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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집엔 주방이 없다

주방이 없는 이유와 주문과정

by 가을밤 Nov 02. 2023

아파트 자기 자본금, 공증비, 세금, 그리고 옵션 비용까지 거치며 지갑을 지킨 당신, 대단하다! 

이제 지출 릴레이의 끝이 보이기 시작한다. 마지막 당신의 목돈을 노리고 있는 것은 바로 '주방'이다. 


독일 집에는 주방이 없다. 한국과 달라서 놀라는 부분 중 하나인데, 집에 주방은 미포함이다. 

새 아파트를 분양받거나 월세집에 들어가도 주방이 당연히 빌트인인 한국인의 시각으로 상당히 당황스럽다. 




텅 빈 주방자리. 세입자나 집주인이 알아서 넣어야 한다. (출처=왼 직접촬영, 우 ohne-makler.net)


# 대체 왜 주방이 없을까?

독일에서 집을 뜻하는 말 중 'eigene 4 Wände (나만의 벽 4개)'라는 표현이 있다. Leben in den eigenen vier Wänden는 '나만의 벽 4개 안에서의 삶'을 뜻한다. 즉, 독일에서 집이라는 것의 개념은 바닥과 천장 그리고 네 면으로 둘러싸인 벽뿐이다. 


옵션이 없는 독일집엔 주방은커녕 전등도 없이 천장에 전선만 뾰족하게 나와있다. 화장실의 거울조차 없는 집들도 많다. 주방 포함 이러한 부분을 모두 '사유재산'과 '이용자의 자율영역'으로 보기 때문이다. 



# 주방 없는 집을 선호하는 이유?

거주형태가 월세 혹은 자가가 전부인 독일에서는 오히려 주방이 없는 집을 선호하는 세입자들도 있다. 그 이유는 첫째로, Miete(월세)가 저렴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빌트인 주방(Einbauküche, 줄여서 EBK)이 딸린 집의 월세엔 주방 임대비가 포함되어 있다. 임대계약서에는 명시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결론적으로 월세에 주방 사용비가 다 포함되어 있으니, 주방이 없는 집보다는 월세가 비싸다. 그래서 차라리 저렴한 주방을 사는 게 매달 임대료보다 가성비가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두 번째 이유는, 내 주방을 갖는 게 위생적으로도 깔끔하고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다. 주방은 사용 빈도가 상당히 높은 공간인데 청결문제와 더불어 남의 가구나 전자기기에 문제라도 생기면 세입자가 돈을 물어줘야 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이런 잠재적인 분쟁을 감수하느니 내가 설치해서 쓰겠다는 것이다. 


* 최근에는 빌트인 주방을 선호하는 세입자가 늘어남에 따라 건축사에서 월세용 집에 한해 일률적으로 주방을 맞추기도 한다(물론 집값과 별도). 단점을 감안해도 확실히 주방이 있는 집이 월세가 나간다. 



주방업체 Schmidt의 행사중인 제품. 왼쪽 2100만 원, 오른쪽 2800만 원. (출처=schmidt-home-design.de)


주방을 주문하는 시기는 6개월 전이 가장 좋다. 우리는 18개월 전에 갔더니 주방회사에서 너무 일찍 왔다고 했지만, 덕분에 가격이 많이 오르기 전에 모든 비용을 픽스해 둘 수 있었다.


스텝 1. 예산책정하기

주방 가격은 집의 크기, 소재, 구조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이케아에서 몇 백 유로에 살 수도 있으며, 고급 주방은 한화 3000만 원이 넘는다. 30평대 초반에 쓸만한 주방은 최소 1500만 원 이상 잡는 게 좋다.


스텝 2. 상담 후 견적 받기 

상당한 인내심이 필요한 과정이다. 주방주문은 간단하지 않다. 높이에서부터 자재, 색상, 기기, 심지어 손잡이 모양까지 전부 골라야 한다. 우리는 첫 상담에 4시간이 걸렸다. 견적은 최소 3군데 이상에서 받아보고, 담당자와 자주 체크하는 게 좋다. 담당자는 주방 전문가이므로 모든 부분에서 고객보다 현실적인 정보를 갖고 있다.


여담으로 독일사람들은 어두운 주방(회색, 네이비, 블랙)을 선호하고, 아시아 사람들은 밝은 주방을 선호한다고 한다. 그래서 독일 주방업체 쇼룸에는 어두운 색상 위주로 전시되어 있다.  


스텝 3. 일정 확실히 조율하기

담당자가 제조공장 및 배송사와 일정조율을 해야 하기 때문에 배송주소와 시기를 명확히 알려주는 게 정말 중요하다. 주방회사에서 주문하기 가장 적절한 시기는 4-6개월 전이라고 한다. 너무 일찍 오면 가전제품 가격이나 소재공급에 대해 불투명할 수 있다.


스텝 4. 주방 들이기

주방을 들이는 날엔 배송사와 조립전문가가 함께 온다 (한 회사에서 하는 경우도 있다). 당일엔 모든 가구가 이상 없이 왔는지 확인해야 하며, 손상 시 회수 후 재설치해야 한다. 조립은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반나절~3일 이상 걸리기도 한다. 모든 조립이 끝난 후 고객이 Protokoll(보고서)에 사인한다.


스텝 5. 문제없는지 확인 및 개런티 서비스 요청

주방설치가 모두 끝나면 전자기기 및 가구의 작동여부를 꼼꼼히 확인한다. 문제가 있다면 개런티 기간 안에 서비스를 요청한다. 우리 주방은 콘센트 하나가 헐거워서 서비스를 받았다. 




우리 주방은 조립에만 총 3일이 걸렸다. 시간으로 따지면 25시간 정도 걸렸지만 전문가분께서 주방만 수 십 년 하신 마이스터라 정말 믿을 수 있었다. 주방은 조립+전기+목공+디테일한 작업의 집합체이기 때문에 아무리 좋은 주방을 골라도 조립이 완벽하지 않으면 문제가 생기므로, 주방회사를 고를 때 이러한 부분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제목 사진출처: unsplash

본문 사진출처: 직접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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