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패스드 폰 Mar 04. 2024

하루 끝, 전등 그림자



내일은 엉금엉금

평소와 같이 굼뜨게 오는데

나는 왜 빠르다고 느끼는지


잠자리에 들어

이불속으로 숨어드는

오늘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엄마가 도망갈까 두려운 아이처럼

무거운 눈꺼풀을 기어이 들어 올려

까맣게 칠해지는 시간을 노려보았다


은은한 전등빛이

어둠을 물감 삼아 그린

천장의 그림자는

보내지 못한 오늘인가

다 털지 못한 후회인가


아니면 혹시

가면을 벗지 못한 내 얼굴인가


정체를 알고자 유심히 바라봐도

맨얼굴이 기억나지 않아

그저 검은 형체의

표면만을 빙글빙글 돌았네


나조차도 잊어버린 자아상

수줍은 마음에 그림자로 도망쳤구나


위태로운 전등빛 하나에 가냘프게 의지하는

정체를 숨긴 맨얼굴이여

언젠가 너를 볼 수 있다는 희망을

가슴속에 고이 품는다


전등을 켜지 않은 오늘이 찾아오길




이전 15화 밤눈의 향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