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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과 배려

브런치 글 이미지 1

사람들은 상대에 대한 칭찬과 배려에 인색하고 무심할 때가 많다. 잠시 머무는 여행지, 식당이나 카페에서 스치듯 만나는 사람에게서도 그 여운이 오래도록 남을 만큼 따뜻하게 다가오는 사람이 있는 반면 두 번은 만나고 싶지 않은 차갑고 무표정한 사람과의 영혼 없는 대화를 해야 할 때도 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전자의 사람들은 성실하고 책임감도 강하며 어디를 가더라도 환영받고 분위기 메이커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며 주위의 인정을 받는다.

그러나 후자인 사람들은 그 침울한 얼굴만 봐도 괜히 될 일도 안될 것 같고 나도 덩달아 침울한 기분에 젖을 것 같아 무의식적으로 피하게 된다.


물론 내가 그 사람에게서 느끼고 겪은 것은 일부이고 편견일 수 있다.  그 사람이 누군가와 언쟁을 한 직후라, 저기압 상태일 수도 있고 하필이면 몸 컨디션이 안 좋은 때 절묘한 타이밍으로 나와 맞닥뜨렸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일관적인 태도를 보인다면 그 사람의 천성이거나 오랜 습관으로 굳어진 인성일 가능성이 높다.


내가 생각하는 배려심 없는 꼴불견은 대략 세 유형으로 나뉜다.  첫째 유형은 만나기만 하면 자기 자랑만 장황하게 늘어놓는 사람이다.  누구나 한 번씩은 겪어 봤을 것이다. 그런 분은 상대방의 말은 아예 듣지도 않고 본인말만 앵무새처럼 주야장천 같은 말만 재탕 삼탕을 하고도 또다시 열탕쯤 해야 다른 스토리로 넘어간다.  가끔씩은 그런 사람의 뇌 속을 갈라서 관찰해 보고 싶다. 뇌구조가 보통사람과 어떻게 다르길래 한결같은 패턴일 수 있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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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런 부류의 사람은 세 번 정도는 넌지시 주의를 주면서 조금이라도 상대의 눈치를 살피며 노력하는 모습이라도 보이면 관계를 이어가고, 아예 구제불능이라 생각되면 될 수 있으면 의도적인 만남의 기회는 만들지 않는다. 아예 연락처를 차단하고 인연을 끊어버리고 싶어도 사람관계란 묘하게도 칼로 무 자르듯이 단번에 끊을 수 없는 관계도 분명 존재한다.

특히 가게 사장인데 손님으로 오는 분이면 크게 사기를 치거나, 고성이 오고 간 싸움을 하지 않은 이상 못 오게 할 명분이 없다.  회사 동료라 해도 그런 일로 사표를 던질 수도 없지 않은가?


째 유형은 대화 시 다른 사람의 말에도 적당히 귀 기울여 주고 대화를 제법 재미있게 리더하고 가끔 통 크게 한턱 쏴기도 해 나름 사람들의 환심을 산다. 이런 부류 역시 결국에는 첫 번째 유형과 별반 다를 게 없다. 먹을 것으로 유도해 자기 과시를 하는 사람이다. 형식상 남의 가정사에도 적당히 관심을 기울인다. 아니 관심을 갖는 척한다고 해야 하는 게 맞다.  "자녀가 몇 학년이냐 어느 학교를 다니냐" 며 관심을 보이는 듯해도 다음에 만나면 똑같은 질문을 무한반복한다.  건성으로 질문한 답변이 뇌리 속에 저장돼 있을 리 만무하다. 그 사람에게 있어 친구나 지인은 자신의 성공담이나 돈자랑을 들어줄 들러리에 불과한 존재인 것이다.


째 유형은 병적으로 다혈질이라 가는 곳마다 분란을 일으킨다. 상대를 짓밟음으로써 희열을 느끼고, 사는 맛을 느끼는 사람이다.  업소에서는 진상고객으로 돌변해 일행들을 자주 곤혹스럽게 하는 타입이다. 


대체적으로 위 세 부류들의 공통점은 남에 대한 칭찬은 아예 외면해 버린다. 일단은 혜은이의 노랫말처럼  활화산처럼 터져 오르는 것이 사랑이 아닌 질투심이기도 하거니와  남을 칭찬하면 마치 자신의 체면이나 자존심이 인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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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갈 때 많은 생각을 품게 된다. 나는 과연 다른 사람들이 객관적인 잣대로 들이댈 때 기본에서 밀려난 행동을 한 적은 없는가? 지금 이대로 살아가도 한치의 부끄럼이 없는가?  어둠이 있기에 빛이 존재하고 악이 있음으로 인해 선이 빛을 발하듯 다소 무례하고 제 잘난 맛에 사는 사람들이 적당히 섞여 있어야 세상이 제대로 돌아가는 건 부인할 수 없다. 무례한 사람을 보고 예의와 배려에 대해 좀 더 심사숙고해 행동하고, 악행을 서슴없이 저지르고도 양심의 가책 따위와는 일찌감치 담쌓은 사람을 대하면, 자신을 한번 더 돌아보고 자숙하고 자성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나 또한 모난 구석은 조금씩 조금씩 다듬어 가면서 공처럼 유유히 굴러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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