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상대에 대한 칭찬과 배려에 인색하고 무심할 때가 많다. 잠시 머무는 여행지, 식당이나 카페에서 스치듯 만나는 사람에게서도 그 여운이 오래도록 남을 만큼 따뜻하게 다가오는 사람이 있는 반면 두 번은 만나고 싶지 않은 차갑고 무표정한 사람과의 영혼 없는 대화를 해야 할 때도 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전자의 사람들은 성실하고 책임감도 강하며 어디를 가더라도 환영받고 분위기 메이커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며 주위의 인정을 받는다.
그러나 후자인 사람들은 그 침울한 얼굴만 봐도 괜히 될 일도 안될 것 같고 나도 덩달아 침울한 기분에 젖을 것 같아 무의식적으로 피하게 된다.
물론 내가 그 사람에게서 느끼고 겪은 것은 일부이고 편견일 수 있다. 그 사람이 누군가와 언쟁을 한 직후라, 저기압 상태일 수도 있고 하필이면 몸 컨디션이 안 좋은 때 절묘한 타이밍으로 나와 맞닥뜨렸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일관적인 태도를 보인다면 그 사람의 천성이거나 오랜 습관으로 굳어진 인성일 가능성이 높다.
내가 생각하는 배려심 없는 꼴불견은 대략 세 유형으로 나뉜다. 첫째 유형은 만나기만 하면 자기 자랑만 장황하게 늘어놓는 사람이다. 누구나 한 번씩은 겪어 봤을 것이다. 그런 분은 상대방의 말은 아예 듣지도 않고 본인말만 앵무새처럼 주야장천 같은 말만 재탕 삼탕을 하고도 또다시 열탕쯤 해야 다른 스토리로 넘어간다. 가끔씩은 그런 사람의 뇌 속을 갈라서 관찰해 보고 싶다. 뇌구조가 보통사람과 어떻게 다르길래 한결같은 패턴일 수 있는지 말이다.
나는 그런 부류의 사람은 세 번 정도는 넌지시 주의를 주면서 조금이라도 상대의 눈치를 살피며 노력하는 모습이라도 보이면 관계를 이어가고, 아예 구제불능이라 생각되면 될 수 있으면 의도적인 만남의 기회는 만들지 않는다. 아예 연락처를 차단하고 인연을 끊어버리고 싶어도 사람관계란 묘하게도 칼로 무 자르듯이 단번에 끊을 수 없는 관계도 분명 존재한다.
특히 가게 사장인데 손님으로 오는 분이면 크게 사기를 치거나, 고성이 오고 간 싸움을 하지 않은 이상 못 오게 할 명분이 없다. 또 회사 동료라 해도 그런 일로 사표를 던질 수도 없지 않은가?
둘째 유형은 대화 시 다른 사람의 말에도 적당히 귀 기울여 주고 대화를 제법 재미있게 리더하고 가끔 통 크게 한턱 쏴기도 해 나름 사람들의 환심을 산다. 이런 부류 역시 결국에는 첫 번째 유형과 별반 다를 게 없다. 먹을 것으로 유도해 자기 과시를 하는 사람이다. 형식상 남의 가정사에도 적당히 관심을 기울인다. 아니 관심을 갖는 척한다고 해야 하는 게 맞다. "자녀가 몇 학년이냐 어느 학교를 다니냐" 며 관심을 보이는 듯해도 다음에 만나면 똑같은 질문을 무한반복한다. 건성으로 질문한 답변이 뇌리 속에 저장돼 있을 리 만무하다. 그 사람에게 있어 친구나 지인은 자신의 성공담이나 돈자랑을 들어줄 들러리에 불과한 존재인 것이다.
셋째 유형은 병적으로 다혈질이라 가는 곳마다 분란을 일으킨다. 상대를 짓밟음으로써 희열을 느끼고, 사는 맛을 느끼는 사람이다. 업소에서는 진상고객으로 돌변해 일행들을 자주 곤혹스럽게 하는 타입이다.
대체적으로 위 세 부류들의 공통점은 남에 대한 칭찬은 아예 외면해 버린다. 일단은 혜은이의 노랫말처럼 활화산처럼 터져 오르는 것이 사랑이 아닌 질투심이기도 하거니와 남을 칭찬하면 마치 자신의 체면이나 자존심이 깎인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저런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갈 때 많은 생각을 품게 된다. 나는 과연 다른 사람들이 객관적인 잣대로 들이댈 때 기본에서 밀려난 행동을 한 적은 없는가? 지금 이대로 살아가도 한치의 부끄럼이 없는가? 어둠이 있기에 빛이 존재하고 악이 있음으로 인해 선이 빛을 발하듯 다소 무례하고 제 잘난 맛에 사는 사람들이 적당히 섞여 있어야 세상이 제대로 돌아가는 건 부인할 수 없다. 무례한 사람을 보고 예의와 배려에 대해 좀 더 심사숙고해 행동하고, 악행을 서슴없이 저지르고도 양심의 가책 따위와는 일찌감치 담쌓은 사람을 대하면, 자신을 한번 더 돌아보고 자숙하고 자성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나 또한 모난 구석은 조금씩 조금씩 다듬어 가면서 공처럼 유유히 굴러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