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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티카 Stica Feb 15. 2024

부록2. 먹는 기쁨, 마시는 낭만, 보는 재미

포르투갈 음식과 볼거리의 조각들

정말 맛있게 먹고 마셨으며, 재미있게 구경했지만 여행기에서는 자리를 찾지 못했거나 비좁아 일부만이 언급되었던 조각들을 모았다.


먹는 기쁨

[문어]

해산물 천국인 포르투갈에는 유명한 바칼랴우(대구)요리도 많지만, 문어요리도 정말 많다. 평소 문어요리를 특별히 좋아하는 편은 아니라 맛만 보자는 생각에서 먹어보았는데 웬걸, 삼십육세 인생, 가장 맛있는 문어를 먹을 수 있었다. 처음 먹고 깜짝 놀란 문어는 오븐에 구운 것이었는데, 탱글하고 통통한 한 점을 한 두번 씹었더니 금세 부드럽게 녹아버렸다. 왜 이제까지 먹었던 문어는 모두 질겼던 거지? 나중에 리스보닛(Lisbonite, 리스본 거주자)에게 물어보니, 조리법에 따라 식감이 달라지는데, 신선한 것을 사오자마자 냉동고에 이삼일 넣어두었다가 요리를 하면 된다고 했다. 설마 그렇게 간단할라구. 직접 검증해볼 도리가 없는 나는, 포르투갈의 문어가 특별한 것으로 기억하기로 했다. 그런데 지역/식당마다 문어 오븐요리의 조리법이 모두 같지는 않은 것 같다. 파티마에서 먹어본 문어 오븐요리는 생긴 것은 비슷했으나 식감이 더 질기고 약간의 스모키한 향이 났다.

좌: 포르투 Taberna d'Avó의 문어요리, 우: 파티마 Restaurante A Tasquinha의 문어요리 (좌측이 더 맛있다)

나중에 먹어본 문어 샐러드는 오븐요리보다도 더욱 맛있었다. 포르투갈에서 먹은 모든 요리를 통틀어 내게는 가장 맛있었던 요리다. '샐러드'라면 흔히 식초나 레몬/라임즙과 같은 신 맛을 내는 재료로 입맛을 돋굴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신선하고 향 좋은 올리브유만 넉넉히 둘러준다. 식당 메뉴판에는 '올리브유 또는 식초를 곁들인 문어샐러드'라고 표기되어 있는 경우도 있었는데, 막상 시키면 그냥 올리브유만 둘러 나왔다. 잘게 다진 양파와 파슬리가 올리브유를 만나 함께 소박한 향을 피우니, 문어 고유의 맛을 자연스럽게 느끼기가 정말 좋다.

좌: Abadia do Porto의 문어샐러드, 우: Lareira - Baixa의 문어샐러드 (좌측이 더 맛있다)


[카초리뇨 (포르투갈식 핫도그)]

포르투에서 머무는 동안, 지나칠때마다 사람들이 가득 차 있어 궁금했던 맥주가게 'Gazela'. 가젤 그림이 간판에 그려져 있다. 카초리뇨(Cachorrinho)가 대표메뉴인데, 폭이 좁고 긴 빵 안에 매운 소시지가 들어간다. Gazela의 카초리뇨는 빵 안에 매운 소시지와 모짜렐라 치즈를 함께 넣어 튀겨냈다. 튀겼다는 데서 짐작하듯 환상적인 맛. 안에 든 소시지는 돼지 삼겹살 같은 부위로 만든 듯 한데, 지나치게 훈제 향이 많이 난다거나, 조미료 맛이 나지 않아 가공육인지도 모르고 먹었다. 큐민과 파프리카의 향이 고기 냄새를 잡는다. 구글맵 사진만 봤을때는 양이 많아보여 혼자 갈 엄두를 못냈었는데, 실물은 예상보다는 훨씬 작아 혼자 가도 부담없이 먹을 수 있다. Gazela는 카초리뇨 외에 스테이크와 스테이크 샌드위치도 팔고 있는데, 또한 정직하게 맛있고, 가격이 매우 저렴하다.

포르투의 맥주가게 'Gazela'의 카초리뇨와 스테이크 샌드위치. 환상적!


[트리파스 (소 제1위, 양 요리)]

트리파스(Tripas)는 tripa(소의 제1위 '양')의 복수형으로, 포르투갈에서 소 위와 버터빈(흰 강낭콩), 소시지, 파프리카 가루 등을 넣어 붉고 자작하게 만들어 먹는 요리 'Tripas à moda do Porto(포르투 스타일의 양 요리)'를 가리켜 짧게 트리파스라고도 부른다. '양을 먹는 사람들'이라는 의미의 'Tripeiro'가 포르투 사람들의 별칭일 정도라니, 꽤나 즐겨 먹는 요리인가보다. 꼭 먹어보고 싶다는 남편 덕분에 덩달아 먹어보았는데, 국물이 자작하여 수프 같은 느낌의 요리였다. 양은 매우 부드럽고 냄새가 전혀 나지 않았으며, 육향을 더하는 소시지와 햄은 물론, 녹진한 맛을 내는 버터빈과 당근 등 부재료에도 맛이 잘 배어있어 아주 맛있게 먹었다. 뜨끈하고 든든한 요리.

