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라본 햄릿 – 게으른 천재
나는 책 선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내가 읽고 싶어 하던 책을 받는다면 기쁘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선물하는 사람은 자신이 인상 깊게 읽었던 책, 혹은 겉멋이 가득한 책을 주기 마련이다. 이런 책들은 받아도 곤란하다. 책 두께는 벽돌만 하고, 내가 전혀 흥미 없는 분야의 책이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 특히 허세 가득한 에세이, 위로글로 도배된 감성적인 에세이는 정말 싫어하는 장르다. 그런 책을 읽으면 위로받는 느낌보다는 작가의 허세가 느껴져서 거부감이 든다. 나는 차라리 고전, 자기계발서, 사랑 소설, 디스토피아 소설, 여운을 남기는 책을 선물 받는 게 좋다.
지난주, 한 권의 책을 선물 받았다. 다행히도 이번엔 함께 서점에 가서 직접 고른 책이라 기분 좋게 받을 수 있었다. 내가 고른 책은 바로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중 하나인 '햄릿'. 비극으로 유명한 작품이라 언젠가 한 번 읽어보고 싶었는데, 드디어 읽을 기회가 생겼다.
'햄릿' 을 읽으며 느낀 점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 내가 생각보다 이야기를 잘 따라가고 추론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 책을 많이 읽어서 그런지 말의 흐름과 상황을 유추하는 능력이 이전보다 더 나아진 것 같다. 특히, 책을 읽기 전에 등장인물과 관계가 정리되어 있어서 이해하기 쉬웠다. 보통 외국 문학은 이름이 낯설어 따라가기 어려운데, 인물 관계도를 보면서 이야기의 주요 흐름을 읽어낼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유령이 햄릿의 아버지이며, 햄릿의 어머니가 숙부의 아내라는 설명을 보고 바로 상황을 유추했다.
"아, 숙부가 햄릿의 아버지를 죽이고 왕위를 빼앗았구나. 그러면 이 소설은 아버지의 복수를 다루는 이야기겠네." 그리고 그게 정말 '햄릿'의 핵심 스토리였다.
두 번째로 인상 깊었던 것은 햄릿의 말솜씨. 햄릿은 주제의식을 전달하는 역할을 하면서도, 상대를 고급지게 돌려 까는 능력이 엄청났다. 이건 뭐... 욕만 안 했지, 상대방을 절묘하게 조롱하는 대화법의 대가라고 할 수 있다. 상대가 모욕을 알아채지 못한다면 그냥 멍청한 것이고, 만약 알아채더라도 햄릿이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둬서 반박하기 어렵게 만든다.
작품 속 햄릿의 성격은 신중하고 생각이 많지만 행동력이 부족한 인물로 그려진다. 아버지의 복수를 해야 하지만 계속 망설이다가 결국 마지막에 가서야 복수를 실행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결국 자신도 함께 몰락하고 만다.
겉으로 보면 우유부단한 나약한 인물처럼 보이지만, 작품 해설을 보면 그에 대한 다른 해석도 존재한다.
햄릿이 즉각적인 복수를 실행하지 않은 이유는, 단순한 살해가 아닌 '완벽한 복수'를 고민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단순히 "죽이고 땡"이 아니라, 숙부가 완전히 몰락하는 순간을 기다린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햄릿은 우유부단한 게 아니라 합리적으로 판단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래서 햄릿이 선택한 합리적인 방법은 ‘응시’다.
신앙심이 두터운 표정에 경건한 척한 행동으로 악마도 감쪽같이 속이는 일이 다반사. 숨겨진 진실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보는’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이 극 속에서 유난히 염탐하거나 감시하는 장면이 많이 등장한다.
이 시대에는 신분 상승이 가능해지면서 사람들은 외관을 통해 계급을 구분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따라서 사람을 '본다'는 것은 곧 권력을 가진다는 의미가 되었다. 햄릿이 미친 척을 할 때도 가장 먼저 한 행동이 옷매무새를 흐트러뜨리는 것이었다. 그 시대에는 신분이 높을수록 복장이 단정했기 때문에, 이를 의도적으로 무너뜨림으로써 '자신이 미쳤다'는 이미지를 만드는 데 성공한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역할에 맞는 행동과 겉모습을 보여주는것. 계급과 달리 멋진 겉치레와 행동거지를 꾸며내는것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 급변하는 사회에서 보이는것과 보는것이 중요해짐에 따라 사람들을 볼 수 있는 능력은 곧 힘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작품 해설과는 다르게 햄릿을 그냥 게으른 천재형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햄릿은 똑똑하고, 무술도 잘하고, 외모도 훌륭하고, 왕자라는 권력까지 가진 완벽한 캐릭터다. 하지만 그는 너무 생각이 많고, 행동하기 싫어한다.
숙부가 교회에서 기도하는 장면에서 그를 죽일 기회가 있었지만, 햄릿은 "지금 죽이면 숙부는 천국에 가는 게 아닐까?"라며 결정을 미룬다. 숙부가 교회에서 참회를 하고 있었을때에는 참회중에 그를 죽인다면 불쌍한 나의 아버지는 죄를 참회하지도 못하고 죽어버렸는데, 그는 참회해 천국으로 가는건 아닐까 고민하다가 그를 좀 더 나락으로 떨어트린뒤에 죽이겠다고 결심한다. 그렇지만 이건 그냥 핑계에 불과하다. 그는 숙부의 권위를 떨어트려놓지도 못하고. 재상이나, 자신의 연인, 어머니, 재상의 아들, 그리고 숙부까지 모두를 죽음으로 몰아놓은 그냥 멍청이이다. 완벽한 타이밍을 재면서 최대한 일을 미루다가 비극으로 이야기가 마무리 된것이다.
결국 햄릿은 완벽한 타이밍을 노리다가 기회를 놓쳐버렸고,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했다. 나였다면? 시체는 말이 없으니 기회가 있을 때 숙부를 처리하고 왕위를 되찾았을 것이다.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햄릿을 읽기 전, 나는 햄릿을 고결한 철학적 고민을 하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난 후, 내 생각은 달라졌다. 그는 고급지게 본인을 포장하며 죽어간 멍청이였다.
햄릿이 정말 고민했던 것은 ‘사느냐 죽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가장 늦게까지 고민하며 일을 미룰 수 있을까였던 것 같다. 결국, 햄릿은 기회를 놓치고 모두를 파멸로 몰아넣은 장본인이 되었다.
그의 비극은 우유부단함에서 비롯된 것이지, 숭고한 철학적 고민 때문이 아니었다. 햄릿을 읽고 나니 확실해졌다. 나는 햄릿처럼 고민만 하다 끝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기회가 왔을 때는, 고민보다 실행해야 한다.
물론 기회가 오기까지 준비하면서 기다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완벽한 타이밍을 기다리다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것은 더 어리석은 일이다. 완벽한 기회란 존재하지 않는다.
기다리기만 하기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며 발버둥치는 것이 더 가치 있는 삶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