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 시대, 산업규제의 새로운 문법을 찾아서
법은 원래 가난한 차주 혹은 복제물에 불과했다. 스스로 그 권위는 없었고, 이미 사회 속에 내면화되어 있던 종교적, 도덕적 규범을 빌리거나 배껴 쓰는 처지였다.
후크 교수가 “법의 정당성은 차용의 역사로부터 출발한다.”라고 지적한 바와 같이, 초기의 법질서는 독립된 체계가 아니었다. 예컨대, 인도 제국은 브라만 공동체의 다르마샤스트라를 국가의 법으로 편입했고, 이슬람의 가디스는 꾸란의 문구로 재판의 근거를 삼았다. 고대 페르시아의 황제 키루스는 전임자의 법을 계승했고, 유럽의 민법은 로마법의 잔존을 재조립하여 형성되었다.
후크는 이를 “법치주의의 기원은 모방과 차용의 연속이었다.”라고 요약한다. 신생 권력이 스스로의 정당성을 생산할 능력이 없었던 시대에, 법은 이미 존재하던 도덕적 권위에 기대어 그 실효성을 확보했다. 법은 도구였지만, 동시에 신성의 언어를 복제함으로써 통치의 근거가 되었다.
이러한 법의 ‘차용성’은 단순한 역사적 일화가 아니라, 근대 법질서의 구조적 기원을 드러낸다. 법이 통치의 언어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강제력 이상의 것이 필요했다. 그것은 ‘존경받는 규범으로부터의 연속성’이었다. 후크는 이를 “국가의 법은 스스로를 낯선 체계로 제시하지 않고, 이미 사람들에게 신뢰받던 규범의 변형으로 등장함으로써 효력을 얻었다.”라고 말한다. 즉, 법의 정당성은 권력의 독점으로부터가 아니라, 도덕의 차용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초기의 군주들은 법을 제정하는 동시에 그 법의 제약을 받았다. 그들이 차용한 법은 '신'의 이름으로 금지와 명령을 설정했고, 통치자는 그 질서의 내부에 자신을 같이 묶어버림으로써 신뢰를 유지했다. 이러한 점에서 초기 법의 정당성은 “자기 제약을 통한 권력의 내면화”로 설명된다.
그러나 오늘날의 법은 그때의 법과는 다르다. 법은 더 이상 외부의 권위를 차용하지 않아도 된다. 종교의 언어는 세속화되었고, 왕권은 사라졌으며, 국민국가의 법은 민주적 정당성을 통해 자신의 근거를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게 되었다. 문제는 그 ‘자기 정당화’가 여전히 완전하지 않다는 데에 있다. 법은 여전히 사회적 가치의 대리인으로서, 다양한 이해관계와 목적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 숙명을 가질 수밖에 없다.
즉, 경제적 효율성과 사회적 정의, 산업 성장과 공정 경쟁, 기술혁신과 개인정보보호 등등... 현대의 법은 복수의 가치가 교차하는 경계선에서 끊임없이 재구성된다. 따라서 법의 자율성이란, 독립적인 창조 능력이 아니라 이 복수의 가치들 사이에서 선택하고, 그 선택에 대하여 설득할 수 있는 ‘사회적 언어’를 마련하는 능력이 되었다.
특히, 산업규제는 법의 차용성과 자율성이 가장 첨예하게 맞부딪히는 영역이다. 산업정책은 늘 성장과 보호의 명분을 앞세우지만, 그 이면에는 시장의 공정성과 소비자의 복지를 훼손할 위험이 공존한다. 경쟁법은 이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법적 장치지만, 동시에 정치적, 경제적 이익의 충돌 속에서 그 자체의 정당성을 시험받게 된다. 온라인 플랫폼 규제나 빅테크 기업에 대한 공정거래법적 개입은 단순한 경제 문제를 넘어, “법이 어디에서 자신의 권위를 얻는가?”라는 물음과 직결된다. 법이 사회의 도덕적 직관이나 시민적 가치와 충돌할 때, 그것은 더 이상 정당성을 유지할 수 없게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산업규제법은 기술 혁신을 억제하지 않으면서도, 권력의 집중을 막아야 하는 이중의 과제를 안고 있다. 만약 법이 단순히 '성장'만에 매몰된다면, 그것은 산업정책의 하위 도구로 전락할 위험이 있고, 반대로 법이 '공정성'만을 절대화한다면, 혁신의 동력을 억누르고 시장을 정체시킬 우려가 있다. 여기서 법의 역할은 ‘가치의 중재자’로서, 어느 하나에 완전히 종속되지 않는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법의 '자율성'은 독립이 아니라 ‘조율의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자율성은 언제나 위태롭다. 오늘날의 법은 신의 이름으로 정당화되지 않으며, 전통의 무게에도 기대지 않는다. 대신 법의 언어는 통계, 경제모형, 정책목표 등 계량적 근거 위에서 구성된다. 이런 환경에서 법은 끊임없이 정당성의 '공백’과 '도전'을 경험한다. 규제당국의 판단은 기술기업의 혁신을 가로막는다는 비판에 직면하고, 반대로 기업의 행위는 공공성의 침해로 비난받는다. 이 양극단에서 법은 다시 한 번 후크가 말한 “차용의 전략”을 반복한다. 즉, 사회적으로 존중받는 담론, 예컨대, 인간의 안전, 공정한 기회, 지속가능한 성장 등을 빌려와 자신을 정당화하려고 한다. 오늘의 법은 더 이상 종교의 언어를 차용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사회의 윤리적 담론을 많이 빌려 쓴다.
결국 법의 역사란 차용에서 자율로, 그리고 다시 새로운 형태의 차용으로 이어지는 순환의 역사이다. 법은 한때 신의 권위를 차용했고, 이제는 사회의 합리성과 도덕적 공감대를 빌린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이 차용이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창조의 재구성이라는 데 있다. 법은 차용을 통해 자신을 갱신하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질서를 창출한다. 산업규제의 법리 또한 이 연속선 위에 있다. 경쟁법이 산업정책의 언어를 빌려 쓰면서도, 동시에 그것을 견제하는 원리를 세워나가는 과정은 바로 ‘차용을 통한 자율의 확립’이다.
산업규제의 현장에서 법이 기술, 자본, 정책의 언어와 윤리 담론을 흡수하고, 복제하고, 차용하되, 그 목적을 변화된 환경에 맞게 재정의할 수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종속된 도구가 아니라 사회적 방향을 제시하는 합리적 기준이 될 수 있다. 법치주의의 진정한 의미를 “대중의 지지와 도덕적 질서의 합치 속에서만 유지되는 통치의 합리성”이라고 한 후크의 말과 같이, 차용을 부정하지 않되, 차용의 경계를 통찰할 때 비로소 법의 자율성이 확립될 수 있다. 이것은 법의 오래된 역사와, 산업규제의 오늘을 관통하는 공통된 진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