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1학년인 딸아이의 하굣길은 한 줄 기차, 혹은 선생님 손을 잡고 멀리서부터 걸어 나온다.
교문 앞에 서있노라면 그 모습이 한눈에 보이는데 기차 형태로 나오는 날은 같이 나오는 반 친구들이 많은 날.
선생님 손을 잡고 나오는 날은 딸아이 혼자, 또는 한 친구만 더 있는 날이다.
처음엔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깜짝 놀라 물었다.
아니, 왜 친구들이 없어? 왜 이렇게 많이 안 왔어?
-엄마, 다른 친구들은 방과 후 갔지.
-아 맞다. 방과 후가 있었지…
직장 다닐 적에는 보지 못한 모습들이라 퇴사하고 나름 아이의 하굣길을 기다리는 것에 소소한 재미를 느끼고 있는데
재미는 멀리서부터 걸어 나오는 아이의 발걸음에서부터
느껴진다.
어느 날은 가방을 앞으로 메고 뒤뚱뒤뚱 걸어 나오는데 그 모습이 뭐라고 어찌나 귀여운지.
또 어떤 날은 만들기 한 것을 손에 꽉 쥐곤 소중한 보물 다루듯 들고 나오고 쓰고 나오고 나에게 뛰어와 자랑하는 모습이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그러다 어느 날은 저 멀리서부터 보이는 걸음부터가 완전히
자신감 뿜뿜 그 자체였다.
점점 가까워지는 딸아이의 얼굴, 나를 어렵지 않게 발견하곤 말캉한 눈빛교환의 레이저를 쏘아대는데
그 빛에는 자. 신. 감. 뿜, 뿜 이 날아와 나에게 박히고 있었다.
그런 당당함을 들고 나에게 뛰어온 딸아이를 보며 저절로
지어지는 웃음. 이 세상에서 그냥 보기만 해도 나에게 웃음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우리 아이들 뿐일 것이다.
딸아이는 나에게 물었다. 엄마, 좋은 소식이랑 나쁜 소식이 있는데 뭐부터 들을래? 얼굴을 보니 나쁜 소식조차 그렇게 나쁠 거 같지 않은 확신의 느낌이 확! 들었기에 먼저 나쁜 소식을 골랐다.
음.. 나쁜 소식은.. 하며 주머니에 넣고 있던 손을 꺼내 펼치며 엄지 손가락이 까졌다고 보여주는 딸아이.
사실, 어디가 까진 지 잘 보이진 않았지만 음, 아팠겠다.
에고 하며 어쩌다 그랬냐고 장단을 맞춰 주었더니만
나의 그런 호응이 마음에 들었는지 피도 났다며 더 반응을
바라며 묻지도 않았지만 좋은 소식을 말해주겠다던 딸아이.
응, 좋은 소식이 뭔데?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딸아이는 말이라기 보단, 외쳤다는 표현에 걸맞게 외쳤다
- 나 100점 맞았어!!!!!!!!
요즘 학교에서 단원평가며 쪽지시험 같은 걸 자주 보는 아이들. 은근히 오빠랑 본인이랑 점수 비교를 하고 있었고 은근히 딸아이의 점수가 좋은 날이 많은 요즘이었는데,
이날은 100점이라는 점수를 받아 그런 기세등등함을 가지고 나온 것이었다.
그 기세도 귀여웠지만 학교에서 시험 보고 시험 점수 100점 받아 행복해했을 딸아이의 모습이 상상이 너무 가서 나의
얼굴에도 한참 미소가 지워지지 않았다.
어느샌가 매고 있던 가방을 벗어내 가방 지퍼를 열곤 시험지를 들어 나에게 내밀며 다시 한번 말했다.
- 엄마, 나 100점 맞지!!!
-우와~ 진짜 잘했네. 열심히 노력하니까 이렇게 잘하네,
너무 잘했어!!!!!
나의 칭찬에 어깨가 이미 하늘까지 솟은 듯 올라간 딸아이.
자연스레 학원길이 아닌 옆길로 빠져 문방구로 들어간다.
그곳에 가서 간식거리를 고르는 아이. 하나만 사야 하는 걸
아니 신중하게 고르던 딸아이가 애교 섞인 그리고 무언의
확신이 담긴 목소리로 나에게 말한다.
- 엄마 두 개 사도 돼?
안 된다고 할 수 없는 분위기. 시험지까지 꺼내서 보여준 건 딸아이의 큰 그림이었고? 여부가 있겠습니까.
- 암.. 응, 두 개 다-
싱글벙글 함박 미소를 지으며 신중히 가벼운 손길로 두 개를 고른 딸아이.
하루의 일상이 딸아이의 하교시간 기점으로 흘러가고 있다.
아침의 등교하고 나면 딸아이의 하교시간까지 너무 빠르게 흘러가기에 너무한 거 아닌가 싶다가도 어느샌가 그 시간만을 기다리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됐다.
딸아이를 기다리러 가는 길.
교문 앞에 도착해서 바라본 다른 반 선생님과 학생들의 모습
고학년이 끝나지 않은 날은 조금 고요하고 고학년이 같이 끝나는 날은 매우 시끌벅적한 상황 속 많은 아이들이 내 앞을 가리고 있지만 저 멀리 딸아이의 모습을 한눈에 발견하는
신기한 눈 카메라.
문득 이 장면을 눈에 찍어 담아놔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얼마 남지 않은 하굣길 마중이 느껴져서였을까
훗날 출근하고 이 모습을 보지 못하게 될 때 찍어 놨던걸
꺼내어 떠올려야지.
그러면서 보이지 않지만 보이는듯한 딸아이의 얼굴을 보며 지금처럼 미소를 지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