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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매매계약서에 사인하는 날

독일 부동산 매매계약

by 가을밤 Oct 31. 2023

독일 부동산이 드디어 내 것이 되는 첫걸음, 매매계약서에 사인을 할 차례다. 


은행의 대출심사까지 승인되었고 건축사(혹은 부동산)가 집을 줄 수 있다고 최종 컨펌까지 하면 바로 매매계약일을 잡으면 된다. 우리나라는 부동산에서 계약서를 작성하는 것과 달리, 독일에서는 Notariat(공증사무소)에서 계약을 한다. 부동산을 끼고 사든, 건축사와 직접 계약을 하든 계약서에 '사인'이 이루어지는 장소는 무조건 공증사무소다. 



우리는 신축아파트 분양이므로 중개부동산이 없고 건축사와 바로 계약을 진행했기 때문에, 건축사의 매매담당 직원, 우리(매수자) 그리고 공증인이 계약에 참여했다. 공증인은 국가에서 허가받은 변호사이며, 보통 공증사무소마다 분야별 변호사가 여러 명 상주하는데, 이 중에서 Wohnungseigentumsrecht(부동산소유법) 혹은 Immobilienrecht(부동산법)을 담당하는 변호사가 공증인이 된다. 


재차 강조할 점은, 집을 현찰로 구매할 게 아니라면 공증사무소에 가기 전 반드시 '은행 대출허가'가 나와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승인이 안 났는데 섣불리 매매계약서를 쓰고 은행심사에서 거절되기라도 하면 최악의 경우 대출 없이 집 값을 감당해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걱정말자. 은행 허가증이 없으면 예약 자체를 안 잡아준다. 대출계약서를 썼다면 추가적으로 은행에서 Grundschuldbestellung(대출주문서)라는 서류를 받아서 공증인에게 보내야 한다. 이 서류에 대출금액이 적혀있으며 매매계약서와 동시에 사인하게 된다. 



공증사무소 내부. 특별할 것 없는 오래된 사무실이다.공증사무소 내부. 특별할 것 없는 오래된 사무실이다.


예약 당일, 긴장된 마음으로 남편과 공증 사무소에 갔다. 당시 우리는 5시간 떨어진 거리에 거주하고 있었기에 오후 1시 예약을 맞추기 위해 집에서 오전 7시에 출발해야 했다. 아우토반을 달리는 내내 온갖 감정이 겹쳐서 남편과 둘 다 별 말이 없던 것 같다. 생에 첫 부동산 계약이 설레기도 하면서, 잘한 건가 싶은 마음도 들면서, 일생에서 어쩌면 가장 비싼 상품을 구매하는 날이었기에 둘 다 긴장을 한 것 같다. 


예약한 시간이 되자 공증인은 먼저 자기 앞에 쌓여있던 산더미 같은 서류를 우리 쪽으로 밀었다. 약 200장 가까이 되는 집과 관련된 문서의 원본이며, 오늘부터 우리 것이니 가져가라고 했다. 그리고 약 30장에 달하는 매매 계약서를 한 줄 한 줄 구두로 읽기 시작했다. 누구는 천천히 또박또박 읽어준다는데 우리 공증인은 그날 바빴는지 귀찮았는지 거의 랩을 했다. 독어로 그렇게 긴 랩은 처음 들어본다. 참으로 빨리 읽는데도 한 시간은 걸렸다. 


계약서를 구두로 읽는 행위는 해당 계약에 관련된 내용을 매수자와 매도자(건축사)가 모두 숙지 및 동의했으며, 합법적인 절차에 의해 고지되었다는 의미이다. 




공증인이 독어 랩(?)을 하는 동안 구매자는 언제든지 계약과 관련된 질문을 할 수 있다. 우리도 질문을 여러 개 적어갔는데 정말 너무 틈을 안 줘서 눈치싸움 하다가 말미에 몰아서 물어본 것 같다. 건축사 지정 공증사무소여서 그냥 넘어갔지, 우리가 직접 골랐다면 절대 선택하지 않았을 사무소다. 아무튼 더 이상 질문이 없으면 계약서 마지막 페이지에 건축사와 매수자가 사인을 하고 짧은 악수를 주고받는다.  


이로써 매매계약이 완료되었다. 


남편과 나의 생애 첫 주택을, 그것도 남편과 내 나라가 아닌 제3 국 독일에서 갖게 된 역사적인 날인데 막상 사인을 하니 뭔가 허무해졌다. 집을 사겠다고 결혼 전부터 둘이 계획을 세우고, 1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엑셀표를 만들어 임장을 다니고, 다투기도 하고, 긴 은행심사를 거치기까지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원래 목표를 이루면 공허해진다고 했던가. 우리의 다음 목표는 무엇일까. 


그러나 독일 행정은 이러한 공허감을 즐길 틈조차 주지 않았다. 200장이 넘는 서류를 싣고 돌아가느라 우리는 녹초가 되었고, 며칠 뒤 친절하지는 않았지만 열일하는 공증사무소에서 공증된 계약서와 토지취득세 및 등기부등본 명의변경에 관련된 서류를 보내주었다. 




정리하면, 부동산 매매계약서는 공증사무소에서 쓴다. 당일 집문서를 모두 양도받지만 아직 공식적으로 명의가 변경된 것은 아니다. 추후 부동산이 있는 지역의 담당 세금청에서 취득세(Grunderwerbsteuer) 및 등기부등본 고지서가 날아오면 적혀있는 계좌로 입금하면 된다. 


여기까지 끝났다면 이제 집이 지어지기만을 기다리면서 계속 돈을 모으면 된다.

지출은 이게 끝이 아니니까. 



제목 사진출처: unsplash

본문 사진출처: 직접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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