Abadia do Porto의 트리파스 (Tripas à moda do Porto)


[피카파우 (포르투갈식 찹스테이크)]

피카파우(Pica Pau)는 포르투갈어로 '딱따구리'라는 뜻인데, 물론 그렇다고 딱따구리 고기 요리는 아니다. 딱따구리가 나무를 쪼아먹듯, 한 입거리로 잘게 썰린 고기와 소시지를 매콤하게 볶은 요리다. 와인이나 맥주도 함께 넣어 볶는다는데, 그래서 그런지 감칠맛이 뛰어나다. 남편과 내가 간 식당 Lareira에서는 소고기와 두 종류의 소시지를 잔뜩 넣어 볶아주었다. 리스보닛은 피카파우와 페이조아다를 겨울의 소울푸드로 꼽았다.

Lareira - Baixa의 피카파우 (Pica Pau)


마시는 낭만

[와인]

여행내내 줄창 마셔댄 그것. 포르투갈에는 특산으로 잘 알려진 포트 와인 뿐 아니라, 그 외의 다종다양한 와인이 있다. 나는 주로 마트에서 20유로 미만의 레드 와인을 사 마셨는데, 겨울이라 그런지 로제나 화이트 와인을 반값에 판매하는 경우가 많았다. 반값인 4유로 정도에 판매하는 와인들도 아주 맛있었다. 특히 비뇨 베르데 (Vinho Verde)의 화이트 와인. 한국에서 삼사만원대로 사 마셨던 Crasto는 현지에서 마시니 더욱 맛이 좋았는데, Superior 등급도 10유로 초반대에 살 수 있었다.


그러나 가장 인상깊게 마신 것은 역시나 포트 와인. 포르투(엄밀히 말하면 도오로 강 건너의 '빌라 노바 드 가이아')에는 와인 셀러(Cellar)가 많고 셀러마다 투어를 진행하고 있다. 블로그를 찾아보면 Graham's나 Sandeman의 후기가 가장 많은데, 나는 잘 알아보지도 않고 그저 Calem만이 포르투갈 성씨인 것으로 보여져, 현지에 뿌리를 둔 셀러를 찾아가겠다며 Calem을 선택했다. 세 가지 포트 와인을 시음할 수 있는 투어가 22유로.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애초에 빌라 노바 드 가이아에서 와인 셀러 사업을 시작한 것은 영국내 포르투갈 와인 수요 급증에 따라, 와인을 영국으로 운송하기 전 숙성시키기 위해 셀러를 지은 영국 자본가들이었다고. Calem이 포르투갈인 창업자의 성을 딴 것은 맞지만, 결국 이 셀러도 '98년에 스페인 회사에 인수되었단다. 한국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포트와인 회사 Kopke도 같은 스페인 회사가 지배한단다. 투어는 꽤 유익했는데, 각 포트와인의 제조공정 차이도 알 수 있었고, 현지에서는 포트와인을 어떻게 즐기는지를 알 수 있었다. 포트와인은 테이블 와인이리가보다는 디저트와인으로, 특히 크리스마스나 기념일 등을 축하하기 위해 마신다. 화이트나 로제 포트와인의 경우 원래는 존재하지 않았으나 근래에 들어서야 여름 칵테일 시장을 타겟으로 생산되기 시작했다.

Caves Calem의 투어. 총 세 가지 포트 와인을 시음했다.


개인적으로 내게 제일 맛있었던 포트 와인은 LBV (Late Bottled Vintage) 포트 와인이다. 배럴내 숙성 기간이 4-6년으로, 토니(10-30년)보다는 짧지만 일반 싱글 빈티지 와인(2년)보다는 길다. Calem(2018)과 Nine Ports(2019), 그리고 Quinta do Infantado(2018)의 LBV를 마셔봤는데, Quinta do Infantado의 LBV가 제일 맛있었다. 블랙베리와 블루베리와 같은 짙은 색 베리를 한데 뭉쳐 농축한 것을 입안 가득 넣고 우물거리는 듯한 느낌. 베리향이 몹시 진하고, 다소간 진득한 질감에 달큰한 맛이다. 복분자주가 연상되기도 하는데, 복분자주보다는 덜 달고 알콜향 같은 인위적인 느낌을 걷어냈으면서, 향과 맛은 더 진하다. 그 다음은 Sandeman의 20년 숙성 Tawny 와인이다. 비유적 표현에서가 아니라, 문자 그대로 '꿀맛'인, 우아하면서도 농염한 맛이었다.

포르투에서만 사진 속 와인들과 여섯병을 더 마셨다...  우측 사진에서 왼쪽으로부터 네번째가 Quinta da Infantado LBV.


