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를 했다.
매일 출근하면 환자들을 간호하고 퇴근했다.
퇴근 후에는 요리하여 가족과 함께 밥을 먹거나 종종 외식을 하기도 했다.
저녁 먹고 나서 자기 전까지는 대학원생으로서 공부를 하였다. 수많은 논문들을 읽고 정리하고 내 연구를 계획하며 머리를 굴려댔다.
쉬는 날엔 운전연습 겸 산책 겸 근처 공원에 드라이브를 가고 근처 카페에서 음료를 사 마시곤 했다.
가끔 친구들이나 병원의 친한 동료들을 만나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수다를 떠는 약속은 손꼽아 기다릴 만한 즐거운 시간이다.
힘들고 화가 나는 날들도 있었지만 기다려지고 행복한 날들도 있었기에 그럭저럭 살아갔다.
그것이 나의 일상생활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몸에 갑자기 이상증상이 생겼다.
그 뒤로 아직도 회복되지 못한 채 수개월이 지났다.
일상생활을 못한 지도 그만큼의 시간이 지났다.
지금은 아무것도 안 하고(못하고) 있다.
내 삶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던 일과 공부와 사람들과의 만남은 나에게 더 이상 일상이 아니게 되었다..
아파진 이후로 내가 하는 것이라곤 과거에는 활동 중간중간에 짬 내서 대충 하던 기본적인 것들 뿐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창문 커튼 치기, 따뜻한 물 자주 마시기, 식재료 사서 내가 먹을 수 있는 요리하기, 30분 이상 천천히 식사하기, 설거지하기, 내 몸 상태에 맞는 스트레칭하기, 병원 치료받으러 가기, 핫팩 데워서 따뜻하게 누워있기, 샤워하기, 가끔 유튜브나 웹툰 보기...]
이것이 하루 일과의 끝이다.
하루는 누워서 자다가 이불이 조금 찢어졌는데
그때 나는 짜증이 나기보다는 약간의 기분 좋음이 들었던 것 같다. <이불 꿰매기>라는 현재 나의 상태로 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일이 생겼으므로... 그 정도로 나는 이전의 생활을 할 수 없음에 무가치함과 무의미함을 많이 느끼고 있었다.
나는 일상생활을 못하고 있는 것이 절망스러웠지만
대략 3개월 정도가 지나고서야 문득 깨달았다.
'이게 나의 새로운 일상이구나...'
내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 이전의 일상생활은 이미 '일상'이라는 이름을 잃어버렸구나. 그건 더 이상 나의 일상생활이 아닌, 과거일 뿐이구나.
일상생활을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나를 눈물 나게 만들었는데, 실은 내가 과거에 매여있었던 거구나.
힘든 시기의 터널을 지나고 있는 나는
과거의 일상이 무너졌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또 다른 새로운 모습의 일상을 살고 있다.
지금 살고 있는 것이 나의 일상이다.
나의 일상은 그렇게, 무너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