지만

손과 어깨에

사랑의 굳은살이 돋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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