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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서

by 서퍼시인

안녕하세요. 사랑에 관한 생각이 많은 사람입니다. 생각이 많은 게 병일까요? 아닐 거예요. 병이라서 생각이 많은 걸 수도 있고, 약을 먹어서 병일 수도 있을 거예요. 그러니까 제 말은 효험이 좋은 약이 있을까요? 약이 있다구요? 근데 뭐라구요? 세월이 약이라구요? 그렇게 무책임할 수가 있는 겁니까? 죽으면 다 해결된다 이 말입니까? 그래도 세월이라는 시간을 처방한 거 보면 늙어서 자연사하라는 말인거네요? 아 좋습니다. 좋네요. 늙어 죽겠습니다. 의사가 그러라는데 그래야지요? 다른 사람보다는 믿음이 갑니다. 그런데 살아가면서 또 약이 필요하면 어쩌죠? 그럼 다시오라구요? 다시 오면 다릅니까? 그때 다시 진찰해 봐야 안다구요? 네. 알겠습니다. 선생님 말씀이 지당하겠죠. 근데 선생님. 약값이 비싸지는 않을까요? 아이구, 비싼 약이라구요? 그럼 안되는데요. 당장 월세도 내야하고, 반찬도 사야 하는데요. 네? 식비 아껴서 약사서 먹으라구요? 아이구. 솔직히 이런 게 연명치료인데, 연명치료 거부할까요? 그런거 하지말라구요? 왜요? 사는 게 너무 팍팍한데요. 살다 보면 좋은 날 온다구요? 맨날 약 먹고 사는 게 좋은날입니까? 아이고. 의사선생님 만나면 뭐 좀 달라지나 싶었는데. 똑같네요. 일단 다른 사람처럼 2주 치만 처방해주시겠다고요? 그럼 2주 뒤에 또 오는 건데요. 참. 힘드네요. 일단 가겠습니다.

선생님. 저 다시 왔는데요. 사랑. 그거. 저는 안될 거 같은데. 그냥 생각 말고 사랑을 고치는 약이 없을까요? 약이 있다구요? 선생님. 이거는 그냥 진통제인데요. 아. 진통이 사라지다 보면 낫는다구요? 아... 빌어먹을 약이네요. 이거는 약값이 싸겠네요? 아 싸다구요? 그래서 한달치 한꺼번에 사가라구요? 아. 고맙습니다. 그런데 선생님. 이거 먹고 사랑을 잊으면. 그러니까 그게. 괜찮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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