[커피]

대부분 에스프레소를 마셨는데, 에스프레소가 맛이 없는 경우는 몹시 드물었다. 딱 두 번 정도 있었는데, 포르투 캄파냐 기차역에서 사먹은 에스프레소가 조금 아쉬웠고, 파티마의 베이커리에서 사 먹은 에스프레소는 유일하게 맛이 없었다. 따라서 플랫화이트와 라떼를 기준으로 커피가 맛있었던 카페를 기록해본다.


Fábrica Coffee Roasters. 포르투갈 커피 체인점으로, 포르투에서도 두 곳을 보았고 리스본에도 최소 세 군데는 있는 것 같다. 포르투에서는 상벤투역 근처에 있는 아주 작은 점포를 들러 플랫화이트와 커피 원두(에티오피아 구지)를 샀는데, 플랫화이트가 정말 맛있었고 원두도 훌륭했다. 커피와 원두 모두, 포르투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Combi Coffee Roasters와 비교했을때 Fábrica가 압승이다.

Fábrica Coffee Roasters의 플랫화이트와 원두 (에티오피아 구지)


Clube Caffeine. 리스본에서 찾아간 작은 카페. 작지만 인테리어가 유니크하고 멋지다. 사장이 놀라울만큼 살갑고 매너가 좋다. 영어도 정말 잘한다. 커피 맛은 내가 포르투갈에서 가 본 모든 카페 중 으뜸. 플랫화이트와 에스프레소를 마셨는데, 둘 다 완벽하게 맛있었다. 매주 금요일 저녁마다 디제잉 행사가 있다고.

리스본 Clube Caffeine의 플랫화이트


보는 재미

[파두 (포르투갈 전통음악)]

파두(Fado) 공연은 포르투에서 한 번, 리스본에서 한 번 봤다. 파두(Fado)는 'Saudade'(소우다데)라고 하는, (영영 가 버린 것에 대한) 그리움과 갈망 섞인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특징이라는데, 우리나라의 한() 같은 정서가 아닐까. 시나브로 눈물이 툭, 떨어질지도 몰라, 하며 대비했던 것 치고 두 번의 공연 모두 (말귀를 못 알아들어서인지) 그렇게까지 슬프지는 않았다. 오히려 내가 떠올린 것은 시련 속에서도 낙천적인, 이를테면 '어제는 슬펐지만 영원히 슬퍼하지는 않아, 내게는 할 일이 있으니까' 라며 활기차게 팔을 걷어붙이고 시장통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들의 모습이었다.


파두 공연장보다 파두 전문 레스토랑이 훨씬 많은 것을 볼 때, 아마도 식사하며 파두를 감상하는 것이 전형적 방식인 것 같기는 하지만, 내 경우 공연에 집중할 수 있는 공연장을 선택했다. 아래 모두 온라인 예매가 가능하다.

Ideal Clube de Fado(포르투): R. do Ateneu Comercial do Porto 32, 4000-380 Porto

Lisbon in Fado(리스본): R. do Crucifixo 84 Baixa, 1100-184 Lisboa

좌: Ideal Clube de Fado(포르투), 우: Lisbon in Fado(리스본)


[리스본에서 일요일에 공짜인 곳들]

공짜라 찾아간 것은 아니었는데, 치앙마이에서 만난 포르투갈 친구가 추천해줘서 찾아갔던 두 곳이다. 마침 무료 입장시간이라 돈을 받지도 않고 티켓을 출력해주었다. 어머나, 공짜라면 또 마다하지 않지요.


칼루스트 굴벤키안 미술관 (Museu Calouste Gulbenkian). 일요일 오후 2시 이후 무료 입장. 아르메니아계 영국인 사업가인 칼루스트 굴벤키안이 수집한 미술품이 전시되어 있다. 마네의 <체리를 든 소년>과 <비눗방울 소년>, 그리고 르누아르의 <마담 모네>도 있다. 로댕의 조각품도 여러 점.

좌: 마네 <비눗방울 소년>, 우: 로댕 <The Blessings>


온실 정원 (Estufa Fria). 영어로 직역하면 'Cold Greenhouse' (차가운 온실ㅎ)로, 난방을 가동하지 않고 자연광과 보온 설계만으로 온도를 유지하는 정원이란다. 열대 식물을 굳이 포르투갈에서 볼 일인가, 싶었는데 근처의 에두아르두 7세 공원 (Parque Eduardo VII)을 구경한 후 너무 가까워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들어갔다. 그런데 무료입장이라니! 입구가 크지 않아 규모도 크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들어가보니 아주 넓고 크다. 사람이 너무 많지 않아 여유롭게 돌아볼 수 있는데, 그렇다고 휑뎅그렁하지도 않아서, 데이트하는 연인들, 산책을 나온 가족들과 같은 현지인들 틈에 자연스레 섞이는 기분이 참 좋았다.

좌측 두 사진은 온실 정원 (Estufa Fria), 우측은 그 바로 옆 에두아르두 7세 공원 (Parque Eduardo VII). 함께 둘러보기 좋고, 굴벤키안과도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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