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누피(Snoopy)라는 만화가 있다. 찰스 슐츠(Charles Schulz)가 썼다. 원제는 피너츠(Peanuts)이다. 찰리 브라운과 그의 비글 강아지 스누피가 주인공이다. 스누피는 그냥 강아지가 아니라 책을 쓰는 강아지다.
소심한 찰리 브라운과 주변 친구들도 모두 엄청나게 귀엽다. "사랑이란 그냥 옆에 앉아서 얘기를 들어주는 거야"라든지, "좀 더 나은 사람이 되면, 좀 더 나은 삶을 살게 될 거야"와 같은 주옥같은 문장이 가득 들어있다. 내가 좀 사람다운 사람에 가깝게 된 결정적 만화다. 나는 늘 긴장하는 학창 시절을 보냈다. 공부를 잘해도 너무 잘하는 전교 1등의 오빠를 두었고, 남아선호가 강한 집의 둘째로 태어났다. 뭔가를 잘하면 "네가 아들이었어야 했다"는 말을 칭찬대신 들으며 자랐다. 나는 양보하고, 배려하는 자세보다는 공부를 우선시하고 학급의 회장과 같은 감투를 더 쳐주는 집안 분위기에서 자랐다. 친구란 잠재적인 경쟁자라 굳이 집에 데리고 와서 함께 놀 필요가 없었으며, 결과가 나쁘면 과정이 무시되는 비정함을 간식처럼 먹고 자랐다. 이렇게 쓰다 보니 집의 인문학적 정서 환경이 가혹하다 못해 비참하게 느껴진다.
좋은 점도 있었다. 생활에 대한 자존심이 있어 악착같이 살아내고자 하는 에너지를 훈련받은 것은 맞다. 다정했던 아버지를 제외하고, 영향을 주고받았던 혈연들은 보통 생각하는 그리움과는 상대적으로 거리가 좀 있다. 아쉽다.
학창 시절에는 학생으로서 반듯하고자 하는 나를 선생님들이 응원해 주셨지만 건조한 인간관계였다. 따뜻하고 매력 있는 선생님도 있었지만 그 곁에는 온통 다른 아이들이 몰려있어 다가가기 어려웠다. 사춘기인 나는 고독하고 외롭고 쓸쓸한 것이 인생이라고 날마다 생각했다. 스누피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사랑이란 너그러움과 배려와 부드러움이다. 나는 어떤 결정적 대상을 통해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기보다, 스누피 비글 강아지가 다독여주는 문장들을 통해 마음의 얼음들이 녹으며 자란 것 같다.