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지한이한테 필요할 것 같은데 가져가서 봐봐.’ 아이의 영아기 시절. 지인들이 물려주는 책들을 감사하게 받으면서도, 아이에게 새 책을 사주고 싶은 마음과 늘 부딪혔다. 아이는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했지만, 늘 돈이 부족했다. 사주고 싶은 책들을 장바구니에 담고 총금액을 보면 ‘헉’ 소리가 절로 나왔다.
아이에게 해주고 싶은 건 왜 이렇게 많은 건지. 못해준 것만 생각났다. 주로 일반서점이 아닌 중고서점을 방문했다. 중고 그림책이 라도 내 손으로 직접 골라 아이에게 읽어주고 싶었다. 책을 구매해서 집으로 오자마자 책을 소독했다. 알코올을 솜에 적셔 책을 하나하나 닦았다. 그대로 햇볕이 잘 드는 베란다 앞에 책들을 펼쳐 말렸다. 종종 주변에서 큰 차이가 있냐고, 귀찮지는 않냐고 물어봤다. 조금이라도 새것 같은 책을 아이에게 선물해주고 싶었다. 알코올 적신 솜으로 한 장 한 장 책을 닦는 건 나에게 일도 아니었다.
“이게 사과야. 사과는 빨간색이야~”
아이의 표정을 살폈다. 알 수 없는 표정이었지만 그마저도 좋아서 웃음이 나왔다. 아이가 아장아장 걷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나에게 그림책을 직접 가지고 왔다. 맛깔스럽게 한 권을 다 읽어주고 나면, 또 다른 책을 가지고 왔다. 얼굴의 온 근육을 다 써서 책 속의 주인공을 흉내 내주면, 아이는 꺄르르 웃었다. 책을 대하는 아이의 적극적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나에게 만약 100만 원이 생긴다면 모조리 아이 책 사는 데 써야지.’
월 매출 1,000만 원을 찍었을 때, 들어오고 나갈 돈을 계산하고도 여윳돈이 있었다. 책으로 탑을 쌓아도 남을 돈이었다. 바로 온라인 서점 사이트에 들어갔다. ‘어떤 전집을 사줘야 할까?’ 가볍게 소전집을 검색했는데, 대형 출판사에서 나온 전집 광고가 눈에 띄었다. 색감도 훨씬 화려했고,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어 내용도 알찼다. 대형 출판사여서 그런지 가격은 다른 소전집의 4,5배 정도였다. 매출도 많이 뛰었고, 아이를 위한 책이라고 생각하면 이 정도쯤은 무리 없는 가격이었다. 대형 출판사 전집 두 세트를 장바구니에 담고 바로 결제 버튼을 눌렀다.
전집은 크고 작은 박스 세 개에 나눠 담겨 왔다. 책이 어찌나 무겁던지 거실까지 가지고 오는 데 시간이 꽤나 걸렸다. 아이는 현관문 앞에서부터 발을 동동 굴리며 자기 것이냐고 격양된 목소리로 말했다. 박스를 올라탔다가, 테이프를 낑낑거리며 뜯으려고 하기도 했다. 아이와 함께 박스를 열어 책을 한 권 한 권 꺼냈다. 아이는 그 누구보다 활짝 웃고 있었다.
책을 책장 속에 다 넣고 나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났다. 박스를 정리하는데, 자신의 키보다 큰 책장 앞에서 한참을 고민하는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났을까. 아이는 까치발을 든 채로 책 한 권을 가리키며 나를 바라보았다. 책을 꺼내 주자, 아이는 그 자리에 풀썩 앉아 책장을 넘겼다. 그림을 자세히 보기 위해 얼굴을 책 쪽으로 들이밀기도 했다. 그런 아이를 바라보다가 벽 한쪽을 가득 채운 책장을 바라봤다.
“내가 아들 책 사줄 정도는 되는구나.”
내가 직접 번 돈으로 아이가 원하는 것을 사주는 일이 이렇게 뿌듯하고 벅찬 일인지 그날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